<노을이 이야기>
“너는 엄마랑 같이 살지 않아?” 친구가 노을이(가명)에게 물었다. 교실 뒤에 있는 학급 게시판에 제각기 ‘세 가지 소원’을 적어서 붙이기로 한 날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노을이는 담임 선생님이 나눠주신 학습 활동지 첫 번째 칸에 ‘엄마와 같이 살고 싶다’하고 막 적던 참이었다. 노을이가 친구를 보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아이는 옆의 친구에게, 그리고 그 친구는 또 옆의 친구에게 말했다. “노을이는 엄마랑 같이 안 산대.”
노을이는 그때 눈물이 조금 났다고 했다. 왠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쩌면 노을이는 “너는 엄마랑 같이 살아?”하고 되묻고 싶은 마음을 꾸욱 눌렀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의 눈치가 조금 이상했으니까 말이다. 자기 마음을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나오는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약간 어지러운 표정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활동지를 작성했을 뿐인데, 아이들이 수군거리고 놀라는 것을 보고나서 자신이 친구들과는 뭔가 다르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노을이는 엄마랑 같이 살지는 않지만 세 명의 사회복지사 이모와 함께 ‘그룹홈’에서 살고 있다. 세 명의 ‘이모’는 돌아가며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자고 밥을 해 먹는다. 나는 그 중의 한 명이다. 노을이는 각각 다른 곳에서 살다가 온 언니와 동생도 네 명이나 있다.
그룹홈에 대해서 처음 들었다고, 더 알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그러면 그룹홈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부모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일곱 명 이내의 아이들이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아파트나 빌라, 주택에서 통상의 가정과 비슷한 형태로 생활을 하는 아동복지시설이라고 설명을 하면 된다. 그런데 이 단순한 설명이 나는 참 어렵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고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고아원”할 때마다 “아!”하고 쉽게 반응하는 것처럼 “그룹홈” 할 때마다 “아!”하고 쉽게 반응해버릴 사람들을 상상하게 되어서 자꾸만 움츠러들게 되는 것 같다. ‘차라리 사람들이 그룹홈을 모르는 상태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누구든 아이가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사실에 집중을 하고는 했으니까. 그룹홈에 대해서 잘 알게 된 사람들 때문에 아이들이 기가 죽는다거나, 상처를 받게 되면 어떡하나, 하고 자꾸만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룹홈’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엄청난 불행’을 떠올렸던 직업훈련원의 수강생들과 그때 그 수업시간이 자꾸만 떠올랐다.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들은 것처럼 동요하던 순간 말이다.
“노을이는 아무 잘못도 없어. 단지 어른들의 사정 때문에 그룹홈에서 살게 된 거야. 그런데 이 아이가 지금 그룹홈에서 사는 것이 마치 큰 문제나 되는 듯이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 취급을 한다거나 놀린다거나 차별을 하는 일이 발생하고는 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더군다나 그룹홈이나 아동양육시설, 위탁가정 말고도 입양가정이나 한부모가정, 재혼가정, 조손가정, 다문화가정, 장애인가정, 북한이탈주민가정처럼 다양한 가정의 유형에 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 형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아이들이 '다른 대접'을 받게 될까봐 모조리 숨을 죽이고 살아서야 쓰겠어? 이건 노을이 마음 하나 달래고 끝내서는 안 될 문제야. 당장 학교에 연락하자. 상황에 대해서 꼼꼼하게 논의하고 다양한 가정의 유형에 대해서 당장 교육을 실시해 달라고 요청을 하자.” 그날 노을이 일로 직원회의를 할 때 그룹홈 선배가 했던 말이다. 선배가 말하는 동안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바람에,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푸욱 숙였던 기억도 난다.
회의를 마치고 학교에 바로 연락을 했다. 그렇다고 노을이가 이제부터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노을이는 엄마랑 같이 안 산대.”하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던 초등학교 1학년 노을이를 다시 떠올렸다. ‘그룹홈’에 살아서가 아니라 “부모의 부재를 무조건 동정하거나 차별하는 시선” 때문에 눈물이 났던 노을이 말이다.(은유 <다가오는 말들>, 160쪽) 그룹홈에서 사는 노을이도, 나도 이제는 그룹홈에 대해서 조금은 더 잘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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