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뒷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작 Jan 24. 2022

'쓸모없음'으로 본 <노팅힐>(1999)

마지막 브라우니는 전시하는 삶에게

1. 첫 장면

영화 <노팅힐>은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로 첫 장면을 시작합니다. "군중 속에서 언제나 행복해 보이는"이라는 그 노랫말처럼 "위대한 스콧"을 보여줍니다. 레드 카펫 위 플래시 세례와 대중의 환호를 한 몸에 받으며 이 보다 더 빛날 수 없는 할리우드 최고 스타 바로 애나 스콧(줄리아 로버츠 )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어떤 부족함도, 부러움도, 그늘도 없을 것 같은 그녀입니다.


    <she>라는 노래가 멈추고,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 )의 내레이션과 함께 그가 길거리를 걷는 장면으로 전환합니다. 노래도 흐르지 않고, 길을 걷는 그에게 누구도 관심이 없지만, 그는 자신이 사는 노팅힐이 런던에서 제일 좋은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참 쓰잘데 없습니다. "주중에는 장이서고, 모든 과일과 채소의 향을 맡을 수 있고... 주말이 되면... 수백 개의 좌판이 세워져...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리고 "친구들이 많아서 좋다"라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영화 첫 장면에서 시작된 두 주인공을 묘사한 장면입니다. 두 캐릭터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목소리'입니다. 애나라는 캐릭터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아나운서의 소개말, 대중의 환호, BGM이 있지만 정작 애나의 목소리는 없었습니다. 반면 윌리엄 태커는 별다른 소리가 없이 자신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장면은 보면 되고, 대사는 들으면 되지만, 의도된 부재를 찾아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아닐까 합니다.


2. 일상의 기억; 쓸데없음의 있음

    윌리엄은 작은 여행전문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했었지만 부인이 해리슨 포드를 닮은 남자와 만나 도망가 지금은 친구 스파이크와 집세를 함께 부담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그럭저럭 실패한 인생입니다. 물론 영화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는 휴 그랜트 얼굴을 하고, 런던에 서점을 운영하며, 무려 런던에 집도 있으니... 대성공한 인생이기에 공감이 안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비극적 인생이라고 합의를 보고 일단 넘어갑시다.


    그의 친구들도 알고 보면 모두 어디 내놓기엔 좀 그런 인생입니다. 레스토랑을 차린 친구 토니(리처드 맥케이브 )는 망했고, 첫사랑이자 친구의 부인 벨라(제나 맥키 )는 두 다리가 불편하고 불임이며, 눈치 없는 증권사 친구 버니(휴 보네빌 )는 실적 저조로 실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뿐인 여동생 허니(에마 체임버스 )1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룸메이트 스파이크(리스 이판 )는 그 자체로 비현실적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윌리엄은 이런 친구들이 있어서 노팅힐이 가장 좋다고 말합니다. 그 친구들이 자신이 경제적으로 힘들 때 뒷받침해줄 만한 재력가도 아니고, 법적 문제에 얽혔을 때 손 좀 써줄 수 있는 권력가도 아니며, 쓸모 있는 정보를 구할만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좋을까요. 영화에서는 그 이유를 거듭된 식사와 대화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그 대화에 어떤 거창한 내용의 말들이 있는 게 아닙니다. 쓸모없는 말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거듭된 그런 말들 끝에 그들은 한 마음의 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반면 애나 스콧은 자신에게 일이 터졌을 때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요"라면서 윌리엄 앞에 등장합니다. 영화에서 그녀는 윌리엄 이외의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촬영장에 온 윌리엄을 보고 다른 배우가 그에 대해 묻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그녀입니다. 그녀는 늘 남이 원하는 모습, 원하는 행동, 원하는 말을 하며 살아온 셈입니다. 심지어 가장 자신다워야 할 '연애'에 있어서도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대비를 보여주는 장면이 윌리엄 집에 잔뜩 몰려든 기자를 문 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입니다.


    윌리엄은 애나에게 진정하라며, "신문은 내일이면 쓰레기통에 들어가요... 단 하루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애나는 "신문은 기록이에요... 영원해요."라고 말하죠. 두 사람 다 맞는 말입니다. 이 장면에서 스파이크가 입만 조심했어도, 그들이 좀 더 행복한 시간을 갖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갈등을 빚을 지점이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더 옳은지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인생에 있어서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단순화하면 '내 기억' vs '남의 기억'의 문제입니다. 적어도 지극히 사적 행위인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내 기억', '내 선택'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쓸모없다'라고 반복해 표현했습니다. 내 삶을 형성하는 우리네 일상의 기억은 상당수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쓸모없다고 판단은 누가 할까요? 정확히는 내 삶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쓸모없는 것'입니다. 반면 내 삶에는 '쓸모있다/없다' 자체가 무슨 소용이 있을 까요. 그냥 내 삶입니다. 내 삶 자체가 짜인 각본이 아니기에 그 판단 자체도 불가합니다. 다시 말해 그런 판단은 할 수 없을뿐더러, 할 필요도 없다입니다.


3. 소비되는 이미지; 쓸모있음의 없음

마지막 브라우니는 가장 불쌍한 사람에게
- 영화 <노팅힐>


    마지막 브라우니를 먹을 자격 하고 가장 거리가 먼 애나가 불쌍한 윌리엄을 제지하고 자신이 먹을 자격이 있음 이야기합니다. "19살에 데뷔해서, 10년간 굶고 있고..."로 시작해 먼 미래에 자신이 늙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을 털어놓습니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애나가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바로 자신의 현실(real)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스파이크가 데이트를 위해 셔츠를 고르며 윌리엄에게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스파이크가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데 네가 도움이 될까?"라고 말하는데, 윌리엄이 "제삼세계의 부채를 탕감할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한편 윌리엄이 애나와의 영화 데이트를 앞에 두고 안경을 못 찾아 스파이크에게 "인생은 잔인해"라고 말하자, 스파이크가 "동아시아 지진? 아니면 고환암?"이라고 반문합니다. 두 대화 모두 "중요하다", "잔인하다"를 두고,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잔인한지 친구 간에 농을 주고받은 것입니다.


    두 친구의 농담은 영화 전체에 걸쳐 이야기하는 현실(real) VS 비현실(surreal), 소비되는 이미지 VS 일상의 기억, 대화는 삶 VS 전시하는 삶, 쓸모없음의 있음 VS 쓸모있음의 없음의 구조를 그대로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누구에게 중요하고, 누구에게 잔인한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브라우니를 쓸데있다고 여겨지나 사실 쓸데없는 전시하는 삶에게 건네고 있습니다. 물론 애나의 직업이 갖는 특수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전시해야 하는 직업 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삶을 채워서는 안 된다고 영화가 강조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공원 한 복판에 놓인 벤치에서 도란도란 시간을 나누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 벤치에는 "늘 준과 함께한 조셉으로부터"라고 새겨진 바로 그 의자입니다. 더 이상 애나는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 불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그녀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녀에게도 드디어 집(home)이 생긴 셈입니다. 윌리엄과 애나 사이 수천 킬로 떨어진 물리적 거리는 함께 대화를 나누며 사라졌습니다.


*부록

    영화에서 배우 리스 이반스가 분한 스파이크(spike)는 말 그대로 [뾰족한 것, 못]을 의미합니다. 이 캐릭터는 영화에서 가장 쓸데없어 보입니다. 저렇게 살아도 될까라고 염려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가장 제대로 삶을 사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윌리엄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영혼에 일침을 가하는 역할을 합니다. 진짜 내 마음의 소리를 찾게 해주는 캐릭터입니다. 


* 여러분의 라이킷은 다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 라이킷을 먹고 자라는 호덕 올림.


1. 에마 체임버스는 2018년 향년 53세로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죽음에 애도를 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