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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렌체장탁 Mar 25. 202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짧은 추모.


 오늘 큰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한참이나 뵙지 못하고 그저 상징적인 존재로 늘 곁에 계신다고 생각하던 큰아버지인데.. 돌아가셨다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 아버지는 7남매의 막내인데 돌아가신 큰 아버지는 그 7남매의 장남이셨다.


 어린 시절 매년 큰 집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마다 막냇동생의 자식이었던 우리를 마치 손주처럼 예뻐해 주셨던 게 기억이 난다. 서울에서 경상도까지 가장 먼 길을 가면서도 가장 먼저 도착하는 우리 식구를 보면 늘 기특해하시고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어~~ 윤석이 왔나. 현화승화 왔나." 하시며 반겨주셨던 모습. 그 옛날 30년 전인데도 아직 초등학생도 안된 우리한테만 흰색 봉투에 은행에서 뽑아온 새 지폐로 5만 원을 넣어주시던 모습. 제사를 지내고 나서 각종 나물을 넣고 밥을 비벼주시며 제사비빔밥은 큰아버지가 비벼야 가장 맛있다면서 큰 양푼에 비빈 다음 밥을 나누어 주시던 모습.  개를 무서워하는 우리를 위해 키우던 개를 잡으면서 우리를 들여보내던 모습 등 오래된 필름 속 영화처럼 장면들이 스쳐가고 중저음의 큰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뵀을 때는 코로나 때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코로나 덕분에 한국에 꽤나 오래 체류하게 된 기간 동안 아버지랑 둘이서 큰집에 갔었다. 우리는 외갓집도 같은 도시라서 늘 큰집에는 인사만 하거나 제사만 지내고 외갓집 이모댁으로 바로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는 쿨하게 보내주셨다.


 그런데... 마지막에 찾아뵌 날은 왠지 달랐다. 오랜만에 보기도 했지만 유달리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나를 보는 큰아버지 눈에 눈물이 조금 고였던 것도 같다. 우리가 워낙 갑작스레 찾아갔기 때문에 큰아버지는 병원에 들르셔야 하는 스케줄이 있으셨고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없음을 유독 안타까워하셨다. 자기가 얼른 병원에 다녀올 테니 꼭 같이 밥 먹고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셨는데 그날도 외갓집과 미리 약속이 있었던 아버지와 나는 결국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며 차 한잔 마시고 큰집을 나왔다. 절대 잡으시는 분이 아니신데 너무 아쉬워하셔서 그 발걸음이 참 무거웠었는데 그 모습이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내가 나이 드는 만큼 큰아버지도 나이가 드신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그게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의미인 줄은 몰랐다.  


 7남매의 기둥이자 등불로 말썽 많고 사고 많은 긴긴 세월에도 늘 그 자리를 지켜주셨고 모두의 의지가 돼주셨던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 자주 뵙지 못했음에도 그 상실감이 꽤나 크고... 멀리 있다는 이유로 가보지 못하는 마음이 몹시 무겁다.


 나도 내가 이렇게 슬플 줄은 몰랐네.


 그러나 본인, 자녀, 손주 가족 모두 성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고 살아계신 동안 행복하신 순간이 더 많았기에 여한 없이 더 좋은 곳으로 가셨으리라 믿는다.(이력을 다 적으면 참으로 대단하시다!)  


  유일하게 의지하던 큰 형님을 잃은 우리 아버지가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그저 빌어본다.

외국에 살면서 가장 크게 각오해야 하는 점은 다른 게 아니라 이런 순간이다. 이렇게 갑자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보를 듣거나 사고가 생겼을 때 바로 가지 못한다는 것. 바로 간다 해도 너무 늦을 수도 있다는 것. 늘 각오하고 살지만 겪을 때마다 쉽지 않다. 곁에 있어줄 수 없음이 안타깝고 다음에 일어날 일이 두려워진다.


 오늘의 상실에 이어 다가올 미래들이 두려워 더더욱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내 사람들의 슬픔에 내가 너무 늦지 않기를 빌어본다.....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큰아버지.

많이 예뻐해 주시고 늘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비하인드.
글을 올리면서 사진을 한 장 올리고 싶다고 생각하다 문득 깨달았다. 큰아버지랑 나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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