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거의 모든 바퀴벌레 유입로 차단하기

어느 개발자의 현실 디버깅

by Bluewhale
이 글에는 바퀴벌레 사진이 없습니다. 안심하세요.


이젠 도망갈 수 없다

어느 집이나 바퀴벌레를 한두 번쯤은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정기권이라도 끊은 듯 몇 달이 지나도록 끊임없이 나온다면, 그곳이 내 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 집은 가장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바닥이 밝은 색이라 이물질이 잘 보이는데, 작고 까만 것들이 다 바퀴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몸에 닿는 모든 감각은 바퀴를 연상시킵니다. 언젠가부터 집에 들어오면 마치 집에 도둑이 들었나 확인하듯 바퀴가 자주 나오던 곳을 먼저 훑어봅니다. 집 밖은 자유이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오감을 바퀴가 지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장장 21개월의 전쟁 끝에 이제는 바퀴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박멸이 아니라 휴전 중이라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암튼, 불과 두 달 전과 달리 이제는 수면제 없이도 잘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내 집이라고 느끼나 봅니다.


본격적으로 제가 어떻게 바퀴로부터 벗어났는지 풀기 전에,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먼저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유입로 차단 프로세스

1. 바퀴 유입로로 의심되는 곳을 찾는다.
2. 유입로를 막기 전에 바깥쪽에 독먹이약을 놓는다.
3. 유입로를 차단한다.
4. 차단한 유입로 근처에 독먹이약, 끈끈이 트랩을 놓아 계속 바퀴가 들어오는지 모니터링한다.

준비물

비초산 실란트 실리콘

매꿈씰, 점토형 메꿈제

독먹이약(맥스포스 셀렉트겔)

에프킬라, Pest7 Guard

끈끈이 트랩

물티슈

천 테이프

메꿈제와 실리콘은 틈을 막는 데 사용합니다. 실리콘은 굳는 데 오래 걸리지만 접착력이 우수하고 유성이라 물에 녹지 않습니다. 게다가 유연해서 잘 부서지지도 않습니다. 틈을 막는 데에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이소에서 쉽게 구하실 수 있습니다. 꼭 유성으로 사세요.

실리콘은 굳는 데 오래 걸려서 큰 구멍을 막기는 어렵습니다. 큰 구멍에는 메꿈제를 사용해 줍니다. 쿠팡에 '점토형 메꿈제'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저는 '화인퍼티'라는 제품을 사용했습니다. 문제는 메꿈제가 보통 물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메꿈제로 구멍을 막으신 뒤에는 표면을 실리콘으로 완전히 마감해 주셔야 안전합니다.

바퀴 유입이 의심되는 곳 근처로 독먹이약을 놓습니다. 단, 독먹이약을 놓으면 일단은 바퀴가 유인될 것입니다. 안방 등 바퀴를 웬만하면 안 보고 싶은 곳에는 깊숙한 곳에만 독먹이약을 놓고, 방 가장자리로는 에프킬라, Pest7 Guard 등을 뿌립니다.



1. 건물 밖에서 들어오는 놈 막기

입주 초반 1-2주에 한 번씩은 4cm가량 되는 큰 바퀴를 만났습니다. 저희 집이 4층이기 때문에 밖에서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집 모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밖과 연결된 구멍을 찾았습니다.


보일러실과 외부로 통하는 길 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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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배기구, 배수관, 환기구

보일러 배기구가 밖으로 빠지는 연결부가 부서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람이 숭숭 통할 정도로요. 이런 경우 실리콘으로 처리를 해주어야 합니다. 테이프나 접착제는 다시 떨어져 틈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리콘은 경화에 시간이 걸리지만 유연성이 있어 훨씬 견고하게 막아줍니다.

두 번째 사진은 천장에서 배수관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천장 벽과 배수관 사이에 틈이 커서 실리콘으로 막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럴 때는 매꿈씰이나 점토형 메꿈제로 틈을 막아줍니다. 단, 물에 약하기 때문에 반드시 실리콘으로 마무리를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세 번째는 환기구입니다. 환기구니까... 뚫려있는 게 맞긴 합니다만... 무방비 상태로 외부와 통해 있어서 여기로도 많이 유입됐을 듯합니다. 여기는 천 테이프를 사용해서 막고 실리콘으로 마감해 주었습니다.


창문 틈 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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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틈 문풍지로 막기

문풍지로 창문 가장자리 틈을 막아줍니다. 사실 창문은 유입로를 완벽하게 차단하기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해줍니다. 겨울에 방풍 효과도 있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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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뭉-방충망 사이 틈, 물구멍 막기

방충망과 창문이 만나는 부분에도 틈이 있습니다. 이 틈에는 물티슈를 적셔서 쑤셔 넣어주시면 됩니다. 마르면서 알맞은 모양으로 굳게 됩니다. 단, 이 방충망은 여시면 안 됩니다. 물티슈가 빠질 테니까요.


물구멍도 막아줍니다. 쿠팡이나 다이소에서 '물구멍 방충망'으로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이 정도 하니 며칠에 한 번씩 보이던 큰 놈들은 사라졌습니다. 당분간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곧 6월, 놈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가 오면서 전쟁은 다시 시작됐습니다



2. 건물 내부에서 들어오는 놈 막기

초여름, 아침마다 여기저기서 새끼 바퀴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죽어있는 놈도 있고 살아있는 놈도 있습니다. 다 막은 줄 알았는데 어디에서 들어오는 것인가... 다시 수사에 착수합니다. 이번에는 건물 외부가 아니라 빌라 건물 내부 어딘가에서 서식하다가 집으로 들어올 만한 구멍에 주목했습니다.


베란다 배수구, 천장과 배수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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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배수구, 천장과 배수관 사이

배수구이니 아예 막을 수는 없고... 고민하다가 다이소 방충망을 사서 덧댄 다음 실리콘으로 가장자리를 봉해주었습니다. 접착제로는 확실하게 밀봉하기 어려워서, 이럴 땐 실리콘만 한 게 없습니다. 쿠팡에 보니 배수구용 방충망도 있던데, 저는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이 방법을 썼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천장과 배수관 사이 틈을 막은 것입니다. 곰팡이가 핀 것을 보아 습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점토로는 못 막습니다. 습기 없는 화창한 날 실리콘으로 막아줍니다. 구멍이 크다면 비닐이나 뽁뽁이 등을 사용해서 먼저 막고 실리콘으로 마무리해 줍니다.



화장실 하수구, 배수관, 타일 틈새
IMG_9160.JPEG 화장실 환풍기

화장실 환풍기를 열어보면 위와 같이 생겼습니다. 놀랍게도 저 환풍기를 뜯어보면 환풍구가 연결돼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천장과 오픈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집도 그렇고, 예전 집도 하도 담배냄새가 역류해서 환풍기를 교체하려고 뜯어봤더니 환풍관(?)이 연결돼있지 않더군요. 이러면 천장에 서식하는 놈들이 환풍구를 통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물론 환풍구가 연결돼 있다 하더라도 환풍기를 타고 들어올 수 있긴 하겠네요.

베란다 배수구와 마찬가지로 방충망을 덧대고 가장자리를 붙여줍니다. 여기서는 실리콘을 사용하지 않고 양면테이프로 붙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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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하수구

화장실 바닥 하수구입니다. 보통 기본적으로 트랩이 설치돼 있는데요, 트랩을 드러내 안을 들여다보니 새끼 바퀴들이 올라오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아래 구멍에도 트랩을 한 번 더 설치해 주었습니다. 쿠팡에서 '하수구 트랩'으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잘 보시고 사이즈에 맞게 구매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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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 뒤 배수구

세면대 뒤를 보면, 세면대 물이 빠지는 배수구가 있습니다. 이 배수관과 배수구 사이가 무방비로 뚫려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이에 설치하는 트랩이 또 있습니다. 위 사진은 트랩이 설치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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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천장 뚜껑

화장실 천장을 보면 여러 배선을 만지기 위한 뚜껑이 있습니다. 이 틈으로도 바퀴가 들어옵니다. 사실 모든 구멍으로 바퀴가 들어옵니다. 보이는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아야 합니다. 후... 특히 저희 집의 경우, 바퀴가 벽 사이, 천장에 서식하면서 한 번씩 집으로 유입되는 케이스였습니다. 암튼, 천장 뚜껑은 간단하게 테이프로 발라주었습니다.


IMG_9170.JPEG 화장실 타일 틈새

화장실 타일 깨진 곳, 마감이 안 된 곳을 통해 벽 사이에 서식하는 바퀴가 들어옵니다. 실리콘은 표면이 충분히 건조된 상태에서 바르시는 게 좋습니다. 화장실은 습기가 많기 때문에 충분히 물기를 제거하신 뒤 실리콘으로 막아줍니다.


싱크대 배수구, 배수관
IMG_9178.JPEG 싱크대 배수관, 배수구

싱크대 아래 장을 열어보면 물이 빠지는 관이 보일 겁니다. 이 관을 타고 바퀴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트랩을 설치해주어야 합니다. 사진처럼 관과 관 사이에 트랩을 설치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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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싱크대 아래 걸레받이를 열어봅니다. 싱크대 장 아래 사진에 표시된 부분이 걸레받이입니다. 포크 등을 사용해서 윗부분을 당기면 걸레받이가 열립니다. 이때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싱크대 아래 공간은 바퀴가 서식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으로, 여는 순간 놈들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반드시 에프킬라를 준비하시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고, 놈들이 놀라 뛰어나오지 않도록 천천히 여시기 바랍니다.

IMG_9179.JPEG 걸레받이 안 싱크대 배수관

걸레받이를 열면 배수관이 바닥으로 빠지는 구멍이 보이실 겁니다. 화장실 세면대 뒤 배수관에 했던 것처럼 트랩을 설치해 줍니다.



3. 상상도 못 했던 유입로

여기부터가 하이라이트입니다. 이제 정말 다 막았다고 생각했을 때쯤 또 바퀴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다 큰 놈들이... 얼마나 절망적이었나 모릅니다. 그날 새벽, 동이 틀 시간까지 온 집을 뒤져 찾아낸 구멍들입니다.


방, 거실 전등

막 잠이 드려는 무렵, 머리맡에서 툭 소리가 들렸습니다. '툭 소리'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무게감에서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를요. (후...) 놈이 수직낙하한 지점은 정확히 천장 전등의 위치와 일치했습니다. 전에 집에 오셨던 업체분께서 지나가듯이 "전등 저기도 약 쳐줘야 돼요. 거기서도 나와."하고 지나가셨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참으로 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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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방 등 전등의 뚜껑을 열면 위 사진과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위아래로 보이는 나사까지 풀어서 드러내면 천장으로부터 전선이 나오는 구멍이 있을 것인데, 그 구멍을 통해 천장 공간에 서식하는 놈들이 들어옵니다. 보통 바퀴가 70%는 부엌에서 많이 나오는데, 굳이 에어컨도 항상 나오고 있어서 가장 춥고 건조한 안방에서 바퀴가 계속 나왔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때 깨달았습니다. 굳이 안방으로 기어들어온 것이 아니라 천장에서 서식하던 놈들이 다이렉트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 구멍은 특히 전선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막기 까다로운데요, 저는 뽁뽁이와 점토로 먼저 구멍을 막고 실리콘으로 빈틈이 없도록 마무리를 해주었습니다.


IMG_9171.JPEG 베란다, 현관등

베란다와 현관 천장에 있는 노란 등입니다. 이런 등은 뚜껑을 분리하는 것이 어려워서 뚜껑과 천장 사이 틈을 메꿈씰로 막아주었습니다. 쿠팡에서 '메꿈씰'로 검색하시면 튜브형태로 돼있는 메꿈제가 나오는데, 이렇게 좁은 틈에 바르기에 좋습니다.


부엌 환기구가 밖으로 나가는 구멍

이 집은 리모델링 후 제가 첫 입주였습니다. 마감이 잘 안 된 부분이 여러 가지 있었지만, 이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납니다. 바로 부엌 환기구가 바깥으로 빠지는 구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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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가스레인지나 인덕션 위 환기구가 빠지는 장을 열어보면 위와 같은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집은 부엌이 바로 건물 밖을 마주하고 있는데요, 환기구 관과 구멍 사이 공간이 마감되지 않은 채 덩그러니 뚫려 있었습니다. 어쩐지 부엌이 춥더라니... 이 경로로도 성충이 많이 유입됐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위 사진은 뽁뽁이로 사이 공간을 막고 실리콘으로 빈틈을 마감해 준 모습입니다.


여기까지 처리하고 나니 큰 놈들은 더 이상 안 나왔습니다. 새끼들은 계속 나왔는데요, 아무래도 오래된 집인지라 갈라진 벽 틈새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최대한 메꿈씰로 막았지만 이제 더 손 쓸 도리가 없어서 열심히 건물 전체에 독먹이 약을 놓고, 방에는 들어오지 않도록 방 테두리에 에프킬라, Pest 7 Guard를 뿌렸습니다.






기타 팁

유입로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년간 바퀴와 전쟁을 치르면서 얻은 기타 지식들을 공유해 보겠습니다.


독먹이약의 모든 것

독먹이약을 놓으실 때는 볕 잘 들고 훤히 보이는 곳에는 놓으실 필요 없습니다. 부엌 구석구석, 냉장고 아래 등 따뜻하고, 어둡고, 습한 구석 위주로 놓으시면 됩니다. 바퀴벌레는 은폐성이 강해 좁은 틈에 납작하게 들어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서랍장, 경첩 등 좁은 틈에 도포해 주세요.

바퀴는 조금씩 작게 먹이를 뜯어먹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한 군데에 죽 짜놓는 것보다는 좁쌀만 한 크기로 작게, 좁은 간격으로 도포하시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독먹이약도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제가 올해 4년 전에 산 맥스포스겔을 쓰다가 도저히 효과가 없어서 새로 산 약을 썼더니 바로 사체가 보이기 시작더군요. 놈들도 신선한 것을 좋아하나 봅니다.


살아있는 놈에겐 에프킬라가 최고다

바퀴벌레가 지나다닐만한 곳에 뿌려서 바퀴가 밟고 지나가면 서서히 마비가 되게 만드는 방식의 퇴치제로 유명한 'Pest 7 Guard'가 있습니다. 가격도 굉장히 비쌉니다. 저도 사용해 봤는데요, 살아있는 놈을 마주했을 때는 영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벽지가 젖을 정도로 쏴댔는데도 버티더군요... 그 후로는 바로 에프킬라를 구비해 두었는데, 살아있는 놈을 잡을 때는 이만한 게 없습니다. 큰 놈도 2초면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놈을 처단할 때는 반드시 에프킬라입니다.


끈끈이 트랩

끈끈이 트랩은 바퀴유입로 확인을 위함입니다. 유입로로 의심되는 곳에 놓으시고, 트랩 가운데에 독먹이 약을 좁쌀만큼 짜놓으시면 더 효과적입니다.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끈끈이 트랩은 유입로 확인 용도로만 쓰시는 게 좋습니다. 독먹이약은 바퀴가 먹으면 서식지에 가서 친지들과 나눠먹고 다 같이 죽게 만드는 연쇄살해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니, 독먹이약을 먹은 바퀴가 트랩에 걸려 혼자만 죽게 된다면 독먹이약의 효과가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바퀴가 끊임없이 나올 때는 이 집이 너무 싫었습니다. 올해 바퀴가 나오던 두 달간은 수면제 없이 잠들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전세 계약이 한참 남았는데도, 그냥 이대로 짐을 빼서 본가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한 번은 '왜 바퀴는 특별히 끔찍할까?', '장수풍뎅이, 개미, 누에와 다른 게 뭐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 혐오가 학습된 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내가 바퀴를 적어도 다른 벌레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벌레로 받아들인다면 어느 정도 공존할 수도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억지로 바퀴사진을 몇십 장씩 찾아서 본 적도 있습니다. 별 효과가 없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시간이 약인지, 독먹이약 효과가 나타난 건지, 평화를 되찾은 지 한 달이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야 잊고 있었던, 내가 이 집을 좋아했던 이유들이 생각이 납니다. 근처에 저수지를 끼고 뛸 수 있는 러닝 코스가 있다는 것, 통창으로 보이는 초등학교 뷰, 널찍한 주방. 바퀴 하나로 인해 이 모든 장점들은 지워졌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웃긴 일입니다. 손바닥만도 안 한 생물체 하나가 제 삶을 이토록 지배했다는 것이요. 그러거나 말거나 죽을 때까지 바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바퀴벌레로 인해 고생하시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이 도움이 됐기를, 평안을 찾으시길 기도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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