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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Jan 01. 2019

<지금 다시, 헌법>을 읽고

간략한 소개


지금 다시, 헌법 / 차병직, 윤재왕, 윤지영 저 / 2016년 출간


 이 책은 법률가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헌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대중들이 익히 아는 사건과 판례를 소개하여 일반인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이 책은 헌법의 순서에 맞추어 구성되어 있다. 가장 앞에 전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다음에 본칙 1장부터 순서대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부칙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읽기 쉬운 책을 지향했지만,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과 헌법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는 전개 때문에 쉽게 읽히는 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는 다면 헌법에 대한 이해를 크게 키울 수 있을 것이지만,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관심 있는 부분부터 읽는 방식으로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헌법의 구성


 헌법에 대한 책이니 만큼, 헌법에 대한 내용을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전문, 본칙, 부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칙은 다시 10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 가장 앞에 나오는 전문은, "본문이 시작되기 전에 헌법의 기본원리와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제정된 유래를 간략히 표현하고 있는 머리말"이다. 

 본칙은 보다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본칙의 내용을 보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장 "총강"에서 주권, 국민, 영토,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국민의 기본권과 국민의 의무를 규정한다. 이후에는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와 같은 국가의 핵심적인 기구에 대한 조문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 헌법 개정과 같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에 대한 조문이 이어진다.

 가장 마지막에는 부칙이 나오는데, "부수적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법적 효력은 본문과 같다."


헌법 전문


 헌법 전문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기본 원리, 추구하는 가치, 유래에 대한 내용이다. 대부분의 성문헌법은 미국 헌법을 본받아 전문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헌법에 전문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헌법 전문의 의미와 효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p. 24 ~ 25)


 "멋진 어휘와 우아한 표현으로 이루어진 전문은 헌법을 빛나게 장식할 뿐만 아니라, 헌법에 생동감까지 불어넣어 준다. 헌법의 권위와 가치를 드높이는 듯 보이기도 한다." 
 "전문은 단순히 읽는 사람의 가슴이나 뛰게 하고 헌법을 그 형식에 어울리게 꾸며주는 장식품이 아니다. 전문에 표현된 내용은 헌법 본문의 각 조항처럼 헌법으로서 효력을 지닌다. 헌법 본문에는 없으나 전문에 있는 내용에 효력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



침략전쟁의 부인, 국군의 사명에 대한 조항


 제5조는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대한민국 국군의 사명을 규명한다.

 한국 정부는 2003년에 이라크전에 병력을 파견하였고, 한 시민은 헌법 제5조를 근거로 병력 파견 결정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미국은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침공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량살상 무기의 존재는 증명되지 못했고, 일방적 침략전쟁이었다. 그 시민은 이와 같이 침략전쟁인 이라크전에 파병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해당 파병 행위는 헌재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p. 55)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결단하고 국회가 동의한 파병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결정했다."


정당에 대한 조항


 제8조는 정당제를 규정한 조항이다. 이 조항은 정당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는 원칙을 규명하면서, 동시에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해산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2014년에 큰 논란을 일으킨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있었다. 헌재의 결정문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 둘째, 피청구인 소속 국회의원 김미희,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이석기는 의원직을 상실한다." 이 결정문의 모든 부분이 논란을 일으켰으나, 가장 격론이 벌어진 부분은 의원직을 상실시킨 주문이다. 격론이 벌어진 이유는 정당해산 시 의원직의 상실 여부를 규정하는 법률이나 헌법 조문이 없기 때문이다. 헌재는 당시 그 나름의 이유를 들었지만, 이 이유에 납득하지 못하는 시민이 많았다.

 "백가쟁명"을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로 본다면, 정당 해산이라는 것은 굉장히 신중하게 행해져야 한다. 정당 해산제도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남용된다면, 결국 그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닐 것이다. 하나의 승리한 정당에 의한 독재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법을 통한 척결로써,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민들의 늘 깨어있는 자세가 있어야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주거보장에 대한 조항


 제16조는 주거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항으로서, 주거침입죄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이 주거침입죄라는 것은 엉뚱한 논리에 의해 처벌을 위한 마술 지팡이 구실을 할 때가 있다.

 한 가지 사례를 보면 "초원복국집 사건"이 있다. 199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부산의 초원복국이란 식당에서 부산지역 기관장들의 모임이 있었고, 그 자리에 전 법무부 장관이었던 김기춘이 참석하였다.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는 지역감정을 이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대화 내용이 정주영 후보 측에서 설치한 도청장치를 통해 녹음이 되었다. 정주영 후보 측에서는 이를 언론을 통해 공개했는데, 이는 엉뚱하게도 역풍으로 작용하여, 정주영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김영삼의 지지율을 상승시켰다. 대선이 끝난 후, 대법원에서는 도청장치를 설치한 사람들에게 주거침입죄의 책임을 물었다.

 도청은 분명한 문제 행위이지만, 국가기관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일반인에 의한 것인 경우, 해당 사안의 경중에 따라 증거로써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통례이다. 초원복국집 사건은 부산지역 기관장 모임의 주동자가 선거법 위반의 책임을 졌어야 하는 경우였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공무원의 불법행위와 배상책임에 대한 조항


 제29조는 공무원의 불법행위와 배상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의 1항은 국가나 공무원의 행위로 인해 국민이 손해를 입었을 경우, 그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당연한 이야기로 들린다. 2항의 내용은 군인, 군무원, 경찰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조항으로서, 해당하는 경우에는 1항에 의한 국가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2항은 흔히 이중배상 금지 조항이라 불리며, 베트남전 관련 배상 소송이 급증하자 국가의 재정부담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국가배상법"에 신규 조항으로 들어왔다. 이 조항은 71년에 헌법심판을 담당하던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으나, 72년에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헌법에 조문으로 들어왔다. 그로부터 46년 후인 지금에도 그 조항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인데, 헌법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라 할 수 있다.


농어촌 종합개발과 중소기업 보호 육성에 대한 조항


 우리 헌법은 경제에 관하여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으며, 제123조가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이다. 특히 2항에서 "지역 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헌법이 이렇게 세부적인 것을 규정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농수산업에 의존하는 지역이 경제적으로 보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심한 불균형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서 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헌법 조항으로 규정하는지 아니면 특정 법률이나 하위 법칙으로 규정하는지는 나라마다 다르다고 한다. 이러한 조항에 헌법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87년 개헌 당시, 개헌에 참여한 사람들이 지역 간 균형발전에 큰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맞춤법


 우리나라 헌법은 명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동시에 헌법이 맞춤법에 어긋하는 부분이 많다고 이야기도 많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균형있는" 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다. "균형있는"은 "균형 잡힌"으로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헌법 조문에 많이 등장하는 "붙이다"는 표현도 맞춤법에 맞지 않다고 한다. "재의에 붙이고", "국민투표에 붙여" 등의 표현은 "재의에 부치고", "국민투표에 부쳐"로 바뀌는 것이 맞다고 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헌법에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상당히 많은 부분이 어긋나 있다는 점을 잘 알게 되었다.


마치며


 짧게 쓰려고 했는데, 예상외로 길어졌다. 이야기를 시작하다 보니, 할 이야기가 많아졌다. 헌법이라는 주제가, 그리고 이 책이 나로 하여금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하게 하였다. 헌법 조문들은 처음 보면 따분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조문을 두고 헌법 소원 청구를 하고, 사법부는 그 조문을 바탕에 두고 판결을 한다.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건들의 상당수가 헌법과의 연관이 깊은 현실을 보면, 헌법 조문이 우리의 현실에 너무나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헌법이란 무엇인가?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더듬거리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대한민국 그 자체를 규정하는 법이라고. 대한민국 국민인 나와 우리의 인권을 규정하고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규정하는 법이라고. 쉽지 않은 책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헌법을 조금 더 이해하고, 대한민국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헌법과 대한민국에 대해서 열심히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열심히 고민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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