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The shortest history of Europe) / 존 허스트(John Hirst) 저 / 김종원 역 / 2017년 국내 출간
이 책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는 긴 역사를 상당히 짧은 분량 안에서 모두 다루고 있다. 또한 단순히 짧은 것만이 아니라, "문영의 본질적인 요소를 포착"하기 위한 노력이 느껴진다. 기존의 많은 역사서들의 많은 부분이, 특정 사건, 특정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보다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고 있다.
역사라는 주제를 얇은 책 한 권으로 끝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얇은 책 한 권에 역사상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이 책은 상당히 짧은 분량이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본질적인 요소에 대해서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쓰였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역사 교양서이다.
좋은 역사서이지만, 아쉬운 부분은 있다. 첫째는 유럽 외의 지역의 역사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 제목이 "세계사"이기 때문에,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사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제가 "The shortest history of Europe"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저자의 잘못은 아니다. 둘째는 유럽의 역사에서도 "식민지"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금 더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짧은 역사서"를 지향했고, 따라서 저자가 그러한 부분들을 언급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책도 유럽 역사의 출발점인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시작한다. 놀랍도록 총명한 그리스인이 철학, 예술, 수학, 과학의 유산을 만들어 냈고, 법률과 전투에 능한 로마인들이 로마 제국을 건설했다. 그리고 기독교가 탄생했다. 로마 시대 역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그리스-로마 문화와 기독교의 융합일 것이다. 기독교 초창기 시절에 기독교는 박해의 대상이었다. 기독교도는 유일신을 믿으며, 황제를 신으로 섬기지 않은 것이, 박해의 첫 번째 이유이다. 다만, 유대교도 유일신을 믿는다는 점은 동일한데, 기독교는 유대교와는 다르게 자신이 어느 민족이든지, 어디에 살든지 상관없이 기독교도가 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이것이 박해의 두 번째 이유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기독교를 박해했었다.
그러나 어느 황제가 칙령을 내리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인데, 이를 계기로 기독교도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밀라노 칙령 이후로 지속적으로 친기독교 정책만이 쓰인 것은 아니지만,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는 마침내 국교로 공인(380년)되었고, 로마 제국은 기독교 사회가 되어갔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화"된 것이다. (책에서는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언급되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는 유럽의 중세를 "그리스-로마의 지식", "기독교 교회", "게르만 전사"의 3가지 요소로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다. 흔히 중세를 찬란한 그리스-로마 문화의 맥이 단절된 암흑기로 표현하는데, 저자는 오히려 "기독교 교회"에 의해 "그리스-로마의 지식"이 보존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세를 단순한 암흑기로 보았던 내 관점에서는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물론 기독교 교회 문화가 중세의 지배적인 문화이긴 했지만, 그리스-로마의 지식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고, 특히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교리를 결합한 형태의 철학도 등장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기독교 교회" 문화와 "그리스-로마" 문화가 묘하게 혼합되어 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게르만 민족의 침입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게르만 민족의 침입은 여느 침입과 다른 특징들을 가지는데, 특히 게르만 민족이 침입 대상의 종교를 수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보통의 침입의 경우에는 침입 대상의 종교를 침입자의 종교로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게르만 민족은 반대였다. 이러한 이상한 침입은 결국 "게르만 전사"에 의해 보호되는 "기독교 교회"를 만들었다. 게르만 민족은 완전히 기독교도가 되었고, 기독교의 수호자가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기독교 교회" 세력이 이 이방인으로 하여금 기독교 신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하였기 때문이며, 마침내는 "기독교 교회" 세력은 이 새로운 통치자들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을 의무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게르만 전사가 기독교 교회를 지원하고, 기독교 교회는 그리스-로마의 지식을 보존하는 상황이 되었고, 3가지 요소가 기묘하게 혼합된 유럽의 중세가 형성되었다.
유럽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고, 수많은 언어가 있다. 유럽의 수많은 언어 대부분이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데,
조금 더 세분하면, 로망스어, 게르만어, 슬라브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저자는 로망스어, 게르만어 그리고 라틴어를 중심으로 유럽의 언어 역사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로망스어 중의 하나인 프랑스어의 경우에, 라틴어로부터 시작해서 5세기경 약간의 게르만어 단어가 추가되었다. 이는 로마 제국 시대의 게르만족 칩입에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를 거쳐 현재의 프랑스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게르만어 중의 하나인 영어는, 게르만 어족이 잉글랜드에서 라틴어를 완전히 밀어내면서 성립되었고, 주변의 다양한 세력의 침입에 따라 변화를 거쳐 현재의 영어가 완성되었다.
라틴어의 경우에는, 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더 이상 일반인에 의해 사용되지 않았다. 오직 학문, 문학, 그리고 교회와 같은 특별한 영역에서만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학문, 문학, 교회의 언어는 라틴어를 배운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라틴어의 사용은 더욱더 줄어들어, 현대에는 학문, 문학, 교회에서도 라틴어는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라틴어는 죽은 언어이다. 하지만 서유럽을 중심으로 변형된 라틴어인 로망스어가 사용되었고, 그 결과 현재의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이 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라틴어는 오래된 고전문학에서 사용되었고, 학계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오랜 기간 사용하였기에, 아직도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죽은 언어임에도 그 흔적이 도처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저자는 라틴어를 "살아있는 송장"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은 르네상스를 맞이하면서 중세를 벗어난다. 이어서 종교개혁, 과학혁명 등이 일어난 근대로 접어드는데, 근대 유럽에서 일어난 다양한 변화들로 말미암아 산업혁명이 일어난다.
산업혁명은 상인, 제조업자, 전문직과 같은 중간계급의 지위를 향상시켰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주의 정책이 실행되기를 원했다. 이러한 정책은 국왕과 귀족에 의한 통치와는 대립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기를 원했지만, 인민의 자유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중의 요구를 어디까지 지지하고, 또 어디까지 반대할 것인가"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는 "중간계급 자유주의자의 지도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맞서 싸울 것인가"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근대 유럽은 산업화를 거치면서, 이러한 갈등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산업화가 가장 먼저 시작된 영국에서는 중간계급이 참정권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휘그당이 개혁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참정권이 보장되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되지 않았기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차티스트 운동이다. 차티스트 운동은 기득권층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기득권층도 마냥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결국 영국 의회는 1867년과 1884년에 투표권을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게 되었고, 이로써 보통선거가 정착되게 되었다.
20세기에 유럽은 전례 없는 대규모의 전쟁을 두 차례 치르게 된다. 저자는 그 두 전쟁의 원인이자 배경으로 산업화와 민족주의를 지목한다. 산업화는 중간계급의 지위를 향상시켰고, 핍박받는 도시 노동자 계층을 만들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대두되어,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되었다. 유럽은 급격하게 변화했고, 국가 간에 긴장관계가 조성되었다.
특히 국가 간의 대립관계를 조성하는 데에는 민족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 민족주의는 자신의 국가에 대한 애착을 강화시키고, "국가를 위해 기꺼이 싸우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퍼뜨렸다. 당시의 민족주의는 급진적이고 투쟁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했고, 이러한 민족주의적 이념이 1차, 2차 세계대전의 배경이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세기 후반 중동부 유럽인데, 당시에 국가가 없는 민족들이 자신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1차 세계대전의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점이 요소를 짚어주면서, 독자가 세계사에 대한 통찰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얻은 통찰이 다른 역사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은 "짧은 역사서"를 지향한 순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일 테다. 이 책은 296쪽밖에 되지 않고,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큰 매력을 지닌 역사서이다. 또한 고대, 중세, 근대 문명의 본질을 꿰뚫는 명쾌한 통찰이 글과 도식을 통해 매우 이해하기 쉽게 표현되어 있다. 굉장히 멋진 역사서라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