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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Mar 17. 2019

골든아워 - 이국종

외상외과 현실의 어두움과 빛에 대한 기록

* 골든아워 / 이국종 저 / 2018년 출간


간략한 소개


 나는 <골든아워>를 독서모임에서 있었던 선물교환식에서 선물로 받았다. 이 책을 준비해 주신 분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책을 열심히 읽어 보았다. 이 책에서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의사들의 빛나는 모습과, 한국 외상외과의 척박한 현실의 어두움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의료계의 어려운 현실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 외상외과 의사의 일과 어려움, 석해균 선장 구출작전 등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외상외과가 하는 일


 외상외과는 어떠한 일을 하는가? 단순하게 말하면 심한 외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한다. 예를 들면 오토바이 운전 중에 사고를 당해 복부가 파열되고 다리가 골절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후에 환자는 빠르게 이송되어야 하고, 의사는 신속하게 치료해야 한다. 치료에 있어서는 신속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확한 판단에 근거하여 상황에 가장 알맞은 치료 방법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많은 양의 약재와 혈액이 사용되며, 고가의 장비도 많이 동원된다. 신속성, 정확성, 고비용. 바로 이것이 외상외과 치료의 특징이다.

 외상외과의 치료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많은 환자를 치료할수록 병원에는 적자를 안겨 주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저자가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이다. 병원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결국 적자가 나는 이유를 파악하고, 적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 저자는 적자 해소의 압력을 받고, 약재비 등을 청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이야기 하지만, 심평원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결국 저자는 적자 해소의 압력에서 헤어 나올 길이 없게 된다. 또한 외상외과는 적자를 내는 부서로 인식되기 때문에, 추가적인 투자를 받기도 어렵고, 기본적인 부서 운영비에서조차 압력을 받는다. 저자는 사명감을 가지고 외상외과 의사로서 일을 하기에 본인의 고생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부서 운영 환경이 피폐해지면서, 외상외과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그 피해를 감내하는 것을 보며, 괴로워하게 된다.


아덴만의 석해균 선장


 2011년 삼호 주얼리호의 피랍은 당시 언론에 보도되었으나, 나는 그 일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고, 이번 책을 읽으면서 그 실상에 알게 되었다.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군사작전을 통해 삼호 주얼리호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을 진압하게 되었는데, 석해균 선장이 해적의 총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석 선장을 비롯한 부상자는 오만의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석 선장의 심각한 상황은 한국으로도 알려졌고, 외교부와 보건복지부는 저자에게 연락하게 된다. 저자는 오만까지 가서 석 선장의 상태를 살피고, 석 선장을 한국으로 항공 이송하여 치료하게 된다. 결과만 보면 단순하지만, 이 과정 도중에 일어난 수많은 우여곡절은, 우리나라 외상외과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서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석 선장의 이송 당시의 상황이다. 당시 석 선장의 상황은 매우 위급하였고, 즉시 한국으로의 이송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서는 정부기관 또는 군 소속 비행기를 지원하지 못했다. 당시 외교부는 이를 지원하는 데에 "한 달은 더 걸릴 것"이라고 답을 했다. 또 스위스의 에어 앰뷸런스 회사인 레가(Rega)를 통해 이송하려 하였으나, 한국 정부는 이 또한 신속하게 지원해주지 못했다. 결국에는 저자가 본인 명의로 서명한 계약서를 레가로 보내고 나서야 이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에어 앰뷸런스 사용금액은 미화 38만 달러, 한화로 4억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다.

 "교수님, 이건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 아니지요. 이건 교수님이 책임질 사안이 아닙니다."

 당시 저자와 함께 오만으로 간 간호사 김지영은 이렇게 말했다. 간호사 김지영이 말한 바와 같이 이는 개인이 책임지기 힘든 일이다. 38만 달러는 월급으로 생활하는 한 명의 의사의 인생을 수렁에 빠뜨릴 수 있는 금액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저자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본인의 명의로 계약을 진행한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석 선장이 국내로 돌아온 후, 구정으로 접어들 즈음에 석 선장을 일찍 깨워 국민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시도로 인해 벌어진 일에 대한 것이다.


 일반 환자라면 절대로 깨울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소위 'VIP 증후군'이 병원 내 의료진 사이에 퍼져 올라왔다. 그때는 평소 원칙대로 보통의 중증외상 환자를 보듯 치료 방침을 천천히, 보수적으로 가져갈 수 없었다. 워낙 중대한 환자였고 대단한 환자여서 환자 치료에 대한 수많은 의견이 쏟아졌다. 아주대학교 병원이 생긴 후로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환자의 입원에 병원의 흥분 상태는 잦아들지 않았다. 
-국민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석 선장이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설날 아침 뉴스의 앵커는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기뻐하십시오!'는 하루도 채 가지 못했다. 그 뉴스를 가능케 했던 석 선장의 기도삽관 제거는 18시간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기도삽관을 제거하자 석 선장의 호흡이 가빠졌고 오후가 되자 호흡을 힘들어했다. 다른 교수들이 돌아간 저녁이 되자 식은땀마저 흘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국민 여러분, 기뻐하십시오!'가 전해졌던 다음 날 새벽 1시, 나는 석 선장에게 다시 기관삽관을 해야만 했고 그는 다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했다. 석 선장의 복부는 아직 갈라져 있고 사지 중 세 곳이 작살나 있어 온몸에 트랙션을 달고 있는 상태였으며 폐부종이 와 있었다. 섣부른 기관삽관 제거로 상태가 악화되어 다시 기관 삽관한 경우, 환자는 오히려 나쁜 경로로 걸을 수 있다. 석 선장은 ARDS(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에 빠져들었다. 나는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김지영이 말없이 울며 석 선장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석 선장을 깨우려는 시도로 인해, 석 선장의 상태를 악화시키고 만 것이다. 당시의 많은 의사들은 규정에 의거한 안전한 치료를 외면하고 기도삽관 제거를 하자고 했다는데, 정녕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외상외과의 현실


 이 책에서는 외상외과의 피폐한 현실을 생생히 볼 수 있다. 그 피폐함을 생생히 보여주는 한 대목을 살펴보자.

 외상통제실에 내려가 출동 장비를 점검했다. 대부분 표면에 흠이 많고 틈새에는 피에 전 모래 먼지가 피딱지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몇 개의 모니터는 액정이 깨져나갔다. 장비를 모두 꺼내 펼쳐 놓고 깨진 부위를 확인하고 닦았다. (중략) 찢어진 출동 배낭을 직물실에 수선 보낼 때 어깨끈 둘레에 보강 천을 대어달라고도 부탁했다. 무거운 장비 무게에 어깨끈이 자꾸 헤졌다. 핏물에 젖고 헤진 비행복을 폐기하고 싶었으나 새로 구입할 비용이 없어 그대로 두었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중증외상센터 관련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대목을 보면, 중증외상센터 사업의 암울한 앞날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병원장은 많은 얘기를 했다. 나는 일부에 대해서는 설명을 덧붙였고 대부분은 그냥 듣기만 했다. 이 짓거리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많이 막혔다. 차는 느리게 나아갔다. 중증외상센터 사업이 과연 이만큼의 속도로나 나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으나 회의감만 깊었다. 중증외상센터 사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관계로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어둑해지던 하늘은 이미 검게 변했고 눈앞에 늘어선 붉은 후미등이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다. 저녁을 훌쩍 넘어 병원에 도착했을 때 피로에 전 나는 누구에게도 오늘의 회의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대로 센터장실에 틀어박혔다. '2018년 이후에 이 사업이 잘도 계속 가겠구나.' 윤한덕이 비통하게 던진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긴 밤, 좁은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며 혼자 내뱉었다.
 '곧 끝나겠구만...... 차라리 끝나는 게 좋겠어......'

 아덴만 여명 작전, 세월호 참사 등의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안전과 외상외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그때마다 나오는 수많은 말들이 빚어내는 결과들을 보면, 허탈한 실소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한 지방자치 단체에서 1,800억 원을 들여 대규모의 안전체험 테마파크를 지어놨다. 하루 평균 입장객은 350여 명, 연간 적자 규모는 15여억 원이라고 했다. 1,800억 원이면 중증외상센터 전체 건립 비용을 상회하며, 소방항공대 두세 곳을 창설할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세월호와 중증외상에 대한 이슈가 불거진 이래로 안전과 외상을 테마로 수많은 것들이 벌어지고 있으나, 나는 그 핵심가치를 알 수 없었다.

 피폐하고, 암울하고, 어이없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현실이라는 것이 이상에 비하면 항상 암울한 것이기는 하지만, 외상외과의 암울한 현실을 그냥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며


 외상외과의 암울한 현실을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

 첫째로는 의료계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의료계 전체가 더 나은 외상외과의 미래를 위한 고민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병원의 경영진은 외상외과 의사들에게 수익성 향상을 강요하지 말고, 외상외과의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경영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의 병원 경영방식이 어떻게 결정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이 때문에 다른 방식의 노력도 필요하다.

 둘째로는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외상외과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어서, 정부의 변화와 지원을 이끌어 내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이 결국에는 의료계의 변화도 이끌어 내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민의 관심은 대한민국 의료계를 발전시키고 우리의 후손이 그 혜택을 받도록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가 시민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다할 때에야 비로소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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