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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현 Feb 16. 2024

시네마테크kofa 2023 그리고 이두용 감독

https://www.koreafilm.or.kr/cinematheque/programs/PI_01525


시네마테크 KOFA가 주목한 2023 한국영화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를 위해 작년-2023년에 개봉한 한국영화를 한참 몰아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두고두고 생각해 보고 싶고 귀동냥이라도 해보고 싶은 것들이다. 〈물 안에서〉와 〈우리의 하루〉는 여전히(라는 표현만큼 오늘 날의 홍상수에게 안 어울리는 수사가 있을지 모르겠다만) 탁월한 것과 별개로 왜 ‘나는’ 홍상수의 신작에 그때 들뜨지 않았을까? 〈밀수〉의 류승완과 〈거미집〉의 김지운 그러니까 ‘자랑과험담’의 감독들이 2020년대에 명시적으로―〈헤어질 결심〉에서의 〈안개〉처럼―‘옛날 한국영화’를 소환하는 이유는 뭘까? 많은 지면·기관에서 〈괴인〉과 〈너와 나〉를 올해의 한국독립영화로 함께 꼽는다. 두 편의 영화가 ‘영화’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 데도 그게 가능할 수 있는 지반은 무엇일까. 굳이 공통점을 뽑아보자면, 〈괴인〉과 〈너와 나〉가 ‘한국독립영화’라는 집합을 은근히 건드리는 건 아닐까. 안에서든 밖에서든.     


 

두서없고 나를 따져 묻는 것 이상의 질문이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도, 실은 몇 년 전부터 무르익고 있었던 해봄직한 질문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싸움의 공간으로서 ‘한국’이 바닥났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싸움을 붙이기 위해서는 〈모가디슈〉나 〈비공식 작전〉처럼 “오지”로 나가거나(〈범죄도시〉에서 마석도가 이동하는 것처럼), 〈콘크리트 유토피아〉(그리고 이어서 떠오르는 몇 편의 準아포칼립스물들)처럼 멸망을 전제하거나, 〈밀수〉 혹은 〈서울의 봄〉 더 나아가 ‘이순신 3부작’처럼 과거로 거슬러야한다. 거칠게 일반화하자면 남성성에의 과잉 순응과 억압되어야 하는 국면을 초점화한 〈아수라〉와 〈불한당〉 이후에 한국영화들은 한국을 지운 후에야 싸움을 붙일 수 있는 것 같다. 먹물을 조금 묻혀 싸움이 적과 나의 분할을 전제한다면, 오늘날 한국영화에 실종된 것은 오늘날의 적을 지목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즉각 떠오르는 건 오늘날의 한국에서 적을 거명하는 게 너무나 피로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023년의 스크린에서 굳이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너무 많은 폭력 장면을 봐왔다. 개별 사건을 굳이 거명하지 않고 이렇게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끈끈하게 찾아오는 두렵고 불쾌함, 이로부터 오늘날-한국은 스크린으로 폭력을 넘길 최소한의 간격조차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닐까.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이두용 감독이 지난 1월 19일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영화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내게 한국과 액션이라는 문제를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갔던 감독이라는 인상이 있다. 〈용호대련〉(1974)부터 이어지는 태권도 액션영화들. 〈돌아온 외다리〉(1974), 〈속 돌아온 외다리〉(1974) 자꾸만 돌아오는 외다리(지만 실은 외다리가 아닌) 차리 셸은 만주 벌판에서 왕서방과 사사끼를 발로 걷어차고 콧수염을 휘날린다. 그러다가 이두용은 갑자기 〈최후의 증인〉을 찍었다. 임권택의 〈짝코〉와 함께 최고의 ‘남한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는 이 영화에서 이두용은 ‘남한’의 남성성에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간다. 잊힌 전쟁, 비열한 전쟁 탓에 남근조차 되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도는 나약한 남성성. 골방에 쳐박힌 남자들은 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지르고, 추위를 막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코트를 입은 하명중은 입을 벌리고 권총을 문다. 태권도 액션영화와 〈최후의 증인〉 사이에 난 널찍한 간극. 대부분의 논자는 태권영화를 한 후에야 리얼리즘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는 이두용의 말을 빌려, 앞의 것과 뒤의 것의 연관 관계를 지운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필연적인 이행을 본다. 이두용은 무엇을 봤을까? 무엇이 그를 한국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한국을 보게 만들었을까. 거기에는 한국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근본적으로 모순적인 내셔널-시네마 개념을 경유하여) 국제적 ‘통화’가 될 수 없다는 파악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조영일의 비약을 빌려 제국이 되지 못한 국가의 국기(國技)는 떨떠름한 액션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보곤 했다.      


기실 논의는 반대 방향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이두용의 초기작부터 〈최후의 증인〉으로 이르는 경로는 역사주의적 허구다. 도대체 〈최후의 증인〉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두용의 태권 영화를 볼 것인가. 영화의 시간에서 이두용의 태권 영화는 〈최후의 증인〉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그러므로 그 많은 감독 중에서 하필 이두용이 태권영화를 이유로 ‘한국의 액션영화 감독’으로 기억되는 것에는 이상한 시간의 꼬임이 있다. 태권영화를 통해서 발견했다고 믿는 ‘한국의 액션’은 사실 한국이 액션을 성립시킬 수 없는 ‘나쁜 공간’이라고 역설하는 〈최후의 증인〉을 (억압한 후에) 통과한 후에 발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두용은 (오늘날에도 눈에 띄게 문제시 되는) 한국-액션의 처소를 다시 한 번 묻게 한다. 나는 이두용이 죽고 난 다음에 자주 혼잣 말을 했다. 이두용이 죽었는데, 당신들 뭐하십니까? 마침 오늘도 〈최후의 증인〉에 내렸던 것 같은 질척한 눈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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