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동현 Jun 24. 2024

그을린 도서관 혹은 (다시) 지역영화잡지

부산지역영화잡지 『섭씨 233』 1호에 실린 「그을린 도서관 혹은 (다시) 지역영화잡지」를 편집장 이우빈 님의 허락을 받아 블로그에 옮긴다. 이 글을 쓸 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진, 승원, 주리, 준호가 함께다. 글 마지막 부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천한 자들의 우정"은 다시 그러나 다르게 잔존한다





《섭씨 233도》의 이우빈 편집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수전 올리언이 쓴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을 읽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여러 갈래의 격렬한 불길이 연기를 뚫고 치솟았다. 이내 더 센 불길이 솟구쳤고 열기가 강해졌다. 온도가 섭씨 233도까지 올라갔고 책들이 타기 시작했다. 책 표지들이 팝콘처럼 팡팡 터지고 페이지들에 불이 붙어 검게 그을리더니 제본이 떨어져 날아갔다.” 도서관에 불이 붙었고 새까맣게 탄 책 페이지 한 장 보도로 날아와 떨어졌다. 떨어진 책의 제목은 『신이 당신을 심판하고 있다』. 1986년 4월 대피한 사서 실바 마누지안이 마이크로필름이 불타며 풍기는 시럽 향을 맡는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원고 청탁을 받았다. 청탁 내용은 ‘지역영화잡지의 역사, 의미, 현황 등에 대한 에세이’였다. 어디선가 시럽 향과 함께 종이가 불탈 때 풍기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한국영화담론이 누적되는 상상의 도서관을 걷는 걸 생각해보자. 이 상상의 도서관은 하나의 영화 글이 인터넷·지면에 상재된 걸 발견하면 그 글과 그 글이 상대하고 있거나 인용한 글을 순서대로 장서한다. 새로운 글과 함께 그 글을 상대/인용하고 있는 글이 누적되므로 단지 이 도서관을 걷는 것만으로도 한국영화담론의 지속/반복과 새로움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상상의 도서관에 최근 글을 비치한 서가는 어떤 모습일까? 확신에 가까운 상상을 하나 할 수 있다. 손가락으로 책등을 하나하나 만져 가며 꼼꼼히 보아도, 이 서가에서 (웹진을 포함한) 지역영화잡지의 글을 찾기는 힘들다. 범위를 넓혀 ‘지역’이라는 의제를 포함한 글도 마찬가지다. 문화를 복지 정책으로 오인하는 지역영화생산자의 군소리야 종종 보이지만, 문화로서 지역영화를 다루는 글을 찾으려면 눈을 깨나 비벼가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광주영화영상인연대가 발간하는 《씬 1980》, 마산영화구락부가 발간하는 《M 다시보기》, 오오극장의 웹진 《매거진 삼삼오오》 그리고 물론 《섭씨 233도》가 드문드문 귀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 총량이 적을 뿐 아니라 이들을 상대/인용하고 있는 글이 있기는 할지 의문이다. 이러한 희소함은 과거 서가로 거슬러 가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기실 지역영화잡지를 이루는 세 가지의 단어―지역, 영화, 잡지 그 각각도 한국의 담론 환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 작으니, 과거에 지역+영화+잡지가 있기야 했을까….



…라고 생각하는 중 나는 상상을 그만두고 조사를 시작했다. 《매거진 삼삼오오》에 「배용균의 비밀노트」라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게 계기였다. 「배용균의 비밀노트」를 쓴 목적은 분명했다. 도입에서 『사이클로노피디아』를 노골적으로 빌려왔듯, 나는 배용균의 비밀노트 위서(僞書)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위서-배용균의 비밀노트를 통해 대구독립영화 감독으로서 배용균을 현재의 대구독립영화 담론에 기입하여 그 체제 혹은 정확히는 습속을 갱신하고자 했다. 일종의 하이퍼스티션(hyperstition)이다. 그러나 초기 목적은 완전히 실패했다. 배용균과 ‘나’를 잇는 매개자이자 1990년대 시네필로 설정한 덕칠과 1990년대 배용균이 머물렀을 대구독립영화의 풍경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왕의 목적을 우회하여 용두사미 격으로 「배용균의 비밀노트」를 마쳐버리고 자연스레 1990년대 대구독립영화의 풍경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기자 성하훈이 쓴 ‘한국 영화운동 40년사’의 「대구영화운동 1. 영화언덕-제7예술-아메닉」, 「대구 영화운동2. 영화제작과 대구독립영화협회 결성」을 읽고, 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이진이 선생님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알게 된 사실은 놀라웠다. 살고 있는 집 가까이에 과거에 시네마테크를 표방한 상영실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대구에서 이미 여러 영화잡지를 펴냈던 것이다. 《씨네힐》, 《키노키즈》, 《아메닉》, 《이미지나간이미지》. 나를 포함한 젊은 시네필에게 1990년대 영화잡지는 《KINO》, 《필름컬쳐》, 《씨네21》만이 떠오르기 쉽지만 그 실제는 훨씬 풍부했다.

 

1990년대 ‘문화학교 서울’을 중심으로 기술되지만 (이미 성하훈 기자가 ‘한국 영화운동 40년사’에서 풍부하게 서술했듯) 한국 시네마테크 운동, 혹은 현재 (독립)영화문화 체제의 형성에는 전국 각지의 참여가 있었다. 「전국씨네마떼끄연합 소식지 창간준비호」에 실린 ‘전국 씨네마떼끄 연합 참가단체 연락처’에 실린 단체를 열거해보자. ‘문화학교 서울, 부산 씨네마떼끄 1/24, 광주 영화로세상보기, 전주 온고을영화터, 대구 제7예술, 대전 씨네마떼끄컬트, 강릉 씨네마떼끄, 청주 씨네오딧세이, 평택 씨네마드리밍, 부천 영화열망, 제주도 영화만세, 대구 씨네하우스, 성남 씨네마떼끄시선, 제주도 씨네오름’이 있다. 

 

전체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이들 상당수가 자연스럽게 (모 선생님은 86세대 문화의 일부라고 했는데) 회지(會誌)를 발간했다. 부산에서는 《CINE.EXE》를, 대전에서는 《영화세상》을, 광주에서는 《누벨바지》. 기본적으로 회지이자 무가지인 이 잡지들은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지 않다. 이 잡지들은 각각의 단체에 더 많은 사람을 모으기 위해 발간되었고 아마도 어느 정도의 효과를 다한 후에 보관되지 않았다. 이처럼,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가도 한국영화담론이 누적되는 상상의 도서관에 지역영화잡지는 상당히 많이 꽂혀 있다. 다만 그 잡지들은 1990년대를 지나 00년의 여러 단체가 각 지역의 독립영화협회로 계승되고 현재의 문화 체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잊혔다. 지역영화잡지라는 제재를 청탁받았을 때 풍겼던 달짝지근한 향은 아마 이것을 예기한 것 같았다. 그 많던 지역영화잡지들은 현재를 만드는 시간을 통과하며 상상적으로 연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 잊히는 건 당연하다. 이런 지역영화잡지를 굳이 거명하는 것도 의아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저 호사가 취향―이 나쁜 건 아니고 나도 호사가다만…―이 아니냐고 공박할지 모르지만, (근)과거의 지역영화잡지들을 ‘지금’ 살펴볼 필요는 다른 데 있다. 「배용균의 비밀노트」를 쓴 목적에서 밝혔듯, 나는 현재의 지역/독립영화 체제 그리고 습속에 상당한 불만이 있다. 시네마테크 운동의 주역이 관객의 자리에서 시작한 사람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영화문화에는 관객의 자리가 거의 비어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영화를 만들지만, 이들의 영화를 보고 소문내고 이동시키는 (제도 이전의) 시네필리(La cinephilie)는 사라졌다.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본인들이 앉았던 자리를 앉았던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영화문화를 갱신하는 열정과,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공성의 영역도 함께.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최근 한국이 숫자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대안 영역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 지원금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예산 코드가 아예 사라지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각기 다른 많은 반응이 있겠지만, 나는 외부의 세력을 지목하기보다 사태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업자’들 밖에 없는 ‘내부’에 더 주목한다. 섣부른 결론일지 모르지만 1990년대 시네마테크 운동은 시민-관객을 키우는 데 실패했고, 그 ‘내부’에는 오직 업자만이 남은 것 같다. 다른 지원금이 사라질 때 침묵하다가도, 자기 영역의 지원금이 없어질 때 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그들이 속한 문화가 오직 ‘업계’에 불과하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민-관객을 키워내지 못한 대안적 영화문화는 어쩌면(!) 마땅한 최후를 앞두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지역영화잡지는 다시 들춰져야 한다. 서울보다 지방의 시네필리는 더욱 말끔히 사라졌으니 현재의 지역영화문화를 만든 1990년대의 영화잡지들을 현재의 기원으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현재로 깔때기 쳐지지 않은 가능성의 공간들을 무수히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물론 비판적인 읽기는 언제나 ‘다시 쓰기’의 열망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지역영화잡지에 준하는 무엇을 쓸 수밖에….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광주영화영상인연대의 한재섭 선생님이 쓴 위의 글을 발견했다. 그의 말처럼 《누벨바지》를 비롯한 지역영화잡지는 “이력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며 “미천한 자들의 우정”이다. 그들의 “미천한 자들의 우정”을 영화의 역사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놓친 것을 발견하고 “미천한 자들의 우정”을 다시 한 번, 더 잘 되살리기 위해. 그들을 최대한 비판적인 견지에서. 그러나 여전히 “이력이 되지 못하는” 것을 감당하며. 최대한의 다정함으로. 그러나 한 가지는 마음속에 분명히 품으며.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눈 한재섭 선생님의 메일을 인용한 것이다] “명함을 갖자고 잡지를 만드는 것은 아니니깐”

작가의 이전글 한국영화 best 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