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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Jul 14. 2022

자기만의 방식을 실행할 용기

<빅토리 노트>

#질투가 나는데 요상하게 계속 읽게 되네!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여성 뒤에는 반드시 주체적으로 살았던 엄마가 있다.

<빅토리 노트>는 김하나 작가 엄마가 이옥선 작가가 태어나서 5살 때까지 쓴 육아일기다.

이 책의 함정은 읽다가 중간중간 질투가 나서 멈춰 서게 된다는 거다.

‘우리 엄마는 이런 것도 안 써주고 뭐 한 거야?’

그 생각을 하다가 애초에 이옥선 작가가 이걸 쓰게 된 계기가 떠올랐다.

언니가 다니는 대학의 교지 <이화>를 읽다가

‘나의 재산목록 1호는 나의 어머니가 쓰신 육아일기이다’라는 대목이 씨앗이 되어

나중에 육아일기를 쓰게 되었다고 했다.


이 작가와 우리 엄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교육’에 있다.

엄마가 대학을 나왔다면 아주 많은 게 달라졌을 거다.

‘어디서 본건 많아가지고~’라는 말처럼 보고 듣고 따라하는 게 달라졌을 거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달라졌을 거다.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되었을 거고,

그런 사람이 키운 지금의 나도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겠지.

엄마는 재능도 많고 열정도 많았지만 그걸 담을 그릇이 없었다.

아마 대학을 나왔다면 그걸 담아낼 형태를 가질 기회가 많았겠지.

분명 엄마 집은 부유했다고 들었는데 중학교까지 밖에 안 나온 팩트는 내게 항상 미스터리였다.

 “왜 대학까지 안 보냈어?”라고 지금이라도 외할머니에게 따지고 싶다.


#자기만의 방식을 실행할 용기

‘기록’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이옥선 작가의 본캐는 가정주부였지만

이미 ‘작가’라는 부캐를 가지고 있었다.

그 시절엔 부캐라는 말이 없었기에 아마 본인도 그 사실을 모른채 살아가지 않았을까?

(*부캐: 부캐릭터의 줄임말, 쉬운 예로 개그맨 유재석이 가수‘유산슬’ 활동을 하는 것)

K지수가 높은 남편, 산후우울증, 불임수술을 요구하는 야만의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에겐 그걸 버텨내는 '자기만의 방식' 이 있었다.

그건 바로 문학을 곁에 두는 것이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빠듯하지만 세계문학전집을 사들였다고 했다.

돈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용기를 쓰는 건 더 중요한 것 같다.


엄마가 평생 읽어온 그 숱한 문장들도 기억에서 가물거릴 수는 있겠으나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엄마의 부분으로 남아 인격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삼성판 세계문학전집 60권의 작가들은 엄마를 통해 나에게도 말을 걸어왔을 것이다.

-<빅토리 노트> 김하나 작가 부분-

인생의 힘든 순간마다 김하나 작가가 진행한 팟캐스트<책읽아웃>을 들으면서 이겨내곤 했다.

그 어떤 책이라도 김하나작가를 통과하면

요상하게도 시원한 쾌감을 주었다.

어쩌면 엄마가 읽어서 그에게도 말을 걸었다는 세계문학전집이 내게도 와닿은 느낌이다.

.

#돈 따위와 비교도 안 되는 고귀한 것

책 앞부분엔 작가의 세계관으로 여겨지는 ‘럭셔리하게 지금 바로 그것들을 즐기리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중학교 교사였던 작가는 2년 6개월 만에 퇴임하고 전업주부가 되는데

내겐 이 부분이 가장 럭셔리하게 다가왔다.

가끔 사회에서 큰 획을 긋고 재능 있는 내 친구가 가정주부를 하고 있으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 집에서 애 만 키우기엔 내 친구가 너무 아깝다’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사회생활 대신 가정생활을 이끌고 가는 내 친구는

사회에서 버는 돈 따위와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고귀한 걸 벌고 있었다.


#엄마가 안 써줘서 내가 쓴다! 셀프 육아일기

엄마는 내게 <빅토리 일기> 같은 육아일기는 써주지 않았다.

오빠나 동생에게 써준 편지 한 장도 내겐 써주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런데 가끔 울렁울렁 서운함이 차오르는 건 사실이다.

육아일기를 받아보지도 못했고 이걸 써줄 아이도 없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육아일기 쓰고 싶을란다.

(* 싶을란다~: 김하나 작가가 꼬마 시절부터 구사한 시그니쳐 말투)

나는 나를 위해 셀프 육아일기를 써 내려가기로 했다.

다 큰 어른이, 아니 이제 늙어가는 내가 뭔 육아일기냐고?

<빅토리 일기>를 관통하는 스토리는 ‘성장’이다.

이옥선 작가는 <빅토리 일기>를 출간하며 작가라는 부캐가 본캐가 되었다.

육아일기를 써 내려가면서 진짜 성장하는 건 어쩌면 아이보다 그걸 써 내려간 작가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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