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차 Nov 27. 2022

서로 섞이진 않고, 옆에서 자극을 주는 사이



쇼핑 대신 꿀잠이 왔다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블랙 프라이데이인데 내가 아무것도 사지 않다니!

외로움, 애정결핍, 욕구불만 같은 건 쇼핑으로 퉁치고 살았다.

그런 내가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괜찮다.

도대체 왜?

이게 다 그림 때문이다.

거기엔 참 요상한 쾌감이 있다.

“그러니까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내가 마음의 똥을 싸고 있는 것 같달까? 마음의 쾌변 같은 거“

정말 그랬다.

내 욕구를 배설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고여 있던 감정을 고스란히 소진했다.

그 결과 더이상 이불킥 같은 건 안 한다.

밤에 떡실신해서 깨끗한 잠을 잔다.


한계를 뛰어넘는 태도를 기억하고 싶어

대부분의 화가들에겐 화가가 되는 비슷한 통과의례가 있다.

갑자기 병마가 찾아오고,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변호사의 길을 가던 마티스 역시 맹장염에 걸려 요양을 하는 동안

어머니가 사다준 미술도구로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한다.

교통사고로 누워있을 때 그림을 그리게 된 프리다 칼로도 있다.

나 역시 수술 때문에 한국에 갔다가 그림을 시작하게 됐다.

우리가 모두 아프지 않았다면 그리지 않았을까?

결국 마티스의 위암 병세가 위중해졌다.

나중엔 붓마저 들지 못하게 되자 색종이를 오려서 자신의 예술을 표현했다.

그 작품 중 하나가 이카루스였다.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가위는 연필보다 더 감각적이다.”라며 작품을 만들었다.

한계를 뛰어넘는 그 태도를 기억하고 싶었다.

내게 있어 이카루스는 그 태도를 상징한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도 모르게 이카루스 오마주 작품을 그리게 됐다.


누렁이(=남편)가 이카루스 그림을 벽에 걸었다.

그 순간 알게 됐다.

처음엔 내가 왜 이 그림을 그렸지? 전혀 몰랐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을 벽에 걸었을 때 마침내 그 의미가 완성됐다.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동경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가 선명해졌다.

나는 그것들을 글로 써나가고 글로 헤어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글로는 꺼내지지 않는 더 깊은 심연이 있었다.

원작은 색종이라 똑같은 파란색이지만

내가 재해석한 그림 안에는 파란색 안에 수천 가지 색이 있다.

초록도 있고 빨강도 있다.

멀리서 보면 파랑이지만 자세히 보면 서로 섞이지 않고 옆에서 자극을 준다.


그 모습이 우리이길 바란다.

내 잠재의식 속에 그게 있었다.

내가 자꾸 우리 관계의 의미를 확인해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건 바로 누렁이의 망언 때문이다.

“현진이 공부 그만해, 돈도 벌지 마.”

자기가 쓸모없는 남자가 될 것 같아서 싫단다.

누가 들을까 봐 남사스럽다.

아니, 천불이 난다! 그간 내가 한 노력들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헛소리를 해댈 때마다 내 마음은 불안하다.

내가 도대체 어떤 인간이랑 사는 거지? 싶다.

나는 더욱더 공부를 많이 할 거고 돈도 벌 거다.

각자의 말을 타고 가는 러닝메이트

그래서 자꾸만 우리를 상징하는 그림을 그리고

공유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여기에 맞대응할 적절한 내 감정표현이 어려웠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했는지 사인펜으로 10분도 안 걸려 그렸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의 와이프가 쓴 책

<리치우먼>을 읽고 더더욱 나의 독립성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의 파트너십에 특히 매료되었는데

서로가 없었으면 이루지 못할 어메이징 한 케미의 결과였다.

결혼생활이란 각자의 말을 타고 가는 러닝 메이트의 우정이 바탕이라 생각된다.

여기서 중요한 게 각자의 말이다.

그 독립성을 잘 유지하고 싶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말보다 이 그림이 더 효과적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내 감정의 변화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친구와 나누곤 했다.

그 대화를 통해 분을 삭이고 내 감정을 다시 확인하고 내 의지를 다짐하곤 했다.

시차가 다른 시공간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멀어지고

이젠 나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감정을 헤아리고

복수의 칼날을 가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내 마음의 내시경

미술 심리치료 같은 건 말로 만 들었지 해본 적은 없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글을 쓴다거나 산책을 하면서 하곤 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마치 내 마음의 내시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은 누렁이에게 바치는 내 대답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제발 각자의 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자!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림으로 그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_에드워드 호퍼

작가의 이전글 작은카페에 진심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