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 루브르에 가면
올림픽 단거리 선수처럼 지름길로 잽싸게 튀어
<모나지라>부터 보던 인간이었다.
숙제를 끝내듯, “오케이, 찍었다” 인증샷을 남겨야 마음이 놓였다.
그런 내가 올여름 다시 루브르에 갔다.
<모나리자> 방 근처,
사람들의 뒤섞인 뒤통수들을 멀리서 구경하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엉망진창 아수라장 속에서도
아이를 목마 태운 아빠의 등을 볼 때는
요상한 고요가 느껴졌다.
폭풍의 눈 같은 평화랄까.
남편은 <모나리자>보다 자신의 끌림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
명작을 다 건너뛰고 우린 창문 밖을 보았다.
빛이 흐르는 길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명작 앞에서조차 아랑곳하지 않는 그 태도가 신선했다.
과거의 나라면 “이럴 거면 루브르 왜 왔어?”라고 했겠지만...
나는 어느새 그의 동선에 맞춰
그 풍경과 어우러진 남편의 표정을 감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홀가분했다.
인생에 <모나리자>가 전부는 아니다.
지금까지는 그걸 보겠다고 마음 졸이고
그것만 쫒느라 나머지 것들을 볼 수 없었다.
뮤지엄은 뮤즈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나의 영원한 뮤즈는 내 남편이다.
뮤즈가 오늘 아침 아침 늦잠을 즐기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갓 빵집에 다녀온 그가 빵 상자를 열며
자고 있는 내 코에 빵 냄새를 주입시킨다.
뮤즈는 오늘도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뮤즈를 모시는 장소는 내 마음, 곧 내 마음이 뮤지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