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왕의 탄생
열일곱부터 이십 대 끝자락까지 매일 일기를 썼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더 이상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젠 미니멀리스트로 살겠다며 일기장을 안 사기 시작했다(변명이다. 다 귀찮다). 일기를 써온 게 놓아버리기엔 아까운, 성실한 습관까진 아니기도 했다. 두세 줄의 짧은 글이 전부인 데다가 그마저 안 쓰는 날도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다이어리를 곁눈질로 힐끔 보다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잠이나 잔 거다. 다음 날이면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며 전날의 빈칸을 채웠다. 스스로를 속이는 건 불법이 아니라 다행이다.
그간 써온 일기장은 모두 간직하고 있다. 물론 그 존재에 대해선 잊고 살 때가 더 많다. 보통은 방 청소에 돌입했을 때야 들여다본다. 그런데 재미없다. 따로 잠금장치가 없으니 누군가가 읽을까 봐 그날의 감정을 두루뭉술하게 써놓은 탓이다. 어느 날은 욕만 잔뜩 써놨던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나마 직장에 다니면서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늘기 시작했다. 일기장을 'to do list'로 이용한 터다. 그러다가 문득 회사에 입사하게 된 년도의 일기장을 펴봤다.
어떡하지?
그해 나는 '어떡하지?'라는 말이 입버릇이었던 것 같다. 업무 중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다는 짧은 글과 함께 '어떡하면 좋지?', '잘할 수 있을까?', '잘될까?' 등의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한 주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월요일 칸에서부터 한숨을 내쉬었고, 일요일 칸에 가선 새로운 걱정이 생겼는지 좌절하길 반복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었다. 별것도 아닌, 그냥 다음 날 회사에 가서 처리하면 되는 일들.
물론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신입 시절 나는 엄청난 걱정꾼이었다(과거형으로 말해보지만 지금도 똑같다). 가장 큰 원인은 불안감에 있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사수가 있긴 해도 대개 스스로 정해서 알아서 하는 시스템이었다. 때문에 '이게 맞아!'라고 생각해서 행동하는 게 아닌, '이래도 되나?'라는 의문으로 일을 해나갔다. 모르는 게 있으면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됐지만, 그 당시 나의 선배들은 매일매일 야근을 하며 바쁜 스케줄을 견디는 중이었다. 나는 차마 그들의 시간을 빼앗을 수 없었다. 신입 때는 원래 눈치를 보지 않나. 내 머릿속엔 '이 정도로 물어봐도 되나?'라는 물음과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라는 재능교육 CM송이 번갈아 울려 퍼지고 있었다(CM송 하나가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해버린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어디겠느냐 이 말이다).
그해의 일기장에서 또 하나 발견한 건, 입사하게 된 3월의 내가 꽤 희망차 보였다는 것이다. '편집자가 됐다!'라는 탄성 어린 문장을 보며 소리 내어 웃기까지 했다. 과거의 내 모습을 보며 '패기' 따위의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다음 이어진 '지금의 이 마음을 잊지 말자'라는 각오 앞에선, 과거의 나에게 어쩐지 미안해졌다. 정말 생경한 마음이었으니까.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며 한 해를 돌아보았다. 안타깝게도 12월에 이른들 불안감이 줄었거나 업무적으로 나아지지도 않았다. 나는 12월의 마지막 날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었으니까. 그런데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끝부분에 한 문장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시간이 지나자 그러한 걱정들이 큰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대개 무사히 지나간다는 사실도 깨달은 듯했다. 걱정은, 사실 걱정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걱정한 대로만 흘러가면 그건 걱정이 아니라 예언이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 결국에는 어떻게든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