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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의 이름에 담긴 다양한 의미

by 황의현

아랍인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아랍인들이 이름을 만드는 방법은 우리랑 다를 뿐만 아니라 복잡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아래와 같은 사고도 발생하는데...

유튜브 채널 슈카코믹스의 한 영상(어떤 영상이었는지 제목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에서 아랍 이름에 대해 소개한 설명을 봤다. 놀랍게도 맞는 내용을 찾기가 힘들다.


첫째, Al-Quran(القرآن)은 "그 꾸란"이 아니다. 그러만 '한 꾸란'도 있나? 꾸란은 그 자체가 고유명사다. Al(ال)이 아랍어 정관사로 영어의 "the"에 해당하는 것은 맞지만, 가문명에 쓰이는 Al은 엄밀히 말하면 그 Al이 아니다. 정관사 알(ال)은 'al'이며 뒤따르는 단어에 붙여 쓰고, 가문명에 붙는 아랍어로 가족, 씨족이라는 단어 알(آل)은 'aal', 즉 [a]가 장모음이며 이 자체로 하나의 단어이기에 당연히 뒤따르는 단어와 띄어 쓴다. 두 단어는 모음 길이가 다르다. '꾸란(القرآن)'에 붙는 '알'은 정관사 '알'이고, '사우드 가문(آل سعود)'에 붙는 '알'은 가족, 씨족이라는 의미의 '알'이다. 따라서 꾸란의 '알'과 '사우드 가문'의 '알'을 같은 범주에 묶으면 틀린 것이다.


둘째, 오사마 빈 무함마드 빈 아와드 빈 라덴이라는 이름에서 오사마의 가문 이름은 '빈'이 아니라 '라덴'이다. '빈'을 아들이라는 의미로 잘 해석해 놓고 어쩌다 갑자기 가문명을 '빈'으로 썼는지 모를 일이다.


셋째, 아랍 이름에 쓰이는 '아부(abu, أبو)'라는 단어는 '~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원칙적으로는 아들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아들 이름이 무함마드면 아부 무함마드고, 아들 이름이 하산이면 아부 하산이다. 이를 쿤야(kunya, كنية)라고 부른다.


그러나 쿤야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사진에 예시로 나온 아부 바크르부터가 '바크르의 아버지'라는 뜻이 아니다. '바크르(bakr, بكر)'는 낙타라는 뜻이다. 사람이 어찌 낙타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가? '아부 바크르'는 굳이 옮기자면 '낙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아부 바크르는 무함마드의 뒤를 이어 무슬림 공동체를 이끈 지도자, 즉 칼리프였다. 낙타를 워낙 아끼는 사람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아부 바크르의 본명은 압둘라다). 쿤야는 이처럼 실제 자식 유무나 자식의 이름과는 무관하게 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 다른 용례로는 '~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요즘엔 잘 쓰이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집트 구어체 아랍어에서는 안경을 쓴 사람을 부를 때 '아부 알낫다라(abu al-naddara, أبو النظارة)'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자 그대로 옮기자면 '안경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이 역시 사람이 진짜 '알낫다라'라는 아들의 아버지라거나, 안경을 아들로 두었다는 뜻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이름에서 재미있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바로 아버지의 이름을 본명처럼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인 이름은 무함마드인데 아버지 이름이 무스타파인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의 이름은 그러면 무함마드 (이븐) 무스타파일 것이다('이븐'이나 '빈'은 생략해서 많은 경우에 생략해서 쓴다.) 이 사람을 부를 때는 무함마드로 부를 수 있겠지만, 아버지 이름인 무스타파라고 부를 수도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본인이 그렇게 사용할 때 부를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튼 그런 경우도 있다.


또한 아들이 없는 사람도 쿤야로 부를 수 있다. 가령 위에서 본 무함마드 무스타파를 쿤야로는 '아부 무스타파'로 부를 수 있다. 역시 모두를 이런 방식으로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애칭이나 별명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누군가를 '그 아버지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과거 아랍에는 큰아들이 태어나면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 관습이 있었다. 가령 위의 경우라면 무함마드의 아버지 무스타파의 아버지, 즉 무함마드의 할아버지의 이름이 무함마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스타파는 무함마드의 아버지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무함마드의 아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들 무함마드를 '아부 무스타파'라고도 부를 수도 있다. 그래서 아들이 없더라도 '누군가의 아버지'라는 이름은 가질 수 있는 것이며, 그 누군가의 자리에 자기 아버지 이름이 들어가 누군가를 '그 아버지의 아버지'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쿤야는 가명으로도 많이 쓰인다. 가령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지도자였던 야세르 아라파트(ياسر عرفات)는 결혼한 적이 없고 아들도 없지만 쿤야는 있다. 바로 아부 암마르(أبو عمار)다. 유명한 무슬림 장군 가운데 '암마르 이븐 야세르(عمار ابن ياسر 야세르의 아들 암마르)'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야세르는 곧 '암마르의 아버지'가 되기 때문이다.


아랍 기독교도들, 이름으로서 무슬림과 구별하고 서구와 가깝다고 주장하다

이처럼 이름은 한 개인의 고유한 개별 정체성과 관련된 상징인 동시에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문화를 반영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이전에 이미 결정된 성씨와 달리, 많은 경우 개인의 이름은 부모나 가족의 희망, 가치관 그리고 정체성 인식을 드러낸다. 좋은 뜻을 가진 글자나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항렬에 따르거나, 작명소에 맡기거나, 기독교식으로 붙이거나, 집안 어른이 결정하거나 또는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미래 모습을 투영하여 짓는 등의 다양한 작명 방식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 종교적 경향을 보여주는 한 증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이 지닌 이러한 정체성 표지의 기능은 다양한 가치관과 세계관, 종교 공동체, 민족과 언어 집단이 공존하는 아랍 지역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조부명(또는 성씨나 부족명), 부칭, 본인 이름으로 구성되는 아랍의 일반적 성명 구성법은 개인이 속한 부족과 가문, 종교, 종파, 민족, 심지어 때로는 부모의 정치적, 문화적 성향까지 보여주는 개인이 지닌 정체성과 소속된 집단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지다. 각 종교, 종파, 민족 집단은 그들의 역사적 기억과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물이나 개념 또는 위인과 성인의 이름을 통해 공동체의 역사적 기억과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그 연속성을 드러낸다.


아랍 기독교도와 무슬림 사이에 나타나는 이름의 차이는 정체성 표지로써 이름이 지닌 특성을 잘 보여주는 한 예이다. 같은 아랍어를 사용하지만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교우들, 무슬림 역사의 위인들의 이름을 선호하는 아랍 무슬림과 기독교 성인과 복음서의 사도, 천사의 이름을 쓰는 기독교도의 이름은 한눈에 보더라도 크게 다르다.


가령 고대 아시리아인의 직계 후손임을 주장하는 이라크의 아시리아 기독교도는 성경 속 인물이나 기독교적인 이름(코샤바(일요일, Khoshaba) 2명, 유난(요나, Yunan) 2명, 요세프(요셉, Yosef) 2명 그리고 임마누엘(Immanuel), 안드라우스(안드레, Anraus), 기와르기스(게오르기우스,Giwargis), 야으쿱(야곱, Ya'qub), 슬리와(십자가, Sliwa), 딘카(빛나다, Dinkha), 다우드(다윗, Daud), 오디쇼(예수의 종, Odisho), 오라함(아브라함, Oraham), 슈마일(이스마엘 또는 사무엘, Shumail)과 같은)뿐만 아니라 고대 아시리아인들의 이름(아슈르Ashur, 사르곤Sargon, 니노스Ninos, 아부 사르곤Abu Sargon, 아키카르Akhiqar, 다슈토Dashto, 나람Naram, 세나케립Senacherib)을 사용하기도 한다[1].


이라크 아시리아교회의 사제단


고대 아시리아와 관련된 이름이 차지하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습은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가령 1차 세계대전 시기 오스만군으로 징집된 아시리아 기독교도 군인 중 거의 대부분은 기독교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2]. 20세기 들어 고대 아시리아 문명과의 직접적 계승성을 주장하는 아시리아 민족주의가 성장하면서 전통적으로 기독교와 관련된 이름을 사용하던 아시리아 기독교도들이 고대 아시리아에서 따온 이름의 사용 빈도가 늘어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3].


한편 아시리아 기독교도 남성은 많은 경우 아랍어 이름을 사용하지 않거나 쓰더라도 비아랍어 이름을 아랍어 발음으로 표기(가령 '제임스'를 자미스(Jamis)로 쓰는 식으로)한 이름을 쓰고, 여성들도 마틸다, 카렌, 자넷, 마가렛, 이바와 같은 서구권에서 쓰이는 이름을 사용한다. '아랍어 이름'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름 가운데에서도 라니아(Rania), 란다(Randa), 줄렛(Julet, 줄리엣의 아랍어 전사)과 같이 서구권에서 쓰이는 이름과 비슷한 발음의 이름이 주로 쓰인다[4]. 이는 아시리아 기독교도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아랍 무슬림들이 사용하는 비종교적인 아랍어 이름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시리아 기독교도의 이름을 연구한 이성옥은 "이들에게는 서양이름이 기독교 이름으로 여겨져 이슬람의 언어로 여겨지는 아랍어 이름보다 선호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한다[5].


아시리아 기독교도의 비아랍어 이름은 이라크 기독교도와 무슬림을 구분하는 표지인 동시에 이라크 기독교도 내의 종파를 나누는 기능도 수행한다. 아시리아 기독교도들이 자신들과 칼데아 기독교도(아시리아 기독교에서 갈라져 16세기 가톨릭 교회로 소속된 이라크 기독교도 집단)를 구분 짓는 주요한 차이 중 하나가 이름이다. 이성옥이 만난 한 아시리아 기독교도는 "갈대아인의 약 90%가 아랍어 이름을 가졌을 것이며, 심지어는 알리나 후세인과 같은 이슬람 이름도 있다"라고 동방교회의 앗시리아인은 "자녀에게 절대로 아랍어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6]. 이름은 이처럼 아시리아 기독교도들이 자신들이 지닌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무슬림뿐만 아니라 다른 기독교도 종파와도 구분되는 독자적이고 특별한 집단임을 주장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레바논 마론파 기독교도들도 성경 속 인물, 성인과 순교자의 이름을 널리 사용한다. 요셉(주지프, 주자프, 유수프, 주), 엘리야(일리야스, 일리), 게오르기우스(주르즈), 안토니우스(투니, 안트완, 안투니, 타니우스, 타니), 셰르빌(샤르빌), 마론(마룬), 바울(불루스, 불), 베드로(비야르), 요한(잔, 자크), 미카엘(미카일, 미샤일)이 그 예다. 마론파는 성경과 코란에 모두 나타나는 인물인 요셉(아랍 무슬림에게는 유수프), 마리아(아랍 무슬림에게는 마리얌)의 경우처럼 아랍어 형태가 존재하는 이름을 사용하더라도 아랍어형보다는 주지프(Juzif)나 마리야(mariya) 처럼 서구 언어의 발음을 그대로 옮긴 형태를 더욱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성 역시 마리아, 리타, 헬레네, 테레사와 같이 기독교적인 이름을 사용한다[7].


다운로드 (2).jfif 레바논 마론파 교회 사제단


서구식 이름 또는 서구 언어의 발음을 아랍어식으로 옮긴 이름도 기독교도들이 선호하는 이름이다. 마론파 기독교도들은 모리스, 로이, 샤를, 에드몽, 쟝폴, 마리안, 로날드, 샘, 그레이스, 수잔, 산드라, 로자리타, 로젤라와 같은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식 이름도 널리 사용한다[8]. 반면에 이라크 아시리아 기독교도와는 다르게 20세기 초 마론파 지식인 내에서 나타났던 페니키아 민족주의, 즉 마론파가 고대 페니키아 문명의 직계 후손임을 주장하는 이념의 영향은 이름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9]. 하지만 마론파 역시 아시리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랍어식 이름은 무슬림의 전유물로 - 설령 그 이름이 성경 인물의 이름이 아랍어화 한 형태라 하더라도 - 인식하는 반면 서구식 발음을 따르는 이름은 기독교도의 이름으로 간주한다. 같은 요셉이나 마리아를 아랍 무슬림이 부르는 방식인 '유수프'나 '마리얌'이 아닌 서구 언어의 발음에 가까운 '주지프'나 '마리야'로 쓰고 말함으로써 마론파 공동체는 레바논의 아랍 무슬림과 스스로를 구분 짓고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름을 지배해 경계를 긋고자 하다

더 나아가 이름은 아랍 국가권력의 지배와 통제가 미치는 영역이기도 하다. 1950년대 독립한 이후 아랍 각국 정부는 서구 식민지배의 유산을 제거하고 아랍 무슬림 정체성에 기반을 둔 독립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국민에게 아랍 무슬림 이름의 사용을 강제하고 서구식 또는 비아랍어식 이름을 규제해 사회의 '순수'한 아랍 무슬림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사담 후세인이 집권하던 시기의 이라크가 대표적인 예이다. 바아스 정권과 사담 후세인은 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아랍 민족주의와 이라크 민족주의, 이슬람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라크 정체성을 규정하고자 했지만, 복잡한 변동 속에서도 아랍 정체성에 대한 강조는 꾸준히 나타났다. 아랍 정체성을 강조하는 바아스 정권의 이념은 90년대 말부터 시행된 인명이나 상호, 단체명에 서구식 이름을 금지하는 조치 등 인명과 고유 명사에 대한 정권의 통제로 나타났다. 또한 정권의 공식적인 정책이 없었어도 이라크의 소수 집단의 이름에 대해 개인적, 관행적으로 '아랍어화 강제' 조치가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아시리아 기독교도들은 말단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아시리아식 이름을 아랍어로 바꾸도록 강제하거나 일방적으로 아랍어로 등록했다고 기억한다. 코샤바(일요일)이라는 아시리아식 이름이 담당 공무원에 의해 '압둘 아하드(Abd al-Ahad, al-ahad는 아랍어로 일요일이라는 뜻이)'라는 아랍어 이름으로 등록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아시리아식 이름을 등록하려는 민원인에게 아랍어 이름을 강제하며 멋대로 핀잔(finjan, 커피 잔)이나 하티프(hatif, 전화기)라는 그 누구도 이름에는 쓰지 않을 아랍어 단어를 이름으로 등록한 경우도 있다[10].


이러한 경향은 현대에도 이어진다.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50개의 외국식 이름 사용을 금지했으며, 모로코 역시 사라(Sarah) - 아랍어 문자인 타 마르부타로 끝나는 사라Sara(t)가 아니라 h로 끝나는 사라Sarah - 와 같은 아랍 무슬림의 '전통적' 작명에서 벗어난 이름을 금지하고 있다[11]. 2017년에는 이집트 국회의원인 바디르 압둘 아지즈(Badir Abd al-Aziz)가 "동방 국가이자 이슬람 국가로써 이집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외국어 이름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제출안에는 기독교나 이슬람 전통과는 무관한 이름이나 외국어로 된 이름을 사용할 경우 200~2,000 이집트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었다[12]. 그러나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의 이름인 바디르 또한 역설적으로 이집트 사회에서 관습적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아랍어 사전이나 이슬람 전통에서는 그 기원을 찾을 수 없는 이름이다.


다운로드 (3).jfif 성탄절 성찬의례를 거행하는 콥트 교황 타와드로스 2세


'외국어' 이름 규제안은 이집트 사회, 특히 이집트 콥트 기독교도 공동체 사이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기독교도들은 이집트 정체성을 '이슬람'으로 단정적으로 규정하고 이집트 사회를 구성하는 기독교도 집단은 고려하지 않는 그의 발언을 특히 강하게 비판했다. 이집트가 무슬림만을 위한 국가인가? 또한 법안에는 '아랍 무슬림' 이름과 '외국식' 이름을 구분할 분명한 기준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슬람이나 기독교와 무관한 고대 파라오 시대의 이름은 이집트 정체성과는 무관한 이질적인 이름일까? 오직 일신교 전통이나 아랍 문화만이 이집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일까? 2017년 시작된 이름을 둘러싼 논쟁은 이집트의 정체성에 관한 오랜 논쟁을 다시 촉발시켰다: 이집트는 아랍 무슬림 국가인가, 고대 파라오 문명의 직계 후손인 모든 이집트인의 국가인가? 현대 아랍 국가는 찬란한 고대 문명에서부터 헬레니즘과 로마 제국, 기독교의 시대를 거쳐 이슬람화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역사를 지닌 중동 지역에 세워졌다. 이름과 관련된 문제는 그 오랜 역사의 지층 중 무엇이 새로운 국민국가의 정체성의 토대를 구성하는지의 질문이 여전히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시대정신이 이름으로 드러나다

이름은 또한 이름이 지어지는 시대의 상황과 지배적 가치를 반영하기도 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라크 아시리아 기독교도 사이에서는 아시리아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20세기 초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던 고대 아시리아 역사와 관련된 이름이 20세기 중반 이후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집트 헬완대학교 아랍어과 교수인 파티마 알사이디(Fatimah al-Saidi)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이집트에서 무슬림과 기독교도 두 집단에서 종교적 정체성과 가치, 그리고 두 집단 사이의 경계 인식이 더욱 강화되면서 아델, 람지, 아이만과 같이 무슬림과 기독교도 모두가 공통적으로 쓰던 이름은 사용 빈도가 줄어든 반면 무슬림과 기독교도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의 사용 빈도가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13].


종교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지배적인 정치적 이념과 이상 또한 이름에서 나타난다. 아랍 민족주의가 대중적 인기를 끌고 바아스 정권이 집권하던 시기인 1960-70년대에는 이집트의 자말(가말) 압둘 나세르의 이름인 자말(Jamal), 시리아 바아스 정권의 지도자인 하피즈 알아사드의 이름인 하피즈(Hafiz), 그리고 바아스당의 이름이기도 한 바아스(Ba'th, 부흥), 수무드(Sumud, 결의), 사우라(Thawrah, 혁명), 사이르(Tha'ir, 혁명가)라는 이름이 유행이었다[14]. 이라크에서도 많은 사람이 유명 정치 지도자의 이름을 자식들에게 지어주었다. 20세기 초 신생 이라크 국가의 지배계층 상당수는 오스만 제국 관료와 장교단 출신이었고, 그 결과 히크마트(Hikmat), 무라드(Murad), 샤우카트(Shawkat), 자우다트(Jawdat), 바흐자트(Bahjat), 압둘 하미드(Abd al-Hamid), 술라이만(Sulayman)과 같은 튀르크어나 오스만 술탄의 이름이 이라크 지식인과 엘리트 계층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왕정 시기에는 파이살(Faysal), 가지(Ghazi), 탈랄(Talal) 그리고 파이살 2세의 섭정인 압둘 일라흐(Abd al-Illah)와 같은 왕족이나 누리 알사이드(Nuri al-Said) 총리의 이름인 누리, 살레흐 자브르(Saleh Jabr) 총리의 이름인 살레흐 등 주요 정치인 등의 이름도 대중적으로 쓰였다[15].


그러나 정권이 뒤집어지면 정치 지도자들의 이름을 쓰는 사람은 조롱이나 놀림을 받거나 때로는 구정권 관련 인사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성을 지녔다. 바그다드대학교 교수인 안와르 알하이다리(Anwar al-Haidari)는 이라크 왕정의 마지막 총리인 누리 알사이드를 존경하던 부모님이 원래는 자식에게 '누리 사이드'라는 이름을 붙여주고자 싶어 했으나, 안와르는 1958년 혁명으로 왕정이 붕괴된 이후에 태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왕정 시대의 총리, 그것도 쿠데타군이 살해한 총리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하등 좋을 일이 없었기에, 부모님은 대신에 '누리'와 같은 어근(n-w-r)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다른 단어인 안와르 사이드(Anwar Said)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두 이름 사이의 관련성이 너무나 분명했기에, 안와르 교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누리 알사이드 총리의 별명인 '아부 사바흐(Abu Sabah, '사바흐의 아버지', 사바흐는 누리 알사이드 총리의 아들)'로 불리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16].


1958년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세워진 압둘 카림 카심 정권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라크 민족주의를 추구하던 정권이었다. 신정권 하에서 이라크인이 선호하는 이름 역시 바뀌었다. 이라크 공산당 설립자인 유수프 살만(Yusuf Salman)의 별칭인 파흐드(Fahd), 이라크 공산당 서기장인 살람 아딜(Salam Adil)의 이름인 살람과 아딜, 그 외의 공산당 지도자들인 하짐(Hazim), 사림(Sarim), 리나(Lina), 카림(Karim)의 이름이 유행했다. 당대 쓰이던 이름 중에는 심지어 프라브다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가말 압둘 나세르와 아랍 민족주의의 인기가 정점에 달하던 시절에는 자말과 나세르를 포함해 이집트의 고위 인사들의 이름인 아미르(Amir), 하킴(Hakim) 역시 널리 사용되었다. 이라크에 바아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꾸준이 유지되었다. 바쓰 정권의 초대 대통령인 하산 알바크르(Hasan al-Bakr)의 아들인 하이삼(Haytham), 사담 후세인의 자녀들인 우다이(Uday), 쿠사이(Qusay), 할라(Hala), 라그드(Raghd) 등 바아스 정권 지도부와 그 가족의 이름뿐만 아니라 와흐다(Wahdah, 통일), 미사크(Mithaq, 헌장), 타으밈(Ta'mim, 국유화), 우루바(Urubah, 아랍주의), 칸사(Khansa, 아랍과 페르시아 사이에 벌어진 카디시야 전투에서 네 명의 아들을 잃은 아랍 여성시인, 카디시야 전투는 이란-이라크 전쟁 시 바쓰 정권이 애용하던 역사적 상징 중 하나다)와 같이 바아 정권의 이념과 상징을 대표하는 추상명사까지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특정 시대에 특정 이름이 널리 사용되다 보니 이름과 출생 연도는 부모의 정치성향이나 가정환경을 가늠하는, 또는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니달 압둘 후세인(Nidal Abd al-Husayn)이라는 은퇴 교사는 그의 이름 니달(Nidal, 투쟁) 때문에 바아스 정권 시대 체포되었던 이야기를 전한다. 그의 조사관은 이름과 출생 연도를 묻고는 한마디를 툭 던졌다. "1960년생에 이름이 니달이라? 아버지가 공산주의자였군? 이거 봐라...."


한편 1966년생인 살람 이스마일, 즉 이라크 공산당 서기장의 이름을 지닌 사람 역시 비슷하지만 완전히 반대의 경험을 겪었다. 2003년 바아스 정권이 무너진 뒤 관공서에 일처리를 하러 간 그는 은퇴한 공무원을 만난다. 신분증을 본 은퇴 공무원은 그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건넸다. "아버님이 공산주의자셨군? 바아스 놈들이 집권하던 시기에 아들 이름을 '살람'으로 짓는 건 보통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닌데, 부친 분이야말로 진정한 투사시구만!" 은퇴 공무원의 도움 덕분에 그의 일처리는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공산주의자를 적으로 규정하던 바아스 정권 시대에는 공산주의와 관련된 이름이 탄압과 차별,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면, 바아스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는 공산주의와 관련된 이름이 저항과 투쟁, 불굴의 상징으로 인식된 것이다. 실제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이 공산주의자였는지, 바아스 정권에 맞서 투쟁했는지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말이다.


어떤 언어를 배우든 가장 처음에 배우는 내용 중 하나는 상대의 이름을 묻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 "나의 이름은..."이라는 이 간단한 질문은 외국어 교육에 있어 초급 과정 중의 초급에 속하는 부분이지만, 그 속에 내재된 함의는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다.


참고문헌

[1]. 이성옥(2017),「앗시리아인의 이름, 정체성의 뱃지 : 현대 이라크 앗시리아인의 이름 짓기」, 『ACTS 신학저널』 제32집(2017): 282-283; 291쪽.

[2]. 위의 글, 294-295쪽.

[3]. 위의 글, 286-287쪽.

[4]. 위의 글, 296-297쪽.

[5]. 위의 글, 297쪽.

[6]. 위의 글, 289쪽.

[7]. 이성옥(2018).「Trapped between Languages?: Naming among Contemporary Maronites in Lebanon」, 『한국중동학회논총』 제39권 제1호(2018): 110-112쪽.

[8]. 위의 글, 115쪽.

[9]. 위의 글, 117-118쪽.

[10]. 이성옥, 2017, 297-298쪽.

[11]. Muhammad Dariyus, 2019년 5월 10일.

"أنادي محمّداً فيجيب محمّدٌ آخر: عن المسموح والممنوع في الأسماء"

[12]. Maikl Munir, 2017년 7월 9일. "ماذا تقول لنا أزمة طلب منع الأسماء "الأجنبية" في مصر"

[13]. 위의 글.

[14]. Dariyus, 2019.

[15]. Rafid Sadiq, 2020년 4월 22일.

"بعد قرن على تأسيس العراق... كيف ساهمت السياسة في اختيار أسمائنا؟"

[16]. 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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