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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쉬아파 IS는 없을까?

터번을 쓴 노인들, 극단주의자들을 막다

by 황의현
때는 1980년대, 이란과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미국에게 죽음을(marg bar amrika/al-mawt lil-amrika)"을 외치며 미국을 노린 테러공격이 한창이던 시절, 반대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에 맞서던 아프간 무자헤딘(Mujahedin)을 광신도 쉬아파와는 다른 "좋은 녀석들"로 여기고 지원을 아끼지 않던 시절, 무자헤딘 지원 업무를 위해 파키스탄에 파견 나온 펜타곤의 미국 관료는 파키스탄 정부 관료에게 말했다.

"쉬아파들은 피에 굶주린, 아이 잡아먹는 괴물들입니다."

본인도 쉬아파였던 파키스탄 관료는 대답했다.

"글쎄... 어디 지켜봅시다. 하지만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 사람들은 순니파일겁니다. 순니파들이야말로 진짜 깡패죠. 쉬아파는 그저 힘없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이 대화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2001년 9월 11일, 한때 미국이 피에 굶주린 광신도 쉬아파와는 달리 "좋은 녀석들"이라고 여겼던 순니파 극단주의 조직인 알카에다는 미국의 심장부를 공격했다.

Vali Nasr, The Shia Revival: How Conflicts within Islam Will Shape the Future (New York: W. W. Norton & Company, 2006), 17-18에서 부분 인용.

이슬람 극단주의, 또는 지하드주의 테러조직 역시 변화해 왔다. 지하드주의의 두 번째 물결인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를 첫 번째 물결인 앞선 세대(70-80년대)의 테러조직과 구분하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먼 곳의 적(al-'aduw al-ba'id)", 즉 미국과 서구에 대한 공격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1]. 물론 첫 번째 물결의 지하드주의 조직 - 이집트의 이슬람 지하드(Islamic Jihad)나 알가마아 알이슬라미야(al-Gama'ah al-Islamiyyah) - 이 미국과 서방 국가에 호의적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조직이 가장 먼저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 세력은 바로 아랍 국가와 중동 내에 존재하는, 입으로는 무슬림이라고 강변하지만 실제로는 이슬람의 참된 길에서 벗어난 "불신자" 독재정권이었다. 첫 번째 물결의 이론적 토대는 현재하는 아랍 정권을 '불신자의 통치'라는 뜻으로 "자힐리야(Jahiliyyah)"로 규정하고 저항을 촉구한 사이드 쿠틉(Sayyid Qutb)의 사상이었다. 이를 따르는 이집트 지하드주의 조직은 아랍과 중동 독재정권과 그 하수인을 우선적으로 겨냥했고 결국 1981년 사다트 암살로 그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알카에다로 대표되는 지하드주의의 두 번째 물결은 새로운 접근법을 취했다. 미국과 서방 국가의 지원이 아랍/중동 내 불신자 정권이 존속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판단한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는 따라서 기존 정권을 타도하고 '이슬람 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의 원흉인 미국과 서구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보았다. 분석이 달라지면서 공격의 우선순위 또한 달라졌다. 알카에다뿐만 아니라 첫 번째 물결을 대표하던 이집트의 지하드주의 조직들 서구 국가 본토와 중동 내 서구 민간인을 노리기 시작했다. 1993년 미국 세계무역센터 테러, 1996년 카이로 피라미드 인근에서 발생한 관광객을 노린 테러,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 58명을 포함 총 62명의 사망자를 남긴 1997년 룩소르 테러 등은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탈'과 무관한 민간인이라도 그리고 중동 외부에 있더라도 테러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세계화'된 지하드주의는 중동을 넘어 전 세계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고, 그 정점은 바로 2001년 9/11 테러였다. 2002년 발리, 2004년 마드리드, 2005년 런던 등 2000년대 들어 세계 각지에서 잇달아 발생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알카에다의 위협이 더 이상 머나먼 중동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적 지하드주의의 주도권은 알카에다에서 세 번째 물결로 넘어갔다. 2003년 이라크 정권교체 이후 혼란 상황에서 성장한 아부 무스압 알자르카위(Abu Mus'ab al-Zarqawi)의 이라크 알카에다(AQI), 그리고 2011년 시리아 내전을 틈타 AQI에서 폐허에서 부활한 IS는 지하드주의의 세 번째 물결을 상징한다. 중동 밖에 있는 미국과 서구를 노린 알카에다와 달리 AQI와 IS는 "가까운 곳의 적(al-'aduw al-qarib)", 바로 중동 내의 쉬아파를 타도 대상 1순위로 규정하고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냈다. 또한 미국과 중동 정권을 모두 무너뜨린 뒤에 그들의 이상 국가를 세우겠다는 알카에다와 달리 AQI와 IS는 시리아와 이라크에 영토를 장악한 뒤 먼저 '칼리프 국가'를 건설, 실체를 지닌 영토국가를 근거로 중동과 세계의 모든 불신자 세력 - 기독교도와 유태인들, 그리고 쉬아파와 이란 - 에 맞서 싸우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하지만 알카에다 이후 세계화된 지하드주의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변화였고, IS 역시 가까운 곳의 적뿐만 아니라 먼 곳의 적에 대한 테러 공격을 적극적으로 선동하고 지원했다. 2015년 샤를리 엡도 사건과 파리 연쇄테러, 2016년 브뤼셀, 니스, 베를린, 미국 올란도, 2017년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런던, 2019년 스리랑카 등 세계 각지 IS 산하 세포조직들과 IS 및 지하드주의를 추종하는 '외로운 늑대들'이 저지른 수많은 테러 공격은 지하드주의의 기수는 알카에다에서 IS로 넘어갔을지라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지하드주의의 위협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IS가 모든 영토를 상실하고 사실상 몰락한 현재도 초국적 지하드주의의 위협 역시 완전히 종식되었다고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미국 관료와 파키스탄 관료의 대화가 보여주듯이,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찾을 수 있다. 90년대 이후 초국적 지하드주의의 흐름 속에 쉬아파 무장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순니파와 달리 쉬아파가 테러와는 전적으로 무관한 종파라는 의미는 아니다. 레바논 쉬아파 무장조직인 헤즈볼라 역시 1980년대와 90년대 레바논의 미군 및 프랑스군 및 이스라엘을 노린 테러 공격을 여러 차례 자행, 많은 사망자를 남겼다. 또한 헤즈볼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을 공격하기도 했으며, 1985년 파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공격과도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는다. 레바논 내전이 한창이던 80년대부터 90년대에는 또한 서구 출신 민간인을 인질로 잡고 위협하기도 하는 등 민간인 역시 헤즈볼라의 무력 활동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동 전역의 무장 조직을 지원하며 미국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는 국가, 이란이 있지 않은가. 쉬아파 역시 테러리즘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아파 무장조직과 순니파 테러조직 사이 차이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지하드주의에 경도된 순니파 테러리스트들이 중동뿐만 아니라 서구와 아시아 등 전 세계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 반면, 쉬아파 무장조직의 테러는 거의 중동 내에 집중되어 있다. 알카에다와 IS와 같이 초국적 지하드주의를 표방하는 단체 역시 쉬아파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외로운 늑대' 역시 쉬아파가 아닌 순니파 무슬림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2000년대 이후 중동 외부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 거의 대다수는 순니파 지하드주의 조직의 소행이다. 미 육군사관학교 산하 대(對) 테러 연구소의 토마스 린치 3세(Thomas Lynch III)는 1981년부터 2006년까지 중동을 포함 전 세계에서 순니파 지하드주의 조직이 일으킨 공격은 703건에 달하는 반면 쉬아파 무장조직의 공격은 158건, 약 4배가량 차이가 나며, 쉬아파 무장조직의 공격이 주로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지역에 집중된 반면 순니파 지하드주의의 공격은 전 세계에서 발생했음을 보여준다[2]. 또한 린치는 순니 지하드주의 조직과 쉬아 무장조직의 테러공격 동기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순니 지하드주의 조직이 불신자의 위협에 맞서 칼리프제의 복원과 '올바른' 이슬람 국가 건설이라는 종교적이고 이념적 목적을 추구하는 반면 쉬아파 무장조직, 특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헤즈볼라와 이란 무장조직의 테러 공격 동기는 쉬아 이슬람의 교리와 종교적 이상과 관련된 목적이 아닌 실질적이고 정치적인 이해관계다 [3]. 알카에다와 IS가 종교적 이상과 지향을 강조한다면, 헤즈볼라와 이란 혁명수비대 및 친이란 무장조직은 주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


다운로드.png 1981-2006년 쉬아파와 순니파 무장조직이 일으킨 테러 공격 비교
유럽 내 쉬아 무장조직이 일으킨 테러 공격의 빈도가 특히 높은데, 이는 1980년대 헤즈볼라가 레바논에 개입한 프랑스를 여러 차례 공격했기 때문이다. 헤즈볼라의 공격이 프랑스에 한정된 반면, 순니 무장조직의 테러는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등 서유럽 각지에서 발생했다.
출처: Thomas F. Lynch III, Sunni and Shi ’a Terrorism: Differences that Matter (West Point: Combating Terrorism Center, 2008), 30-36.


이러한 차이의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인구 비례 상 순니파가 전체 무슬림 인구의 절대다수(약 80-90%)를 차지하기에 순니파 지하드주의 테러조직과 테러 공격이 당연하게도 더욱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또한 공공연히 "미국에게 죽음을, 이스라엘에게 죽음을"을 외치더라도 실제 미국과 이스라엘을 노리고 공격하는 순간 미국과 승산 없는 전면전은 피할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이란이 미국을 노린 테러 공격을 실제로 일으킬 가능성도 매우 낮긴 하다.


하지만 중동 외부 지역에도 쉬아파 무슬림 이민자 공동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거의 모든 '외로운 늑대'들은 순니파 이민자 공동체 내에서 나타날까? 왜 순니파 내에서는 칼리프제와 샤리아 실행을 요구하는 무장조직이 주를 차지하는 반면 쉬아파에서는 그러한 조직이 등장하지 않을까? 2003년 이후 이라크에서 우후죽순처럼 나타난 반미 성향의 쉬아 민병대 조직은 국제적 반미 테러조직으로 발전하지 않은 반면, 미군에 저항하던 순니파 반군을 흡수하여 성장한 이라크 알카에다는 IS로 변모했다. 중동 내 순니파와 쉬아파 모두 극단적 이슬람주의가 자라나는 토양인 미국의 행보에 대한 반발, 서구적 가치의 침투에 대한 반감, 사회적, 경제적 좌절과 변화와 희망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라는 같은 상황 아래 살고 있으며, 비무슬림권 내 '외로운 늑대'를 키워내는 무슬림 이민 2,3세대 청년들의 소외와 좌절, 사회에 대한 불만 역시 순니파 이민자 공동체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또한 걸프 지역의 쉬아파 역시 알카에다와 같은 초국적 테러조직의 기반이 된 초국적 관계망을 지니고 있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 형성된 순니 지하드주의 초국적 관계망이 짧은 역사를 지닌 반면, 아라비아 반도와 이라크, 이란 쉬아파를 서로 연결해 주던 초국적 관계망은 훨씬 이른 시기인 18-19세기부터 존재해 왔으며 바레인, 사우디, 팔레비 왕정 시기 이란, 사담 후세인 시기 이라크의 쉬아파 반정부 세력에게 피난처와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그렇다면 왜 순니파의 초국적 관계망은 알카에다로 발전한 반면, 쉬아파의 초국적 관계망은 그러지 않았을까?


로랑스 루에르(Laurence Louër)[4]는 순니파와 쉬아파 종교 엘리트 사이에 존재하는 제도적 차이가 이슬람주의 운동의 차이로 이어졌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순니파 종교 엘리트들이 분산적이고 탈중앙집권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면, 쉬아 종교 엘리트 사이에는 상대적으로 분명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코란과 주해학, 하디스, 이슬람 법학 등 전통적 교육과정을 마치고 법적 해석(ijtihad)을 내릴 자격을 인정받은 순니파 종교 엘리트들은 원칙적으로 모두 동등한 권위를 지니고 있으며, 종교적 문제에 대해 최종 결정 권한을 지닌 최고 권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순니파 내에도 이집트 알아즈하르(Al-Azhar)의 수장이나 각국의 최고 무프티(mufti)와 같이 국가가 공인한 종교 엘리트들이 존재하지만, 국가가 부여한 지위가 이들이 절대적인 종교적 권위를 지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정 종교인의 절대적이고 지배적인 권위를 정당화할 교리적 근거와 전통이 부재한 순니파에서 제도권 종교 엘리트들의 판단과 해석은 구속력을 지니지 않는다. 종교적 권위의 궁극적 원천을 전통적인 종교 엘리트의 해석이 아닌 코란과 순나에 두는 순니파에서는 제도권 바깥의 종교 엘리트들, 또는 아예 전통적 종교 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라도 코란과 순나에 대한 그들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제도권에 통합된 전통적인 종교 엘리트의 해석에 거부하고 그들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제도권 종교 엘리트들이 아랍 및 중동 독재정권과 맺어온 긴밀한 관계는 이들의 권위와 영향력을 침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즈하르의 수장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대 무프티 등 제도권 종교 엘리트들은 정권에 종교적 정통성을 제공하는 대가로 영향력과 지위를 누리는 공생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공생 관계는 정권과 대립하는 제도권 바깥의 종교 엘리트나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제도권 종교 엘리트들의 권위를 부정하고 그들의 해석에 도전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한다. 종교 엘리트 사이에 명확한 위계질서와 구속력 있는 중심부가 존재하지 않고 종교 엘리트가 권위를 독점하지도 못하는 순니파에서 기성 종교 엘리트의 권위를 완전히 부정,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독자적인 종교적 권위를 주장하는 지하드주의 지도자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궁정 무프티인 무르탓드(Murtadd, 배교자) 압둘 아지즈 앗쉐이크와 알 사우드 가문의 새로운 폭군"
"궁정 학자인 무함마드 사이드 앗탄타위가 유대 국가 전 총리인 시몬 페레즈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대표적으로 IS가 선전잡지에서 제도권 종교계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순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에게 현 사우디 최고 무프티인 압둘 아지즈, 아즈하르의 수장 앗탄타위와 같은 제도권 종교 지도자들은 적법한 권위를 지닌 올바른 지도자들이 아니라 권력에 부역한 배교자들, "궁정 학자"들일뿐이다.


이를 반영하듯이 순니파 지하드주의 지도자들 상당수는 전통적 종교 교육과 제도권 종교 엘리트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다. 이집트 정권을 자힐리야로 규정, 무력을 통한 타도를 촉구한 사이드 쿠틉은 교사였고 오사마 빈라덴은 사업가였으며 그의 사후 알카에다를 이끈 아이만 알자와히리(Ayman al-Zawahiri)는 의대 졸업생이었다. 사다트를 암살한 이집트 이슬람 지하드 조직의 주요 지도자인 무함마드 압둘 살람 파라즈(Muhammad Abdul-Salam Faraj)는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며 이라크 알카에다를 조직한 자르카위는 요르단 뒷골목 범죄자 출신이었다. 물론 알가마아 알이슬라미야의 지도자 우마르 압둘 라흐만(Umar Abdul-Rahman), 오사마 빈라덴의 정신적 지도자인 압둘라 앗잠(Abdullah Azzam), 바그다드 이슬람대학교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와 같이 종교 엘리트들 또한 지하드주의 조직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아즈하르와 사우디의 제도권 종교계를 포함한 전통적 종교 엘리트들은 코란과 순나를 극단적으로 해석하고 무차별적 폭력과 테러를 정당화하는 해석이 이슬람의 가르침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으며 비판하지만, 전통적 종교 엘리트가 구속력과 해석의 권위를 독점하지 못하는 순니파에서 극단적 해석을 통제하고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은 매우 미약할 뿐이다. 이처럼 지하드주의 이념과 극단적 해석의 확산은 종교적 권위가 분산되고 위계화되지 않은 순니파의 특성과 연관되어 있다.


순니파와 달리, 아야톨라(Ayatollah)라고 불리는 쉬아파 종교 엘리트들이 지닌 종교적 권위는 여전히 확고하다. 신은 코란과 예언자의 순나를 통해 계시를 내려주었지만 아직 계시는 완결되고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으며 오직 이맘만이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공동체를 이끌 수 있다는 쉬아파의 믿음은 곧 이맘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오직 종교 엘리트들만이 그를 대리하여 무슬림을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쉬아 종교 엘리트들의 종교적 권위는 이처럼 이맘에 대한 신앙이라는 쉬아파의 핵심 교리로 정당화될 수 있었고 따라서 전통적으로 쉬아 종교 엘리트들은 '숨은 이맘의 대리인'으로서 순니파에 비해 더욱 튼튼하며 강력한 권위를 누릴 수 있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Ayatollah Ali Khamenei)를 접견하는 이란 전문가의회(the Assembly of Experts) 의원들


국민투표로 선출된 88명의 법학자로 구성되는 전문가의회는 최고지도자 사망 또는 유고 시 그의 후임자를 선출하는 권한을 지닌다. 전문가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법학자 상당수는 아야톨라라는 칭호를 지닌다. 터번은 전통적인 쉬아 종교학과 이슬람 법학 교육을 이수했음을 뜻하는 증표로 특히 검은 터번은 예언자 무함마드와 열두 이맘의 후손임을 나타낸다.
출처: http://english.khamenei.ir/photo/6522/Members-of-the-Assembly-of-Experts-met-with-Ayatollah-Khamenei


뿐만 아니라 권위가 분산적인 순니파 종교 엘리트와 달리 쉬아파의 종교 엘리트들은 어느 정도 분명한 위계질서 하에 위치한다. 쉬아 종교 엘리트는 신학교를 갓 졸업한 훗자툴 이슬람(Hujjat al-Islam, 페르시아어로는 호자툴 이슬람Hojatul Islam), 법적, 종교적 문제에 대해 독자적으로 해석(ijtihad)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아야톨라, 그리고 아야톨라들 사이에서도 특히 높은 권위를 지닌 '대(大) 아야톨라(Ayatollah al-'Uzma)' 또는 '마르자 앗타끌리드(Marja' al-taqlid, 줄여서 마르자Marja', 페르시아어로는 마르자에 타끌리드Marja-e taqlid)로 구분된다. 쉬아파 신도는 여러 아야톨라 중 한 사람을 골라 그의 가르침을 따르며, 아야톨라들 또한 때로는 그 개인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서 명망과 학식을 자랑하고 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마르자를 따르기로 선언하기도 한다. 이처럼 평신도 - 아야톨라 - 마르자로 이어지는 위계질서가 갖춰진 쉬아파는 순니파에 비해 종교 엘리트들의 해석이 더욱 강한 통제력(물론 절대적인 통제력은 아니다. 신도들은 여러 마르자 사이에서 원하는 인물을 선택할 수 있다.)과 해석의 권위를 지니며, 순니파처럼 평신도가 독자적으로 종교적 권위를 주장,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며 기존 종교 엘리트에 도전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극히 좁다. 순니파 공동체 내에서는 고등학교 선생과 의사, 엔지니어가 코란과 순나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전통 종교 엘리트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엄격한 종교적 권위의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쉬아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아야톨라 내에서 순니파처럼 극단적 해석과 지하드주의를 지지하는 인물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닐까? 여기서 순니파와 쉬아파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차이인 역사적 기억의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와 정통 칼리프가 다스리던 시대를 황금기로 보고 그 시대로 되돌아가 샤리아가 집행되는 진정한 이슬람 국가를 '회복'하고자 하는 순니 지하드주의자들의 목표는 과거에 대한 이상화된 기억에 토대를 둔다. 반면에 쉬아파에게 '정통 칼리프' 시대는 찬탈자들의 시대이자 알리에게 돌아가야 할 권력을 빼앗은 찬탈자들의 시대일 뿐이다. 올바른 이슬람 사회는 무함마드 이후 존재한 적 없으며 오직 숨은 이맘이 돌아올 때에야 회복될 것이다. 칼리프제라는 역사상 존재했던 - 또는 존재했다고 믿는 - 실체를 이상으로 여기고 이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순니 지하드주의 조직과 달리 쉬아파에게 이상 사회를 세우는 주체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숨은 이맘이다. 이에 따라 전통적으로 쉬아 종교 엘리트들은 구체적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신 이맘이 은폐한 상황에서 올바른 무슬림으로 살아가기 위한 종교적 규범과 문제에 전념하는 편을 선택했다. 7세기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이상화된 기억이 순니 지하드주의 이념을 형성하고 대중적 확산에 크게 기여한 반면, 쉬아파의 역사적 기억은 과거로 되돌아가기보다는 미래의 구원을 기다리는 방향을 가리킨다. 이슬람주의 이념을 구성하기 위한 핵심 원재료인 역사적 기억의 차이는 이처럼 이념과 운동의 지향점 차이와도 긴밀히 결부된다. 어찌 보면 순니 지하드주의는 쉬아파 신앙의 핵심 구성 요소와 위배되는 이질적인 "순니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쉬아파 내에도 순니 지하드주의와 비슷하게 "이슬람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운동이 존재했다. 바로 이란 혁명과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다. 그러나 쉬아 이슬람주의 운동은 순니파와 달리 전통 종교 엘리트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이란 혁명과 종교 지도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법학자의 지배(vilayat-e faqih)" 이론을 주장한 이는 바로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가 아니었던가. 이슬람 국가 건설이라는 이상에 따라 이란은 샤리아 원칙에 따라 통치하고 종교 지도자에게 최고 권한을 주었으며, 순니 지하드주의의 노골적 반미 감정과 교조적 해석 또한 공유한다. 근대 이전부터 종교 엘리트 사이에 존재하던 초국적 관계망을 통해 이란 혁명 이념이 이라크, 바레인, 사우디 등에 확산되면서 이들 국가에서도 호메이니를 지지하고 이란과 같은 이슬람 혁명을 추구하는 조직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어느 하나도 알카에다와 같이 미국 한복판에 민간인이 가득 탄 비행기를 들이박는 테러 조직으로는 발전하지 않았다. 권력을 잡은 쉬아 이슬람주의자들은 반미와 저항의 레토릭만으로는 국가 운영이라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업을 해결할 수 없음을, 국가와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이슬람 혁명의 수출이라는 이상과 실용적 필요성 사이 균형을 유지해야만 함을 깨달았다. 역설적으로 쉬아 이슬람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음으로써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는 꿈도 꿀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란이 반미 수사를 그대로 실행에 옮겨 미국을 노린 테러 공격을 저질렀다간 전면전이 발생할 테고, 이는 곧 이란과 현 정권의 파멸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혁명수비대를 포함한 이란의 여러 군사조직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조직의 목적은 이란의 국가적 이익 극대화이지, 순니 지하드주의 조직처럼 종교적 이상의 실현이 아니다. 이처럼 목적의 차이는 곧 행동 방식의 차이로 이어진다.


또한 호메이니의 이론은 종교 엘리트가 정치와 거리를 두는 전통을 유지하고자 한 동시대 다른 저명한 마르자들의 비판을 받았으며, 현재 쉬아파 내에서 가장 명망 높고 많은 지지를 받는 마르자인 이라크의 아야톨라 시스타니(Ayatollah al-Sistani)는 이란의 법학자 통치론을 거부하고 종교 엘리트의 정치적 불간섭의 원칙을 고수한다. 정치적 문제에 직접 개입 회피하는 시스타니를 포함한 여러 마르자들의 태도는 자신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쉬아 마르자들은 정치인들에게 쉬아파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큰 그림, 추상적인 방향과 이상은 제시하지만 그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지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는다. 적절한 구체적 방안을 판단하고 선택하며 실행하는 역할은 정치인과 평신도의 몫이다. 구체적 방안의 선택은 세속의 영역에 맡김으로써 마르자들은 현실 정치에 개입할 경우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딜레마와 모순, 예기치 못한 반발과 반응을 가져올 수 있는 민감한 결정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공동체 내에서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로서 권위를 유지한다[5].


이처럼 현재 쉬아파 공동체 내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과 권위를 지닌 두 중심부 - 이란과 이라크 - 의 종교 엘리트 모두가 무차별적 테러 공격을 금지하는 상황에서 알카에다나 IS 같은 조직이 나타나 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호메이니와 그 후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Ayatollah Khamenei)를 따르는 쉬아파 무장조직은 이란 정권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전 세계적 테러 공격을 자행할 이유가 없다. 시스타니를 필두로 전통적인 정치적 수동성을 유지하는 마르자들을 따르는 쉬아파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이들 마르자들의 권위를 전면 부정하고 테러 행위를 정당화하는 새로운 종교적 명분과 해석을 제시하기에는 기존 종교 엘리트들의 독점적 권위가 강고하다. 21세기에는 전혀 걸맞지 않아 보이는 터번을 쓴 할아버지들이 쉬아파 공동체 내에서 지하드주의와 같은 극단적 이념을 억제하고 IS와 같은 테러 조직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나름 기여한 것이다. 그러나 쉬아 무장조직은 여전히 중동 내 여러 분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순니 지하드주의 조직처럼 대서양과 지중해 너머로 총부리를 돌리지 않을 뿐 그들 역시 중동 내 불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고고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세속의 삿된 정치적 문제에서 손을 뗀 마르자들의 종교적 영향력은 이익과 권력, 영향력 확보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 정치의 논리 앞에서 멈춘다.


각주

[1]. Fawaz Gerges, ISIS and the Third Wave of Jihadism, Current History 113, no. 767 (December 2014): 341.

[2]. Thomas F. Lynch III, Sunni and Shi ’a Terrorism: Differences that Matter (West Point: Combating Terrorism Center, 2008), 29.

[3]. 위의 글, 40-43.

[4]. Laurence Louër, Transnational Shia Politics: Religious and Political Networks in the Gulf (London: Hurst & Company, 2011), 300-301.

[5]. 위의 책, 293-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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