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과 초승달의 정치학
이슬람력의 9번째 달인 라마단 달은 전 세계 무슬림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달이다. 라마단 달은 코란이 유일하게 언급하는 달이자 코란의 계시가 시작된(라마단 달 27일, '권능의 밤laylat al-qadr') 신성한 의미를 지닌 달이다. 라마단 기간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단식하며, 한 달이 끝난 뒤에는 단식의 고행을 무사히 이겨냈음을 축하하는 명절인 이드 알 피트르(Eid al-Fitr)를 기념한다.
올해 아랍 국가 대부분에서 라마단은 2025년 3월 1일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다 3월 1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가령 말레이시아에서 라마단은 3월 2일에 시작되었고, 한국의 이슬람중앙성원도 말레이시아를 따라 3월 2일부터 라마단을 시작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와 가까운 인도네시아에서는 3월 1일에 라마단이 시작되었다. 이란의 라마단도 3월 1일이 아니라 3월 2일부터다.
순수 태음력인 이슬람력은 태양이나 다른 천체의 움직임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달의 위상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이슬람력의 한 달은 초승달이 관측될 때 시작된다. 라마단 역시 초승달 관측과 함께 시작되며 새로운 초승달을 관측할 때에 끝나며, 초승달의 관측 여부의 차이로 인해 라마단의 시작과 종결 역시 지역에 따라 하루 정도 차이가 난다. 이처럼 달의 관측이 차지하는 중요성 덕분에 이슬람권에서 천문학이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뛰어난 천문학 수준에도 불구하고 종교 지도자들이 육안으로 직접 초승달을 관측하고 새로운 달의 시작을 선포하는 방식은 유지되었고, 현대적 천문학이 도입된 오늘날에도 많은 국가에서 라마단 달의 시작과 끝은 천문학적 계산뿐만 아니라 각국 종교 지도자들이 직접 초승달을 관측하는 전통적 방식을 통해서 결정된다. 일부는 종교 지도자들이 육안으로 달을 확인할 때에만 라마단의 시작과 끝을 결정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다른 일부는 망원경을 통한 관측도 인정하기도 한다. 아랍 세계의 가장 서쪽 끝에 있는 모로코와 같이 해가 진 뒤 2시간 내에 달이 뜨는 서부 국가에서는 망원경이나 천문학적 계산의 도움을 빌리지 않으면 아예 육안으로 달을 관측하기 어려운 나라도 있다[1]. 모로코는 올해에도 다른 아랍 국가와 다르게 라마단의 첫날을 3월 2일로 정했다.
그러나 초승달을 관측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라마단이 시작되는 날짜를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이슬람의 가장 신성한 달인 라마단 또한 중동 및 무슬림권의 패권과 주도권을 차지하고자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국가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2019년에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한 걸프 국가들 - 쿠웨이트, UAE, 심지어 단교 상태인 카타르까지 - 의 종교 지도자들은 6월 3일 월요일 저녁 초승달을 관측하고 2019년 라마단이 끝났으며 6월 4일 화요일부터 이드 알피트르가 시작된다고 선언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모스크의 이맘(예배 인도자)들은 사우디의 발표에 따라 6월 3일 저녁 예배에서 라마단의 종료를 선언했다. 팔레스타인 최고 종교 지도자인 예루살렘의 대(大)무프티가 아직 초승달을 관측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이드 알피트르는 6월 5일 수요일에 시작된다고 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팔레스타인인 모스크 대부분은 예루살렘의 대무프티의 결정을 따랐지만, 극단적 살라피스트 정치세력인 이슬람 해방당(Hizb al-Tahrir al-Islamiyy)의 지지자들은 화요일에 이드 예배를 강행하여 팔레스타인 경찰과 충돌했다[2].
2019년 가자 지구의 종교 지도자들은 관습과 달리 사우디가 발표한 날짜가 아닌 예루살렘의 무프티의 지침에 따르기로 결정하고 이드 알피트르의 '연기'를 선언했다. 마찬가지로 요르단의 종교 지도자들은 올해에는 사우디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5일에 이드가 시작된다고 발표했다. 요르단인들은 "드디어 요르단이 홀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고 자축(?)하는 분위기다[3].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의 안나자 대학교(An-Najah National University) 교수인 파리드 아부 다이르(Farid Abu Dhair)는 올해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이 갑자기 사우디에 반기를 든 이유가 사우디의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한 항의라고 해석한다. 그는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은 독자적으로 이드 날짜를 정함으로써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과 유네스코 탈퇴 등 미국의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을 묵인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계획, 또는 '세기의 거래'에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우디의 행보에 불만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4].
이와 반대로 이집트에서는 이슬람법과 관련된 최종 권위를 지닌 정부 산하 종교 기구인 다르 알이프타(Dar al-Ifta')의 수장인 이집트의 대무프티인 샤우키 알람(Shawqi 'Allam)이 발표한 이드 시작 날짜를 정부가 번복하는 일이 발생했다[5]. 다르 알이프타는 이드가 6월 5일에 시작된다고 발표한 반면, 관영언론은 이드가 6월 4일에 시작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러한 해프닝은 사우디 및 걸프 국가의 경제적 지원의 대가로 친(親) 사우디 행보를 보이는 시시 정권과 순니파 최고(最古) 종교기관으로서 사우디에 종속되지 않는 종교적 권위를 주장하고자 하는 이집트 아즈하르 출신의 종교인 사이의 갈등이 반영된 결과로 여겨진다[6].
2019년 초승달을 둘러싼 갈등은 수단, 예멘, 리비아, 시리아 등 국내 대립과 분열에 시달리는 국가들에서 더욱 첨예하게 드러난다. 군부와 시위대 사이 대립이 격화되던 수단에서는 양측의 갈등이 라마단의 끝을 둘러싼 갈등으로도 나타났다. 수단 군부가 5일부터 이드가 시작된다고 발표하자 시위대 측은 카르툼 대학교 천문학자들의 관측 결과를 따라 이드의 첫날이 4일이라고 선언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UN의 공식 인정을 받은 트리폴리 정부와 동부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정부 사이의 내전이 진행 중인 리비아에서는 2019년 이드가 5일에 시작된다고 발표한 트리폴리의 종교 지도자들이 갑자기 이드의 첫날을 64일로 변경했다. 시리아 대부분에서는 내전의 승기를 잡은 아사드 정권이 발표한 대로 5일을 이드의 첫 날로 기념한 반면, 이들립, 하마 북부, 알레포 서부 등 순니파 지역 일부에서는 4일을 이드의 첫 날로 삼았다[7].
순니파와 쉬아파 사이의 분열 역시 작동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의 쉬아파의 이드는 6월 5일에 시작되었지만 순니파의 이드는 4일에 시작되었다. 특히 예멘에서는 현재 수도 사나를 장악한 쉬아 자이드파 반군인 후티 반군은 4일부터 이드가 시작된다고 발표한 반면, 후티 반군과 대립하는 중앙정부 지지세력은 사우디가 발표한 대로 5일부터 이드를 기념하기로 하는 바람에 2019년에 예멘인들은 역사상 최초로 서로 다른 날 이드를 기념하게 되었다. 한술 더 떠 후티 반군이 점령지 내의 모스크를 감시, 사우디가 정한 날짜인 화요일에 이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8].
초승달을 둘러싼 갈등은 올해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슬람권 국가들은 이슬람력 통합을 위해 1966년부터 논의해 왔지만 아직까지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방안에 도달하는 데에는 실패했다[9]. 무슬림 다수 국가의 종교 지도자들은 전통적인 육안 관측 방식만을 고수할 것인지 또는 현대적 관측 도구나 천문학적 계산을 통한 관측 역시 인정할 것인지, 어떤 지역에서 초승달이 관측되어야 새로운 달의 시작으로 인정할 것인지 등의 사안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취하며, 이로 인해 라마단, 이드 알피트르, 이드 알 아드하 등 이슬람력의 여러 명절이 시작되고 끝나는 날짜를 결정하는 문제는 매년 무슬림 사이 논쟁을 일으키는 사안이었다[10]. 심지어 한 국가 내 같은 종파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레이다르 피서르(Reidar Visser)가 지적하듯이, 이란계 종교 지도자와 이라크계 종교 지도자 사이의 경쟁은 이라크 쉬아파 사이에서도 이드가 시작되는 날짜가 달라지는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한 예로 2008년 이라크 순니파 대다수는 9월 30일에 이드 알피트르를 시작한 반면, 이라크 쉬아파는 호주와 남아프리카에 새로운 초승달이 떴으므로 10월 1일부터 이드가 시작된다고 선언한 아야톨라 무함마드 사이드 알하킴(Muhammad Sa'id al-Hakim)을 따르는 사람들과 10월 2일부터 이드가 시작된다고 발표한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Ali al-Sistani)를 따르는 사람들로 갈라졌다[11].
흔히들 라마단, 이드와 성지순례와 같은 이슬람의 주요 종교 의례와 기념일은 다양한 지역의 무슬림들을 결속하고 하나의 "무슬림 공동체('ummah)"에 대한 소속감을 재확인하는 기능을 지닌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슬림 공동체"는 동질적인 하나가 아니다. 2019년 이드 알피트르를 둘러싼 논쟁은 신앙을 공유하고 같은 초승달을 바라보며 메카를 향하는 종교 공동체 또한 다양한 정체성과 때로는 서로 갈등하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지닌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복잡한 집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참고문헌
[1] Mustafa Abu Sneineh, "Eid al-Fitr 2019: Five ways politics and the moon divided the Middle East," Middle East Eye, 2019년 6월 7, https://www.middleeasteye.net/news/political-alliances-muslims-eid-al-fitr?fbclid=IwAR31HLO7zsgfJTPGIkkUVhzpAwjaxCQvxd0P-o6DVYwNGYUajtW2_YlH_-g.
[2] 위의 글.
[3] Zeina Karam, "Moon sightings, politics play a part in Muslim holiday," AP, 2019년 6월 5일. https://apnews.com/article/85106d29271a409882de5dfef3d1793c
[4] 위의 글.
[5] Al-Jazeera, 2019년 6월 4일, ارتباك وحيرة وتراجع.. ماذا فعل هلال العيد ببعض الدول العربية؟, https://www.aljazeera.net/politics/2019/6/4/%D9%87%D9%84%D8%A7%D9%84-%D8%A7%D9%84%D8%B9%D9%8A%D8%AF-%D8%A7%D8%B1%D8%AA%D8%A8%D8%A7%D9%83-%D8%AA%D8%B1%D8%A7%D8%AC%D8%B9-%D8%A7%D9%84%D8%AF%D9%88%D9%84-%D8%A7%D9%84%D8%B9%D8%B1%D8%A8%D9%8A%D8%A9
[6] 위의 글.
[7] 위의 글.
[8] Al-Arabiya, "Houthis kill imam, 9 worshippers for following Saudi Eid al-Fitr moon sighting," 2019년 6월 6일, https://english.alarabiya.net/en/News/middle-east/2019/06/06/Houthis-kill-imam-9-worshippers-for-following-Saudi-Eid-al-Fitr-moon-sighting.html
[9] Tulay Cetingulec, "Is it Eid or not? Muslims take step toward resolving calendar dispute," Al-Monitor, 2016년 6월 6일, https://www.al-monitor.com/pulse/originals/2016/06/turkey-muslims-resolved-calendar-dispute-ramadan.html
[10] BBC, 2019년 6월 4일 هل تلعب السياسة دورا في تحديد يوم العيد في الدول العربية؟,
[11]. Reidar Visser, "The Sectarian Master Narrative in Iraqi Historiography: New Challenges Since 2003," in Writing the Modern History of Iraq: Historiographical and Political Challenges, ed. Jordi Tejel, Peter Sluglett, Riccardo Bocco and Hamit Bozarslan (Singapore: World Scientific Publishing Company, 2012),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