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존경은 받아도 지배하지는 못한다

이라크 쉬아파 종교인들의 영향력과 한계

by 황의현

이슬람에는 성직자가 없을까?

이슬람에는 다른 종교의 '성직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슬람에도 가톨릭의 신부, 개신교의 목사, 불교의 스님과 비슷한 위치에 있고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다른 종교의 성직자처럼 종교 의례를 주관하고 다른 신도들에게 종교적 인도와 지침을 제공하고 상담하는 등 종교와 관련된 활동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이슬람에도 있다. 신부나 목사나 스님이 되려면 정해진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이슬람의 종교인도 종교인으로서 활동할 자격을 갖추고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공식적인 교육과 훈련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무슬림은 모두 신 앞에서 동등하지만, 종교적 권위는 동등하지 않다. 더 많은 지식을 갖추고 더 신실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신앙생활을 이끌고 가르칠 수 있다. 그런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성직자'라고 부른다면, 이슬람에도 '성직자'가 있다.


그러나 이슬람의 '성직자'가 다른 종교의 성직자와 다른 점은, 교단이라고 할 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즉 종교인을 양성하는 교육 과정은 제도화되어 있지만, 과정을 마치고 자격을 갖춘 종교인 개인을 규율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분명한 위계질서에 따라 수직적으로 구조화된 성직(聖職) 제도는 없다. 이슬람에는 가톨릭의 교황과 같이 교계의 모든 평신도와 성직자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최고 성직자도, 개신교 교단이나 불교 종단처럼 소속한 종교인을 규율하는 집합적 기구도 없다. 합의되고 정해진 과정을 마쳐 자격이 인정되는 종교인 개인은 독자적인 권위를 가진 독립된 존재로서 다른 어떤 제도, 단체, 위계에 종속되지 않는다. 한 종교인이 주장한 해석이나 판단을 공식적으로 이단으로 규정하고 무효화하고 거부하고 파문하는 제도, 절차, 기구는 이슬람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종교계 내부에서 전반적으로 합의되는 규범과 합의, 전통, 사회적 관습과 인식 등 종교인의 판단과 해석을 제약하는 요소는 많다. 다른 종교인, 또는 사회적 합의를 자극하고 적으로 돌리는 해석이나 판단을 내놓는다면 큰 반발과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단으로 규정해 파문하는 공식적이고 제도화된 절차가 없더라도 거대한 비판 여론 그 자체가 종교인을 규율한다. 때로는 정부가 여론의 압박을 받아 혼란을 야기했다는 이유로 기존 규범과 전통을 위협하는 해석을 직접 처벌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지간히 용기 있고 확신에 가득 차지 않은 이상 지나치게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해석을 내놓기는 어려운 것이다.


수직적이면서 수평적인 쉬아 이슬람 종교계

모든 종교인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중앙집권적인 제도가 기구가 없다는 것은 종파를 막론하고 이슬람의 일반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순니파와 쉬아파의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종교계의 위계 구조다. 순니파 종교계는 각기 독립적인 권위를 가진 종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교인들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그러나 쉬아파 종교계는 종교인끼리도 권위의 위계가 존재한다.


나자프의 마르자들 - 오른쪽에서부터 아불 카심 알쿠이(Abu al-Qasim al-Khui, 1992년 사망), 무흐신 알하킴(Muhsin al-Hakim, 1970년 사망), 마흐무드 알샤흐루디(Mahmoud al-Shahrudi, 1974년 사망), 알리 알타브리지(Ali al-Tabrizi, 1973년 사망)


법학과 종교학 교육 과정을 마쳤더라도 모두 같은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종교인은 훗자툴 이슬람(Hujjat al-Islam, 페르시아어로는 호자툴 이슬람Hojatul Islam)이라는 칭호로 불린다. 이 가운데에서 특히 높은 학식과 명망을 가진 학자만이 아야톨라(Ayatollah)로서 법적 문제에 대해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할 권위를 인정받는다. 아야톨라 가운데에서도 다른 아야톨라들도 인정할 정도로 학식과 명성이 높고 많은 사람들이 가르침을 따르고 영향력도 크면 대(大)아야톨라(Ayatollah al-'Uzma)' 또는 '추종의 원천'이라는 의미의 '마르자 알타클리드(Marja' al-taqlid, 줄여서 마르자Marja', 페르시아어로는 마르자에 타클리드Marja-e taqlid)'라고 불린다.


신학교의 졸업생이 법학자로서 자격을 갖추었다는 의미로 터번을 씌워주는 나자프의 마르자 바쉬르 알나자피


훗자툴 이슬람에서 아야톨라로, 아야톨라에서 마르자로 '승급'하는 어떤 정해진 기준이나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종교인이 아야톨라로 또는 마르자로 인정받는 것은 전적으로 여론에 달려 있다. 즉 사람들로부터 아야톨라로서 자격이 있다거나 마르자로서 권위를 갖추었다고 인정받을 때 아야톨라나 마르자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평신도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지지자가 많다는 것은 종교인의 경제력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지지자가 많아야 기부금과 헌금을 충분히 모아 자선 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학식이 뛰어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 영향력 역시 중요한 자격으로, 이는 곧 얼마나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얼마나 많은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지와 관련되어 있다.


마르자를 가톨릭의 교황과 분명히 다르다. 마르자는 하위 종교인들과 평신도에게 절대적인 영향력과 지배력을 가지지 못한다. 여러 명의 마르자가 존재할 수도 있으며, 모두 독자적인 권위를 지닌다. 마르자들의 해석과 견해가 서로 다르다고 해서 한 마르자는 틀렸고 다른 마르자가 맞다고 말할 수 없다. 순니파와 다르게 종교인 사이 권위의 위계가 존재하는 쉬아파도 종교인들이 서로 평등하며 권위가 분산되어 있다는 점은 순니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학식이 깊어도 마르자는 결국 인간일 뿐

쉬아파에서 절대적인 권위는 오직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적법한 후계자인 이맘들에게만 있다. 이맘들만이 가장 정확하고 올바른 해석과 오류가 없는 판단을 내리고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따를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열두 번째 이맘이 사람들을 떠나 어느 곳으로 몸을 숨긴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이맘과 직접 소통할 수 없다. 종교인이, 마르자가 아무리 학식이 깊고 뛰어나더라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며, 이맘과 달리 신으로부터 쿠란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능력을 부여받지 못했다. 따라서 마르자가 내리는 판단은 틀릴 수도 있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고 바뀔 수도 있다.


마르자와 평신도의 관계도 일방적이지 않다. 마르자가 여러 명 존재할 수 있으며, 모든 마르자가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는다. 따라서 평신도가 자신이 원하는 해석을 하는 마르자를 '선택'할 때도 있다. 가령 어떤 마르자가 어떤 종류든 음악은 모두 이슬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면, 설령 다른 문제에서는 그를 따르더라도 음악과 관련된 문제에서만은 음악을 허용하는 다른 마르자를 따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평신도와 마르자를 대표해 평신도를 가르치는 교사가 서로 협상하고 타협하기도 한다. 교사가 자신이 따르는 마르자의 견해를 가르칠 때, 평신도가 자기는 그 견해를 따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항변하면 평신도에게 적합한 다른 마르자의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협상의 한 예다[1].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평신도들의 지지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마르자는 평신도들에게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기보다 평신도의 지지에 의존하는 편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2]. 따라서 평신도들의 지지를 계속 유지하려면 일반적인 여론과 생각과 전면으로 충돌하는 해석이나 견해를 내놓기보다는 어느 정도 여론을 따를 필요가 있다[3]. 마르자와 평신도의 관계에 관해 삿자드 리즈비(Sajjad Rizvi)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마르자는 추종자와 견해를 구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마르자의 견해가 자기 생각과 일치하면 마르자를 따르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하고, 위협이 되면 마르자에 저항한다."[4]


침묵을 깬 나자프의 마르자들

쉬아파 종교인을 양성하는 신학교는 여러 곳이 있지만, 전통적으로 종교 교육의 중심지로 인정받아온 곳은 바로 이라크의 나자프(Najaf)다. 나자프는 쉬아파의 1대 이맘,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립(Ali ibn Abi Talib)이 묻힌 성묘(聖廟)가 있는 성지며, 11세기 저명한 법학자 셰이크 알투시(Sheikh al-Tusi)가 신학교(hawzah)를 세운 뒤에는 종교학 연구와 교육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나자프의 종교인들은 이라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쉬아파로부터 널리 마르자로서 인정받아 왔으며, 현재는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Ayatollah Ali al-Sistan)가 가장 많은 추종자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스타니 외에도 바쉬르 알나자피(Bashir al-Najafi)와 무함마드 알파야드(Muhammad al-Fayyadh) 등이 나자프의 저명한 마르자들이다.


102956661_154075256180432_1701179473368351551_n.jpg
76494700_1640091087.png
제목 없음.png
나자프의 마르자들 - 왼쪽에서부터 무함마드 알파야드, 바쉬르 알나자피, 알리 알시스타니


사담 후세인의 바아스 정권 시기, 나자프의 마르자들은 정치와는 거리를 두었다. 바아스 정권과 쉬아파 사이의 대립이 고조될 때도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반체제 쉬아파 정치운동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저명한 종교인 가문인 알사드르(Al-Sadr) 가문의 무함마드 바키르 알사드르(Muhammad Baqir al-Sadr)나 무함마드 사디크 알사드르(Muhammad Sadiq al-Sadr)처럼 종교인 가운데에도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에 참여하며 바아스 정권에 맞서다 목숨을 잃기까지 한 인물들도 있었지만, 바아스 정권 시기 이라크에서 가장 저명한 마르자였던 아불 카심 알쿠이(Abu al-Qasim al-Khui)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지켰다. 쿠이가 1992년 죽은 뒤 뒤를 이어 이라크 쉬아파의 종교적 지도자로 떠오른 시스타니 역시 정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을 지켰다.


시스타니는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바아스 정권이 붕괴한 뒤에야 정치적 문제에 관한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시스타니는 헌법이나 법률로 규정된 공식적 권위를 지니지 않았지만, 마르자로서 전통적인 권위, 쉬아파 평신도 사이에서 가진 위신과 명망, 그리고 대리인과 추종자들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이용해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동원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탈헌법적 행위자(extraconstitutional actor)”[5]로 등장했다.


시스타니는 민주주의와 이라크 국민의 주권의 지지자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 연합군임시행정처(Coalition Provisional Authority, CPA)에 조속히 총선거를 치러 신헌법을 제정하고 권력을 이양할 것을 요구했으며, CPA가 미국이 구성한 임시정부에 정권을 이양한 뒤에 헌법을 제정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시스타니의 입장은 대리인들을 통해 전파되어 남부 쉬아파 지역에서 대대적인 항의 시위로 이어졌다[6]. 결국 CPA는 결국 CPA는 제헌의회 선거를 먼저 치르고 권력을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2005년 1월 제헌의회 선거를 앞두고서 시스타니는 모든 이라크인들에게 투표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고, 시스타니의 대리인인 아흐마드 알사피(Ahmad al-Safi)는 "투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라고 강하게 말하기도 했다[7]. 무함마드 알파야드, 무함마드 사이드 알하킴(Muhammad Said al-Hakim) 등 다른 마르자들도 투표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8]. 시스타니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명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지만, 시스타니와 가까운 종교인들은 시아파 정당연합인 이라크연합동맹(United Iraqi Alliance, UIA)을 지원했고 나자피는 공개적으로 UIA 지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9]. 종교계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UIA는 쉬아파 유권자들의 표를 얻어 제헌의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시스타니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쉬아파 무장조직 압바스 여단의 대원들


시스타니와 쉬아파 종교인들의 대중적 영향력은 2014년 6월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북부의 모술을 점령하고 바그다드까지 위협했을 때 다시 나타났다. 시스타니는 IS에 맞서 이라크와 성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모든 이라크인의 의무라고 선언했고, 그의 대리인들은 금요 예배에서 사람들에게 시스타니의 지시를 따를 것을 촉구했다. 파야드와 나자피도 이라크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을 호소했다[10]. 수많은 쉬아파 청년들이 종교계의 부름에 응답해 무장단체와 민병대에 가담했고, 이들이 주축이 되어 구성된 국민동원군(Popular Mobilization Force, PMF)은 IS 격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2017년 7월 IS로부터 모술을 탈환한 뒤, 하이다르 아바디(Haidar Abadi) 총리는 시스타니의 공로에 공식적으로 감사를 표했다[11].


국민의 편에 서서 정치권에 맞서다

2010년대에 들어 이라크에서는 부패한 정치인들이 심각한 경제난과 열악한 공공 서비스와 같이 당면한 문제는 외면하고 자신들의 권력과 이권만 추구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라크의 마르자들은 정치권을 비판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움직임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국민의 대변자로서 입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2011년 순니파 지역에서 말리키의 권위주의적이고 종파 차별적인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시스타니는 시위대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언급하며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말리키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12].


시스타니는 2014년에 더욱 분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4년 4월 총선에서 누리 말리키(Nouri Maliki) 총리가 이끄는 다와(Dawa) 당이 주축이 되어 구성한 법치국가연합(State of Law Coalition) 최다 의석을 얻었다. 그러나 내각이 구성되지 못한 가운데 2014년 6월 IS가 모술을 함락하자 말리키에 대한 비판과 사퇴 여론이 다와당 내에서도 거세졌으나, 말리키가 사퇴를 거부하자 반(反)말리키파는 시스타니에 의견을 구했고 시스타니는 서한에서 “새로운 전망”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우회적으로 말리키가 물러나야 한다는 뜻을 드러냈다[13]. 나자피는 시스타니보다 더 분명하게 말리키에 반대했다. 나자피는 2014년 총선에 앞서 말리키와 법치국가연합에 투표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선거 직전에는 말리키의 실책과 잘못을 열거하는 영상을 공개했으며, 선거 이후에는 말리키의 총리직 연임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14]. 당내 반발과 종교계의 강한 저항에 부딪힌 말리키는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2014년 말리키가 총리직에서 퇴임한 뒤 시스타니는 설교문을 통해 정치권 비판, 부패 척결, 사회 정의 달성 등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해 국민적 여론의 대변인으로서 입지를 구축하고 영향력을 드러내고자 했다. 시스타니는 이라크의 사회경제적 문제는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는 정치인들의 책임이며, 정치권에는 부패가 만연한데도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테러리즘에 맞선 전투보다 부패와의 전쟁이 더욱 시급하다고 강조했다[15]. 2018년 선거를 앞두고서는 국민이 선거 공약을 지키지 않은 채 자신들의 이권만 챙기는 정치인들에게 실망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쉬아파의 성지 카르발라(Karbala)에서는 시스타니의 대리인이 금요일 예배에서 시스타니의 메시지를 낭독하고 예언자 무함마드와 이맘들이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벌인 투쟁을 강조했다[16]. 선거가 치러진 이후 시스타니가 당시 총리였던 아바디를 비판하고 기성 정치인이 또 총리로 선출된다면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상황에서 아바디가 연임에 실패하고 아델 압둘 마흐디(Adel Abdul Mahdi)가 총리로 선출되자 그 배경에 시스타니의 암묵적인 지지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17].


2019년 11월, 바그다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들


2019년 10월,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대규모 시위로 폭발하자, 시스타니의 대리인들은 설교에서 정부는 국민에 대해 의무가 있으며 시위는 이라크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라는 점을 지적하고 언론기관과 시위대에 대한 보안군과 친이란 무장단체의 공격을 규탄했다[18]. 11월 시스타니는 공식 웹페이지를 통해 보안군에 폭력 사용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부패 척결, 선거법 개정 등 시위대의 요구를 지지했다[19]. 시스타니뿐만 아니라 저명한 종교인 가문인 하킴 가문 등 나자프의 다른 종교인들은 시위 지도부가 종교계와 운동의 협력을 위해 조직한 모임에 참여해 시위대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강조하며 지지를 밝혔고, 아야톨라 무함마드 야으쿠비(Muhamamd al-Ya‘qubi)는 시위가 이라크의 자유를 위한 봉기며 시위를 주도한 청년들 덕분에 분열되었던 이라크가 다시 통합될 수 있었다고 찬사를 보냈다[20]. 11월 29일 시스타니의 대리인 아흐마드 알사피가 내각 재신임을 거론한 것은 정치권에 날린 결정타였다. 다음날 압둘 마흐디 총리는 사임했다[21].


시위에 참여한 많은 청년이 시스타니와 종교계의 반응을 환영했다. 시위 전에는 설교를 듣지 않거나 예배를 하지 않던 청년들과 세속주의자들도 매주 금요일마다 시스타니의 설교에 주목하고 시스타니의 권위를 지지했다. 시스타니와 종교인들은 시위대의 편에 서고 국민적 분노의 대상이 된 정부와 정치권과 거리를 둠으로써 부패한 정치권과 이란에 종속된 이슬람주의 정당에 맞서 이라크의 주권을 지키고 국민을 결속하는 상징이자 국민 여론의 대변자로서 대중적 지지와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22].


누구도 듣지 않을 때 마르자의 말은 무력하다

마르자가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대중의 호응과 지지를 얻는 것이었다. 마르자가 권위와 영향력을 가지려면 대중이 마르자의 말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2006년 2월 순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라크알카에다(AQI)가 쉬아파의 성지인 사마라의 알아스카리(Al-Aksari) 모스크에 테러 공격을 가해 파괴하고, 분노한 쉬아파 무장단체와 민병대가 순니파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 폭력에 나섰을 때, 폭력을 중단하라는 시스타니와 마르자들의 호소는 아무런 효과도 가져오지 못했다[23]. 순니파에 대한 두려움, 적개심, 불신이 극도로 고조되었던 2006년, 쉬아파들은 위기감과 복수심을 종교적 권위보다 우선시해 마르자들의 지시를 거부했고, 대중의 지지 외에는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이 없던 마르자들은 행동을 강제하거나 폭력을 자행하는 무장단체와 민병대를 물리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24].


2006년 2월, 이라크알카에다가 파괴한 쉬아파의 성지 알아스카리 모스크


IS에 맞서 쉬아파들을 동원한 것은 시스타니와 마르자들의 대중적 영향력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사례다. 시스타니는 정규군과 정부 산하의 보안군에 자원할 것을 촉구했고 시스타니의 대리인들도 이 점을 분명히 밝혔지만[25], 시스타니의 호소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이들은 정부의 통제 밖에 있는 쉬아파 무장단체였다. 말리키와 바드르 군단, 카타이브 헤즈볼라(Kataib Hezbollah), 아사이브 아흘 알하크(Asaib Ahl al-Haqq, AAH) 등 PMF 산하의 쉬아파 무장단체 지도자들은 시스타니의 지시를 PMF에 대한 예산 지원과 자원자 모집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았다. PMF 산하의 무장단체에 가담한 자원자들은 군대와 보안군에 자원해 입대한 사람들보다 약 10배 많았다[26]. 그러나 시스타니는 이러한 상황을 막을 강제력을 가지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Ayatollah Ali Khamenei)의 종교적 권위를 지지하는 쉬아파 무장단체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PMF는 IS가 격퇴된 이후에도 해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라크 정부의 통제에 저항할 정도로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부상했다.


시스타니의 정치 개혁 요구도 가시적인 변화나 정치인들의 구체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조사하고 처벌하라는 여러 차례의 요구에도 정부는 유의미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27]. 2019년 이후 여러 번 조기 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지만 2021년에야 선거가 치러지는 등 발언이 정치권에서 거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자 시스타니는 2020년 이후부터는 다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28].


시스타니는 친이란 쉬아파 무장단체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영행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2017년 PMF 산하 무장단체가 무장을 해제하고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29]고 말했지만 여전히 PMF는 무장단체로서 유지되고 있으며, 2024년 11월 정부가 무력을 독점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밝혔을 때도 친이란 쉬아파 무장단체 중 하나인 카타이브 사이드 알슈하다(Kataib Sayyid al-Shuhada)는 시스타니가 자신들의 무장 해제를 의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앞으로도 무기를 보유한 채 국가 방어에 헌신할 것이라고 밝혔다[30].


시스타니의 대중 동원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투표율이다. 2003년 이후 시스타니는 일관되게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유권자들에게 투표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2005년 1월 제헌의회 선거를 앞두고 시스타니의 대리인들은 선거가 신실한 무슬림의 의무라고 선언했다. 2010년대에 들어 기성 정치권과 정치 참여에 대한 환멸이 확산되자 시스타니는 더 이상 투표가 의무라고는 하지 않았으며 2021년 총선을 앞두고서는 선거가 한계점도 있다고 인정했지만, 여전히 선거가 미래를 변화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하며 투표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31]. 그러나 시스타니의 호소에도 쉬아파 유권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2005년 1월 선거에서 순니파가 대규모 불참하며 58%에 그쳤던 투표율은 2005년 12월 총선에서는 79%로 크게 오른 뒤 2010년 총선에서는 61%로 떨어졌으며, 2014년 총선 60%, 2018년 총선 44.5%, 2021년 총선 41%로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32]. 감소하는 투표율에서 드러나듯이, 국민 대다수가 정치권에 환멸을 느끼고 실망한 상황에서 시스타니의 영향력은 국민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했다.


쉬아파의 마르자들은 평신도들로부터 존경을 받지만, 평신도들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평신도들은 마르자의 뜻이 자신들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으면 마르자의 권위와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있다. 마르자들이 아무리 학식이 깊고 명망이 높고 신앙심이 탁월하더라도, 평신도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참고자료

[1] Edith Szanto, 2018. "Challenging transnational Shiʿi authority in Baʿth Syria," British Journal of Middle Eastern Studies 45(1), 104-105쪽.

[2] Abbas Amanat, 1988. “In Between the Madrasa and the Marketplace: The Designation of Clerical Leadership in Modern Shi‘ism,” Authority and Political Culture in Shi‘ism, edited by Said Amir Arjomand,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24쪽.

[3] Laurence Louër, 2011. Transnational Shia Politics: Religious and Political Networks in the Gulf, London, Hurst & Company, 288쪽.

[4] Sajjad Rizvi, 2018. “The Making of a Marjaʿ: Sīstānī and Shiʿi Religious Authority in the Contemporary Age,” Sociology of Islam 6, 186쪽.

[5] Harith Hasan Al-Qarawee, 2019. “The ‘Formal’ Marja.: Shi‘i Clerical Authority and the State in Post-2003 Iraq,” British Journal of Middle Eastern Studies 46(3), 489쪽.

[6] Babak Rahimi, 2007. Ayatollah Sistani and the Democratization of Post-Ba'athist Iraq, Washington D.C., 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9쪽.

[7] Khalid. F. Osman, 2015. Sectarianism in Iraq: The Making of State and Nation since 1920, London and New York: Roultedge, 142쪽.

[8] Ali A. Allawi, 2007. The Occupation of Iraq: Winning the War, Losing the Peace,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342쪽.

[9] David Siddhartha Patel, 2022. Order Out of Chaos: Islam, Information, and the Rise and Fall of Social Orders in Iraq, Ithaca and 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134쪽; Saleem Suzah, 2024. “Sistanism: An Attempt to Combine Shi’ism with Democracy in Post-2003 Iraq,” in Democracy - Crises and Changes Across the Globe, edited by Helder Ferreira do Vale, London, IntechOpen, 189쪽; Caroleen Marji Sayej, 2018. Patriotic Ayatollah: Nationalism in Post-Saddam Iraq, Ithaca and 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123쪽.

[10] Ali Akbar and Benjamin Isakhan, 2023. “The Islamic State, Shia Religious Clerics and the Mobilisation of Shia Militias in Iraq and Syria,” Contemporary Politics 29(5), 542쪽,

[11] Al-Qarawee, 481쪽.

[12] Sayej, 80-81쪽.

[13] 위의 글, 82쪽.

[14] 위의 글, 124-125쪽.

[15] Sajad Jiyad, 2023. “Guide and Critic: Sistani from 2014 to 2023,” in Shia Power Comes of Age: The Transformation of Islamist Politics in Iraq, 2003–2023, edited by Thanassis Cambanis and Sajad Jiyad, Washington D.C., The Century Foundation, 85-89쪽.

[16] Kjetil Selvik, 2019. Religious Authority and the 2018 Parliamentary Elections in Iraq, Oslo, Norwegian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8쪽.

[17] Jiyad, 89-91쪽.

[18] Marsin Alshamary, 2022. The Protester Paradox: Why Do Anti-Islamist Activists Look Toward Clerical Leadership?, Washington D.C., The Brookings Institution, 11-12쪽.

[19] Paterl, 149쪽.

[20] Geneive Abdo, 2021. The Long Game in Iraq: Shia Clerics, Activists Find Common Cause to Confron the State, Washingtond D.C., Arab Gulf States Institute in Washington, 7-8쪽.

[21] AlShamary, 12쪽.

[22] 위의 글, 14-15쪽.

[23] Sayej, 6쪽; Patel, 141-142쪽.

[24] Juan Cole, 2007. “The Decline of Grand Ayatollah Sistani’s Influence in 2006-2007,” Religion, Krieg und Frieden 82(2/3), 80-81쪽.

[25] Patel, 147-148쪽.

[26] Renad Mansour and Faleh A. Jabar, 2017. The Popular Mobilization Forces and Iraq’s Future, Washington D.C.,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11쪽.

[27] Al-Aloosy, Massaab, 2022. “Rethinking Ayatollah al-Sistani’s Power in Iraq."

[28] Jiyad, 96쪽.

[29] Kurdistan24, 2017. “Hashd al-Shaabi should be part of Iraqi security bodies: Ayatollah Sistani."

[30] 964media, 2024. “Politicians support Al-Sistani’s call for state control of arms, militias offer different own interpretation.”

[31] Jiyad, 90; 98쪽.

[32] Hussein, Hiwa Abdullah, 2023. “The Iraqi Political System’s Legitimacy Problem: Low Expected Turnout for Provincial Election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왜 쉬아파 IS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