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드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꼬리표, 알라위파를 위협하다
비무슬림을 아우르려는 HTS, 그러나 알라위파는...
2025년 3월, 시리아 북서부의 라타키야(Latakia) 해안 지역에서 내전 동안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수준의 참혹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아사드 정권의 잔당들이 시리아 과도정부의 경찰과 군대를 공격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알라위파 마을이 공격당해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 민간인 사망자 규모는 정확히 추산되지 않았지만, 600명이 넘는다는 관측에서부터 약 1,700명이 살해당했다는 주장까지 있다.
시리아의 소수 종교 집단에 대해 과도정부가 취하는 입장은 시리아의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정권 이양 가능성을 평가할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과도정부의 주축인 시리아해방기구(Haiat Tahrir al-Sham, HTS)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로 시작되어 한때 알카에다에 충성을 맹세했던 조직으로, 따라서 HTS와 과도정부가 언제든 종교적으로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고 시리아의 소수 종교 집단을 탄압할 수도 있다는 우려는 항상 존재했다. HTS가 자브하트 알누스라(Jabhat al-Nusra)라는 이름으로 알카에다 산하 조직이었던 때는 드루즈파에게 개종을 강요하고 살해하는 등 비무슬림을 탄압했기 때문이다[1].
HTS의 지도자였고 지금은 시리아 과도정부의 대통령이 된 아흐마드 알샤르아(Ahmad al-Sharaa)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소수 종교 집단과 국제사회의 불안을 종식시키고자 했다. 실제로 HTS는 소수 종교 집단을 인정하고 시리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HTS가 지배하던 시리아 북서부의 이들립(Idlib) 지역에서는 2018년 이후 기독교도가 부활절과 성탄절을 기념할 수 있었으며, 난민으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기독교도와 드루즈파에게 원래 살던 집을 돌려주기도 했다. 아부 무함마드 알줄라니(Abu Muhammad al-Julani)라는 이름으로 지하드 전사이자 반군 지도자로 활동하던 때 알샤르아는 드루즈파 주민들의 두려움을 경감하고자 드루즈파 지역을 방문한 적도 있다. HTS 지도부는 2024년 12월 알레포를 점령한 뒤에는 현지 기독교도 대표들과 만나 공존을 약속했으며, 알샤르아 역시 '다양성은 우리의 힘이다'고 강조하며 소수 집단을 달래려고 애쓰고 있다[2].
그러나 알라위파에 대해서는 다소 의심스럽고 불명확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알샤르아는 기독교도나 드루즈파 지도자들과는 만난 반면, 알라위파 지도자들과는 만나지 않았다[3]. HTS가 해안의 라타키야와 타르투스, 중부 내륙의 하마, 홈스의 알라위파 마을에 점령한 뒤에 민간인에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었고 HTS 산하 보안군은 전반적으로 알라위파 주민들과 충돌 없이 지내며 지역 주민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4], 여전히 알라위파 내에서는 아사드 정권의 붕괴가 대대적 탄압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존재한다. HTS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알라위파를 탄압하지는 않아도 아사드 정권의 밑에서 일했다는 혐의로 보복 폭력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불안을 더욱 자극하는 원인이다. 한편 아사드 정권 지지자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라위파 성소가 습격당하고 알라위파가 살해당하는 영상을 유포하며 불안을 더욱 조장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5]. 이러한 영상들은 과거에 IS가 살해한 사람들을 최근에 HTS가 살해한 알라위파로 왜곡하는 등 대개 가짜뉴스지만, 두려움을 자극한다는 것만큼은 진짜다. 2024년 12월에는 이런 영상들에 자극받은 알라위파들이 종파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6]. 2025년 3월 알라위파 지역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와 학살은 아사드 이후 시리아에 대한 알라위파의 불신과 두려움이 결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왜 여러 소수 종교 집단 가운데 알라위파가 특히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일까? 시리아 내전 당시 이슬람 극단주의자 성향의 반군들은 알라위파를 이단으로 간주하며 증오를 숨기지 않았고 알라위파에 대해 폭력을 저질렀으며, HTS 역시 자브하트 알누스라로 활동하던 시기에 알라위파를 적대시하고 살해했다. 2013년 8월 자브하트 알누스라를 포함한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연합군이 라타키야의 알라위파 마을을 공격해 수백 명을 살해했고, 정부군이 화학탄을 사용하자 알줄라니는 화학탄 1발마다 알라위파 마을 한 곳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7].
따라서 HTS가 이슬람 극단주의와 단절했다고 선언했다 하더라도 한때 알카에다 산하에 있었던 조직에 대해 불신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왜 시리아의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은 알라위파를 적대했던 것일까?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알라위파를 같은 무슬림이 아니라 제거해야 하는 이단자로 본다는 것이 중요한 원인이지만, 다른 원인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바로 알라위파에 붙어 있는 아사드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꼬리표다.
아사드 정권, 다수에 둘러싸인 소수의 두려움을 이용하다
알라위파는 10세기 쉬아파의 한 분파로 등장한 이후 이단으로 내몰려 자주 탄압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알라위파의 창시자로 알려진 무함마드 이븐 누사이르(Muhammad ibn Nusayr)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립(Ali ibn Abi Talib)이 신의 본질이며, 무함마드는 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이름이라고 주장했다[8]. 순니파 법학자들은 알라위파의 신앙이 이슬람이 아닌 이단이라고 규정했고, 알라위파를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Alawi)'이 아니라 '누사이르를 따르는 무리'라는 의미로 누사이리(Nusayri)파라고 불렸다. 14세기 순니파 법학자 이븐 타이미야(Ibn Taymiyyah)는 "누사이리파가 유대인과 기독교도와 다신교도들보다 더 이단적이고 십자군보다 더 무슬림에게 위험하다"고 선언했고, 순니파 통치자들에게 알라위파를 탄압하고 살해할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9].
알라위파는 탄압을 피해 지중해 인근의 산악 지역에 숨어 순니파들과는 거리를 유지하며 살았지만, 20세기에 들어 역사의 전면에 나타났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시리아 지역을 위임통치하면서 산악 지역에 알라위파 국가를 세웠다. 시리아 지역을 여러 작은 국가로 쪼개어 독립 투쟁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이었다. 프랑스는 또한 반프랑스 투쟁을 주도하는 순니파를 견제하고자 사회경제적으로 주변부에 있던 알라위파의 군 입대를 적극 장려했고, 알라위파 역시 군 입대를 빈곤에서 벗어나고 주류 사회에 진출하는 방안으로 선택했다. 알라위파 사병과 장교가 많아질수록 군 내에서 알라위파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고, 마침내 1970년 라타키야의 카르다하(Qardaha) 출신의 알라위파인 하피즈 알아사드(Hafiz al-Asad)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시리아의 권력을 잡았다. 2000년 하피즈가 죽고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ad)가 집권하면서 아사드 가문의 지배는 50년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알라위파는 정권의 핵심적인 지지 기반이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뒤 알라위파와 아사드 정권의 연대는 더욱 긴밀해졌다. 아사드 정권은 일관되게 반정부 시위를 순니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주도해 국가 안보와 사회 통합을 위협하는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해 알라위파가 반정부 시위에 가담하는 것을 막고 아사드 정권을 보호자로 여겨 정권의 편에 서게끔 하려는 목적이었다. 실제로 알라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에서 시위는 소규모에 그쳤다. 순니파 장병과 장교들이 잇따라 탈영해 반군에 가담하면서 정권은 알라위파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반정부군 진압에 투입되는 시리아군의 핵심 최정예 부대인 공화국수비대, 제4기갑사단, 특수군은 거의 알라위파로만 구성되었고, 시리아군의 장교 중 알라위파 비율이 80%까지 늘어났다[10]. 반군은 거의 모두가 순니파였지만, 일부 알라위파는 샤비하(Shabiha)로 알려진 친정부 민병대를 구성해 정부군과 함께 반정부군에 맞서 싸우거나 순니파 민간인에 대한 폭력에 가담했다.
알라위파의 충성은 2013~2014년 아사드 정권이 위기에 몰리고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위협받았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 하피즈 알아사드 시기부터 시리아 정부는 알라위파 장교와 가족들을 다마스쿠스 인근 지역에 정착시켰고, 이렇게 이주한 알라위파는 약 50만 명에 달한다[11]. 반군이 다마스쿠스 인근까지 진출했을 때 이들은 정부군의 편에 섰고 결국 정부군이 반군을 격퇴하는 데 기여했다. 정권은 알라위파만이 신뢰할 수 있다고 여겼고 다마스쿠스 인근 지역과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사는 순니파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알라위파를 정착시켰다[12]. 알라위파 민병대는 순니파들을 쫓아낸 뒤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마을을 파괴했다[13].
반정부 운동의 '순니화'하고 극단 이슬람주의 무장단체가 주도권을 잡은 변화는 정권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반정부 세력의 이슬람적 성향이 강해질수록 알라위파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고, IS와 같이 비무슬림에 대한 증오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조직이 등장하자 정권만이 자신들의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렇게 악순환이 만들어졌다. 반정부 운동을 두려워한 알라위파가 정권에 편에 서고, 정권의 편에 선 알라위파에 대해 반정부 세력의 분노가 커지고, 이렇게 커진 분노가 알라위파를 노린 폭력으로 나타나고, 그러면 다시 알라위파가 더욱 반정부 운동과 거리를 두고 정권과 가까워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저항하는 친아사드 알라위파 잔당, 보복하는 순니파 무장단체
2024년 12월 아사드 일가의 고향인 카르다하의 알라위파 지도자들이 반정부 세력에 대한 지지과 협조 의사를 밝히는 등 알라위파 대부분은 아사드 정권 붕괴를 환영했지만[14], 아사드 정부를 지지하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3월 폭력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도 라타키야, 타르투스, 하마, 홈스의 여러 마을에는 여전히 아사드 충성파 잔당들이 HTS와 싸우고 있었고, 알라위파 마을을 근거지로 삼았다.
계속해서 맞서 싸우기를 선택한 아사드 충성파들 중 많은 수가 알라위파 장교들이었다. 알라위파 장교인 가이스 술레이만 달라(Ghiath Suleiman Dalla), 수하일 알하산(Suhayl al-Hasan) 등은 제4기갑사단, '타이거 부대'로 알려진 특수군 등 과거 아사드 정권의 최정예 부대의 장교들이었으며 알라위파를 중심으로 아사드 충성파를 모아 과도정부에 맞서는 '반군'을 조직했다. 바로 이들이 3월에 라타키야 지역에서 과도정부군을 먼저 공격해 대대적인 폭력 사태를 초래했다[15]. 공화국수비대 출신인 미크다드 파티하(Miqdad Fatiha)는 2월 '해안방패부대'를 결성해 과도정부에 맞선 저항을 선언하고 알라위파에게 무기를 버리지 말고 저항을 계속할 것을 호소했다[16].
일부 알라위파가 아사드에 대한 충성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몇몇 순니파 무장단체 역시 여전히 알라위파를 적으로 보고 있다. 알샤르아와 과도정부가 시리아의 통합을 말하고 있지만, HTS와 함께 아사드 정권 타도에 참여한 모든 반정부군과 모든 시리아인이 통합을 지지하고 알라위파에 대한 반감을 털어버린 것도 아니며, 과도정부가 이들을 모두 통제하고 있지도 못하다. 시리아 인권네트워크(Syrian Network for Human Rights)의 파델 압둘가니(Fadel Abdul Ghani)에 따르면 3월에 알라위파 마을을 공격해 민간인을 살해한 범인 대부분은 HTS가 아니라 시리아국민군(Syrian National Army) 산하 무장단체인 술탄 술레이만 샤 여단(Sultan Suleiman Shah Brigade)와 함자 여단(Hamza Brigade) 대원들이다. 이 조직들은 명목상으로는 과도정부 산하 군사조직으로 편입되어 국방부의 통제를 받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정부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평가되며, 이번 사태에서도 학살을 자행하다가 HTS 병력이 오면 다른 마을로 도망쳐 또다시 학살을 저지르는 등 자의적으로 민간인에 대해 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17]. 술레이만 샤 여단과 함자 여단은 이미 시리아 북부에서 민간인에 대해 잔혹 행위를 저질러 2023년 8월 미국 국무부의 제재 대상에 오른 바 있다[18].
HTS는 내전 기간 알라위파 정권에 맞서 시리아 순니파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순니파 국가'라는 목표를 추구해왔으며, 2024년 말이 되어서야 시리아의 다양한 공동체를 아우르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19]. 따라서 알샤르아와 HTS 지도부가 극단주의와 단절을 선언했다고 수년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몸을 담아왔던 일반 대원들과 알라위파에 대한 증오를 품은 사람들 모두가 하루아침에 생각을 바꾸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시리아가 평화를 되찾고 순니파와 소수 종교 집단이 화합하는 미래가 찾아오려면 알샤르아와 과도정부 고위 인사들이 그럴듯한 선언이나 메시지를 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평화와 화합의 가능성은 시리아 현대사에 거쳐 뿌리를 내리고 10년이 넘는 내전 동안 시리아 국민 사이에 깊게 스며든 순니파와 알라위파 사이의 불신, 증오, 적의를 앞으로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달려 있다.
참고자료
[1]. Syria Direct, "Idlib Druze agree to forced conversion, destroyed shrines under Nusra rule," 2015년 3월 17일.
[2]. Jennifer Holleis, "Syria: HTS Islamists pledge to show tolerance for minorities," DW, 2024년 12월 4일.
Rayhan Uddin, "What does Hay'at Tahrir al-Sham believe in?" Middle East Eye, 2024년 12월 4일.
[3]. Reuters, "What's driving killings in Syria and who are the Alawites?" 2025년 3월 11일.
[4]. Gregory Waters, "Security in Alawite regions in post-Assad Syria," Middle East Institute, 2025년 1월 21일.
[5]. Daniel Hilton and Omar al-Aswad, "Disinformation stokes Alawi unease as Assad loyalists pursued in Syria," 2024년 12월 26일.
[6]. Hani Karazi, "Remnants of Assad regime resort to media deception to sow discord," Enab Baladi, 2025년 1월 10일.
[7]. Joseph Daher, 2019. Syria After the Uprisings: The Political Economy of State Resilience, London: Pluto Press, 139-143쪽.
[8]. Yvette Talhamy, 2010. "The Fatwas and the Nusayri/Alawis of Syria," Middle Eastern Studies 46(2), 176쪽.
[9]. 위의 글, 179-180쪽.
[10]. Philippe Droz-Vincent, “The Syrian Military and the 2011 Uprising,” in Armies and Insurgencies in the Arab Spring, edited by Holger Albrecht, Aurel Croissant, and Fred H. Lawson,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176쪽.
[11]. Fabrice Balanche, 2015. “ ‘Go to Damascus, My Son’: Alawi Demographic Shifts Under Ba’ath Party Rule”, The Alawis of Syria: War, Faith and Politics in the Levant, Michael Karr and Craig Larkin(ed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90-91쪽.
[12]. Hussain Ibrahim Qutrib, 2016. “Useful Syria” and Demographic Changes in Syria, Riyadh: King Faisal Center for Research and Islamic Studies, 14쪽.
[13]. Fabrice Balanche, 2021. From the Iranian Corridor to the Shia Crescent: Demography and Geopolitics, Stanford, Hoover Institution, 5쪽.
[14]. Timour Azhari, "Exclusive: In Assad's Alawite hometown, Syrian rebels win statement of support," Reuters, 2024년 12월 10일.
[15]. Radwan Ziadeh, "Timeline of the Recent Sectarian Strife on Syria’s Coast," Arab Center Washington DC, 2025년 3월 19일.
[16]. ImArabic, "Formation of a New Armed Group to Confront Ahmed Al-Sharaa – Details," 2025년 2월 8일.
[17]. William Christou, "‘The streets are empty, no one dares go outside’: Syria’s Alawites terrorised by revenge killings," The Guardian, 2025년 3월 15일.
William Christou, "How did deadly Syria clashes start and who is responsible for civilian killings?" The Guardian, 2025년 3월 10일.
[18]. Mat Nashed, "‘Don’t trust anyone’: Have Syria’s Alawites lost faith in new government?" Al-Jazeera, 2025년 3월 20일.
[19]. Orwa Ajjoub, "Hay’at Tahrir al-Sham: From Jihadism to Syrian Islamism," Italia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Political Studies, 2025년 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