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살에 공직에 들어왔다. 그때 나는 참 어렸고 철이 없었다. 1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스물여섯의 어린 새내기 직장인은 아이를 네 명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는 워킹맘이 되어있었다.
넷째를 낳고 나서 직장에 복귀하니, 발령받은 면에 아는 직원이 별로 없었다. 이제 막 공무원이 된 신규 공직자도 여럿 있었다. 그중에 유독 마음이 가는 사랑스러운 후배가 한 명 있었다. 늘 먼저 다가와 다정하게 인사하고 예의가 발랐으며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뭔가가 있었다.
늘 보면서 정말 '사람 받고 자란 아이구나. 우리 딸도 저렇게 구김 없이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품은 적도 있다.
그 친구를 보면서 나의 신규자 시절이 떠오르며 슬퍼지기도 하고 한없이 부러운 적도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그 직원은, 비가 많이 내려 비상근무 하는 날에는 딸이 차가 있는데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빠가 면사무소까지 딸을 데리러 오기도 했다.
그런 모습은 젊었던 내겐 너무도 부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고향을 떠나 혼자 낯선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난, 면사무소에 출근한 첫날, 뭐가 뭔지 모르겠는 인수인계를 받고, 아무도 없는 자취방에 들어서며 아빠와 통화하며 목이 매여서 금방 통화를 끝내야 했다. 신규자 때 난 외로웠고 세상이 너무 낯설었다.
그때에 비하면 난 이곳에 자리를 잡고 가정을 꾸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아이들은 내 삶을 진창으로 만들어버릴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삶은 안정궤도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불혹을 넘어서고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는 삶은 내게 인내와 견딤을 통과해 지혜로운 마음을 줬다.
후배 직원이 진상 민원을 만나 말도 안 되는 일로 폭언을 들었을 때, 달려가 어깨를 토닥이며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저 사람은 평소에 마음에 불평불만이 너무 많아서 자기를 괴롭히며 사는 사람인데 오늘은 그 화를 너에게 푸는 것뿐이야. 당연히 기분은 안 좋겠지만 너무 오래 자책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마.'라고 위로해 줬다.
옆 직원이 출산휴가를 들어서 혼자 감당해야 할 일들이 너무 몰아쳐서 휴게실에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릴 때도 난 그 직원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조금만 버티면 금방 그 직원의 후임자가 올 거라며 토닥였다.
어느새 나는 이렇게 조직에서 후배들과 마음을 나누고 힘도 줄 수 있는 선배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 내가 뭐 큰 거를 해준 적도 없고 대단한 것을 한 적도 없는데 내 작은 위로와 미소가 후배에게는 큰 힘이 되었나 보다.
오늘, 그 직원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달려와서는
"주사님, 이거 받으세요." 하고는 내 책상 귀퉁이에 편지와 초콜릿을 살포시 올려놓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편지를 읽는 내내 난 그만 행복해지고 말았다.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꾸만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후배에게 받은 편지가 친정 가는 기차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기어코 이 글을 쓰게 하고 말았다.
혜원아, 너의 편지 덕분에 친정 가는 이 길이 너무너무 설레고 행복하다. 시골 내려가면 엄마 아빠에게도 네 편지 보여주면서 막둥이가 이렇게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려야겠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