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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Feb 06. 2019

Mex-mex

(4+23) 일의 경험의 executive summary

1. 사실 난 지난 12월에 멕시코 여행을 온 적이 있다. 쿠바에 가기 전 3일, 다녀와서 반나절을 멕시코 시티 근교에서 보냈고 나름 열심히 많은 것을 보고 귀국했다. 그리고 1월 첫 출근일, 나는 내 계획대로 사표를 제출했고, 16일까지 출근하고 퇴사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크게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나를 둘러싼 상황을 열심히 바꾸었고, 잠재의식 속에 있던 남미 여행을 끄집어냈다. 결국 난 부랴부랴 준비하고 출국 일주일 전에 비행기표를 사고, 황열병 주사를 맞고, 볼리비아 비자를 받았다. 남들은 준비와 계획을 통해 이 정도 기간의 여행을 결정하는데 안타깝게도 내 경우는 그러하지 못했다. 일단 떠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2. 그런데 더 신기했던 것은 남미 여행에 굳이 멕시코라는 행선지가 다시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계획 상 남미 여행은 27일이지만 원래는 이것보다 10일 더 짧게 우유니까지만 가는 일정이었고, 멕시코는 거의 기간의 변경이 없었다. 유카탄 반도 10일, 멕시코 하이랜드 13일.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그래서 한국에 갔다가 한 달 만에 여길 다시 돌아왔다고요?" 혹은 "멕시코가 다시 올 정도로 그렇게 괜찮았어요?"라고 묻곤 했다. 정작 난 그쪽으로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사실 이 스페인어 실력 그대로 다시 올 줄은 나도 몰랐어서 말이죠. 물론 이런 물음에 답변은 "환율도 많이 내리고 해서 다시 와보고 싶더라고요. 저번에 못 본 게 많아서 아쉬워서요."였다.

3. 물론 이 멕시코 3주 여행은 타이밍 좋게 돌에 맞은 덕분이었다. 12월 멕시코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맞았던 돌이 그때는 회사에 다니는 입장이라 반응할 수 없이 귀국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맞은 돌에 기꺼이 반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때 맞은 '세노테 사진' 돌은 유카탄 10일을, '멕시코 시티 말고 그 근교도 좋다는' 돌은 하이랜드 13일 일정으로 바뀌었다. 그 돌이 없었다면 과연 난 지금 서울 어딘가에서 포켓몬고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영화관이나 도서관에 가있던가. 그런 의미에서 후자의 돌을 던진 사람을 못 보고 리마로 가는 것은 약간 아쉽다. 개인적으로 큰 깨달음을 준 것에 대한 감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언제 갈지, 정말 갈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략적 계획을 들이밀며 주말을 미리 양보받을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난 진짜 맛있는 파스타를 먹으며 보름달을 보았다. 물론 덕분에 난 진짜 커다란 달도 보고 진짜 커다란 돌도 보았다.

4.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멕시코가 위험하다는 뉴스는 참 많이 보았다. 특히 1월 초부터 있던 폭동과 예매 직전에 칸쿤과 플라야델카르멘에서 있었던 총기사고는 다 알고 예매했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뉴스는 단편적이고 짧은 사실 전달이라는 방법을 통해 멕시코라는 이미지에 또다시 마약, 총기, 신변 위험의 이미지를 덮어씌웠고, 난 그 혼란스러운 이미지 속에서 지금까지 23일간의 여행에서 난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었고, 예쁘게 나오고 남들이 공감할 예쁜 사진은 페이스북에, 내 일기의 용도로는 인스타그램에 짧은 소감과 함께 올려놓았다. 어쩌면 나는 열심히 멕시코가 그리 위험한 곳은 아니라는 것, 여행하기 좋고 편한 곳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주변에 지금 나처럼 여행을 길게 간 사람도 잘 없었지만 주변에 멕시코를 여행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여행을 와서 쿠바 때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멕시코만 여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남미 혹은 세계 여행 속의 일부분으로 멕시코가 끼어있을 뿐. 그래서 대부분 스페인어가 사용 가능한 서양/남미 여행자들이고 한국인 여행자들은 은근히 있다. 정말 은근히. 덕분에 멕시코는 한글 가이드북도 거의 없고 나도 론리 플래닛과 블로그를 참고하고 다른 여행자들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 정했다. 한국에서 멕시코는 정말 정말 심리적으로 먼 곳이니까. 만약에 내가 멕시코를 오픈티켓으로 여행했다면 아마 여기서 최소 일주일은 길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백수 놀이도 하고, 핑크 라군도 갔다 왔을 거고, 산 미겔 데 아옌데도 갔다 왔을 거고, 산 루이 포토시나 베라크루즈, 캄페체. 아 못 한 게 너무 많다. 덤으로 말하자면 오히려 처음에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기는 밀리기 시작해 이젠 23일 차인 지금 9일 차를 곱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포기.

5. 여행지로서의 멕시코는 정말 좋은 곳이다. 자연 풍경도 인상적이고, 화려한 색깔로 페인트칠 된 거리의 풍경도 예쁘다. 세노테와 까리베에서 볼 수 있는 특유의 파란 물결, 치첸 이차에서 들렸던 놀라운 울림, 가장 멕시코스럽다는 와하까의 거리, 과나후아토의 파스텔톤 석양까지 느낌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점은 같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마야문명의 발상지가 지금의 멕시코 땅이고,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500년 가까이 된 역사를 가진 많은 도시 덕분에 문화유산도 많다. 특히 지금은 겨울이라 날씨도 덥지 않고 따사로운 정도이고, 밖을 외출하기도 부담 없다. 길거리에서 파는 타코는 맛있고 가격도 7페소(= 약 400원) 정도이다. 그것이 아니라도 4000원짜리 파스타, 10000원짜리 스테이크는 한국에서 누릴 수 없는 사치이다. 나라가 넓어 생기는 긴 이동거리 때문에 저렴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시외버스 교통비만 제외하면 숙박비, 각종 입장료도 저렴한 편이다. 덕분에 난 현지인처럼 2000원(35페소)짜리 예쁜 스카프를 살까 말까 고민하고, 900원(15페소)짜리 팔찌는 비싸니까 다른 도시에서 300원(5페소)에 사야 한다는 알뜰함을 갖추며 여행했다. 물론 안타까운 건 결국 저 모든 것을 사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있을 게 없는 멕시코는 절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같은 선진국만큼은 아니어도 나름의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고, 미국과 가까운 덕에 공산품 수급도 풍부하고 원활하다. 개인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을 한국에서 사 온 다음 월마트를 둘러보고 느낀 좌절감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6. 멕시코에서 느꼈던 놀라운 사실들도 몇 가지 있다. 한국에서니까 많다고 느꼈고 내가 쓰지 않아서 크게 관심없었던 삼성 스마트폰은 여기서 정말 엄청 쓰고 있었다. 진짜 안드로이드는 삼성이라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아 드문드문 LG도 있었다. 그리고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아직 피처폰을 사용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작은 액정의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쓰는 사람도 엄청 많다. 혹자는 그렇게 하면 도난당한다며 지하철도 혼자 타지 말라고 한다지만, 멕시코시티의 지하철은 그렇게 범죄의 소굴까지는 아니고 더군다나 몇몇 노선에서는 여자/아이 칸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심리적으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멕시코시티를 가는 ADO 버스를 탈 때 비디오 카메라로 자리에 앉은 탑승객의 얼굴을 촬영할 때였다.

7. 더 놀라웠던 것은 멕시코인들의 애정행각이었다. 행각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 웃기긴 하지만 내가 본 입장에서는 이건 행각이 맞다. 12월에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키스를 해대길래 저 사람들이 이상한가보다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잘, 공공장소에서는 특히 더 볼 수 없는 저런 행동이 멕시코에서는 딱히 눈치를 보지 않고 다들 자연스럽게 하고 있고 딱히 눈치주는 사람도 없다. 그냥 각자 할 일을 각자 알아서 하는 느낌. 등산로에서 소리 내가면서 하는 건 나중에는 애교 정도로 봐주고 막바지 과나후아토에서는 발렌타인데이라서 가게마다 하트가 넘나들고 거리에서 '키스 장인'분들이 광장 한가운데에서 진하고 길게 하고 계시는 걸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며 서로 알려주고 다녔다. 그런데 웃긴 건 그런 때에도 정작 과나후아토의 키스 골목에서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보니 정말 과나후아토의 발렌타인데이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테이블마다 하트 풍선을 달아놓고, 길거리에서는 꽃과 하트 모양 물건들을 열심히 팔아대며 다들 꽃에 선물까지 들고 다니고, 발렌타인데이가 뭐라고 술집들은 연장영업도 한단다. 대학도시라 그런가 하기에는 너무 놀라웠는데 과달라하라도 다르지 않았다니 멕시코는 '사랑의 나라'라고 불러야 되나 보다. 물론 장년층 분들도 사랑 표현이 자유롭다는 건 좋은 점인 것 같다만.

8. 다만 여행에서 느낀 안타까운 점도 몇 가지 있었다. 특히 여행을 통해 느껴지는 빈부격차는 글에서 봤던 것 이상이었다. 사실 멕시코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도 정말 많고, 도로에서 껌과 담배를 파는 사람, 차가 신호대기를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저글링을 하고 불쇼를 하며 돈을 구걸하는 사람, 신문을 파는 사람도 많다. 큰 공원에 가면 여지없이 구두 닦는 사람이 보인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은 거리에서 엄마의 옆에서 시간을 보내고, 조그마한 손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물건을 권유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한 이들이 과연 하루에 최저임금인 80페소(= 약 4500원)를 벌고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헤진 옷을 입는 것이 그들의 의도적인 컨셉이 아니라면 정말 교육의 혜택을 받아야 할 아이들은 집안의 사정으로 인해 아침부터 의무 교육장인 학교가 아닌 거리로 향하고, 혹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엄마의 옆에서 책이 아닌 거리의 사람들과 씨름해야 한다.

9. 언젠가부터 내려가기 시작했던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2013년 대비 40%, 2016년 대비 15% 하락했다. 트럼프가 페소화 하락의 큰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사실 이전부터 페소화는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였고, 사실 이것은 멕시코의 경제력/경쟁력을 나타내는 현실적인 지표로 봐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낮은 최저임금 덕분에 낮은 물가의 과실은 고위층들이 따먹고, 저소득층은 힘들게 하루를 살아간다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얼마 전에 있었다는 'vibra, mexico' 시위의 방향이 밖이 아닌 안을 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테오티후아칸을 갈 때 도로 주변으로 보였던 엄청나게 넓은 산동네와 빈민가들이 해결되고, 그들에게 제대로 된 사회 서비스가 제공될 때 멕시코는 그들이 원하는 'vibra'를 이룰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렇다면 이방인인 나는 더 비싼 돈을 들여 힘들게 여행하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들에게 느껴지는 1페소의 무게와 내가 느끼는 1페소의 무게는 많이, 아주 많이 다르다.

10. 이제 나는 리마에서 진짜 남미 여행을 시작한다. 스페인어 cero인 내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길 바라며. 가는 길에 내가 이번 멕시코 여행을 한 줄이나 한 장으로 정리한다면 무엇이 좋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해봐야겠다. 그동안 보았던 다양한 모습 중에서 진짜 멕시코에 가장 가까운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과연 난 실제로 진짜 멕시코를 만나보긴 했을까?

2017, Quintana Roo, Mexico


2017, Yucatan, Mexico
2017, Quintana Roo, Mexico
2017, Chiapas, Mexico
2017, Chiapas, Mexico
2017, Querétaro, Mexico
2017, Guanajuato, Mex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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