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문극장 2019 강연 #7
두산인문극장의 일곱 번째 강연은 노은주, 임형남 건축가의 ‘아파트는 골목이다’로 진행되었다. 1998년부터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은 루치아의 뜰, 금산주택 등을 설계했고, 공간디자인대상, 공간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나무가 자라는 집>, <골목인문학> 등 십여 개의 저서를 발간했다. 서울의 ‘골목’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이들 부부는 이번 강연에서 골목과 이질적 존재 혹은 연결선상에 놓인 존재로써의 아파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서울의 지도는 유난히 복잡하다. 자로 맞춘 것 같은 구획, 일정한 직선과는 거리가 멀다. 이 복잡함은 작고 좁은 골목들로 인해 기인된 것이다. 이 골목들은 서울의 ‘주름’을 이룬다. 세월이 지날수록 많아지고 깊어지는 이 주름은 서울이 지나온 세월과 기억들을 담고 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형성했고, 우리들만의 규칙을 만들었으며, 크고 작은 정을 나누기도 했다.
이날 강연자들은 직접 그린 서울의 골목 풍경들을 보여주면서 서울의 매력은 ‘복잡함’인 것 같다고 말했다. 늘 서울의 복잡함은 현대인을 짓누르는 이미지로써 이야기되곤 했는데, 그와 달리 오랜 세월을 거친 만큼 존재할 수밖에 없는 복잡함의 매력을 언급했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나만 아는 곳,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골목에서의 발견을 즐겼던 것은 이러한 복잡함의 매력 중 하나를 느꼈던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서양식 건축물이 하나둘씩 들어서고, 그것이 자본주의와 맞물리면서 서울의 주름들은 가차 없이 펴지고 있다. 가령, 가장 최근의 사건으로는 세운상가 근처에 들어설 예정인 프리미엄 주거 단지가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의 역사가 속속들이 숨어 있는 곳, 100년이 넘은 한옥들이 있는 곳들을 근시안적인 시각 때문에 빠르게 갈아엎고 있는 지금, 서울은 팽팽하게 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주름은 한 번 펴지는 순간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100년이 넘는 시간은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는 지저분한 길, 오래된 건물들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의 흔적들을 처분하는 것과도 같다.
골목의 이러한 특성과 아파트의 연결지점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아파트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앞선 강연에서도 초기 아파트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오래되고 누추한 건물들은 주기적으로 부수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아파트가 올라가는 것의 반복. 그 속에서 우리는 서울의 기억 중 어떤 것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시골집이나 농촌이 아니라 아파트가 ‘고향’이 될 수 있는 이시대의 세대를 이야기했던 앞선 강연이 떠오른다. 오래된 것에 대한 과소평가와 새로운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은 결국 우리에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에 앞으로의 세대는 아파트가 고향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향’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어떠한 기억이나 추억이 인간으로써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분명히 일조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속을 게워내고 또 게워내면서 결국 껍데기만 남을지도 모른다는 서글픔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