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주말에 쓰는 결산
2022년의 초입에 늦은 21년 결산을 썼던 게 기억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지금 내가 이글을 쓰고 있는 카페의 같은 자리였다. 그날도 나의 스콘 리스트에서 꽤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이곳의 플레인 스콘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아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날의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지금의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는 거다. ‘오늘은 날이 특별히 추웠나보지’라고 하기에 이건 조금 의미있는 변화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그때로부터 일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뜨거운 아메리카노만큼 달라졌다. 딱 그만큼.
그게 얼마만큼이냐면 남들은 눈꼽 만큼도 관심 없을 만큼이지만 나에게는 꽤나 중요한, 딱 그만큼이다. 전까지 나는 절대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았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손끝이 빨개질 만큼 추운 날에도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쥐어야 했고, 숨만 쉬어도 목구멍이 시원해질텐데 빨대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단번에 들이켜야했다. 그리고 컵을 가득 채운 얼음을 입에 가득 물어야 했고, 그게 녹을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와그작 깨먹었어야 했다. 영하의 바깥 날씨보다도 나의 볼 안이 더 차가워져서 나중엔 볼의 바깥과 안의 온도가 완전히 반대가 될 때까지. 그리고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커피 컵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투명한 얼음컵 대신 두꺼운 머그컵이 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하면서 몇 가지 깨달은 것들이 있다. 너무 뜨거운 커피를 받아들었을 땐 잠깐 식히고 마셔야만 입이 데지 않는다는 것. 대신에 두꺼운 탓에 적절하게 따뜻한 머그컵을 두손으로 꼭 쥐고 올라오는 커피향을 맡는 것도 꽤 괜찮다는 것. 어떤 원두는 의외로 미적지근한 온도에 잘 어울린다는 것. 그리고 미처 다 마시지 못해 차게 식어버린 아메리카노는 미련 없이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되도록이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그렇게 하려고 했던 이유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특정한 누가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세상의 일원으로서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이 늘 나에게 그렇게 말해왔기 때문에.
그런데 올해 들어 책을 좀 더 진심으로 읽게 되면서 배우게 된 점이 참 많다. 책의 내용으로부터 그리고 책을 읽는 경험으로부터. 예를 들어 내가 뭉뚱그려 쓰던 단어들이 실은 뾰족한 차이를 드러내기도 했다. 세련과 정제는 언뜻 비슷해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단어인 것처럼.
“엡스타인은 매우 세련된 사람이었다. 정제되지는 않았어도 - 그는 자신에게 있는 잡티를 모두 없애버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 니콜 크라우스, <어두운 숲>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세련된 사람이고 싶었다. 정제된 사람이 아니라. 그런데 모든 걸 쾌속으로 얻어내려고 하다보니 내 행동과 노력의 방향이 조금 엉뚱한 곳으로 갈 때가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매사에 신중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어떤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그곳이 무엇인지 뾰족하게 세공했어야 했다. 세공의 시간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스스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아주 느린 시간을 지나 작은 크기로 남은 기억이더라도, 그 무게만 충분하다면 물에 휩쓸려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 빠르게 부풀린 기억들은 대개 물에 너무도 쉽게 휩쓸려가버렸다. 그래서 올해 나에게 부산물처럼 남은 이 작은 기억들이 휩쓸리지 않는 모래처럼 쌓여 내가 디디고 설 땅이 되어줄 거라는 걸 믿고 있다.
“실망은 불행이라고 간주되지만, 이는 분별없는 선입견일 뿐이다. 자신에 대해 정말 알고 싶은 사람은, 쉬지 말고 광신적으로 실망을 수집해야 한다.” - 파르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올해 두 개의 회사를 만났다. 굳이 작년과 비교하자면 올해 회사에서 보낸 시간들은 좀 더 좌절과 연이 깊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일을 할 때 자꾸만 외부로 탓을 돌리게 되었고, 마음을 다 할 수 없는 일로 하루를 채워야 하는 것이 나에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힘겨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일이라는 건 언제나 내가 원하는 환경과 원하는 형태로 이어갈 수는 없는 거다. 그게 설령 회사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 일이라 해도. 그래서 무언가 원치 않는 조건들이 주어졌을 때 그 조건들조차 똑똑하게 활용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조금 더 길러지면 좋겠다. 물론 심리적인 것도 그렇겠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 더 큰 판을 볼 수 있는 그래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니까 이제 스스로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건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것이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능력들을 길러낼 거다. 마찬가지. 느리더라도 뾰족하게.
그리고 새로운 회사에 온 지 한 달이 되었다. 일에서 다루는 주제도, 내가 하는 일도 이전과는 아주 많이 다른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즐겁게 하고 있다. 하루 하루 일을 하면서 스스로의 부족한 점들을 많이 보곤 하는데, 그 쉽지 않은 모든 시간들이 지금의 나에게 잘 맞는 듯하다. 나, 그리고 내가 겪어왔던 사람들과는 또 다른 분들과 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앞으로 남은 5개월이 만만하게 흘러가진 않겠지만, 이 시간이 또 하나의 결정적인 갈래길을 터주는 데 역할을 할 거라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요즘 꽤나 광신적으로 실망을 수집하고 있는데, 이게 또 나쁘지만은 않다는 거지.
“우리는 두 개의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아, 아름다움에 관해서만큼은 진실만을 이야기하던 많은 밤들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그 커피점 중 한 곳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어요." - 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그리고 두 달 뒤면 2년을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와의 시간이 끝난다. 물론 우리가 2년 내내 붙어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언니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들이 지난 2년 간 나의 변화에 꽤나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 무용한 이야기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사는 행운. 아마 앞으로 내 인생에 다시 오기 어려운 행운일 거다. 우리처럼 가까운 사이에 너무 과한 고백처럼 느껴질까봐 솔직한 말로 감사를 전하지 못했지만.
내년이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에 대한 설렘도 당연히 있지만,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 중 몇 가지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한다. 우리가 애정하는 심야 책방에 가서 따뜻한 아인슈페너를 놓고 사장님이 퇴근도 못하게 떠들었던 순간, 어두워지고 나면 진가를 발휘하는 집 근처 카페에서 언니 옆에서 언니가 읽어보라는 책을 읽었던 순간. 특별할 거 없는 날에도 거실에서 떠들기도 배가 아프도록 웃기도 울기도 했던 순간까지.
그 문장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예전에 언니가 편지에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룸메이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게 떠오른다.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앞으로 꽤 오랫동안 언니는 나에게 그런 룸메이트로 남아있을 거다. 우리가 늘 그랬듯이 우연한 순간 충동적인 결정으로 함께 하게 되었던 2년이 나의 20대에 빠져서는 안 될 시간이 되었다. 괜히 욕심을 내보자면, 언니에게도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이 가장은 아니더라도 꽤나 소중했던 시간이었다면 더할 것 없이 기쁠 것 같다.
“일단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되면, 당신은 글을 써서 먹고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희귀한 신분에 소속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잔잔한 기쁨을 느낀다.” - 앤 라모트, <쓰기의 감각>
결론부터 말하자면 글을 쓰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건 아니다. 지금 당장은. 근데 언제나 그래왔듯 나는 내년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희귀한 신분에 소속되기 위해서 부지런히 고민하고 좌절하고 스스로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이런 나에게 내 몸과 정신이 주어져서, 내 몸과 정신에게도 자아가 있다면 정말이지 피곤하게 됐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가 가만히 있는 건 못 배기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여주길 바랄 뿐이다. 대신에 그만큼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도.
어쩌다보니 또 올해 읽었던 책 구절이 내 글에 스며들어와버렸다. 본능 같은 일이라 생각하고 싶고, 본능이었으면 한다.
짧게 작년 회고글에 썼던 2022 목표를 청산해보자면 반은 맞고 맞은 틀리게 됐다.
우선 작년보다 내 세상을 넓히기. 그게 어떤 형태가 됐든.
작년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니 이뤘다고 봐야할까? 일을 하면서 만난 동료들, 내가 내발로 찾아가서 만난 책에 관련한 사람들, 스터디로 만난 학교 사람들, 운동을 하면서 알게된 사람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그외 다수의 사람들. 돌이켜보면 작년엔 나의 에너지가 내속으로 파고들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좀 더 밖으로 발산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덕분에 새로운 인연이 된 사람들도, 내가 삶에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이 된 이야기들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건 쌍방이니까, 그분들께도 내가 그런 존재가 되었기를 자그맣게 바라본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올해 무엇보다 감사하고 싶은 건 내 곁에 늘 함께 해줬던 친구들. 물론 새로운 인연들도 여지없이 내 세상을 넓혀주었지만 오래도록 함께 했던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넓히기 위한 힘을 얻지 못했을 거다. 매달 이런 저런 이벤트들을 만들어서 불러내주었던 친구들, 나의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흔쾌히 나와주었던 친구들, 일을 핑계로(?) 자주 만난 친구들. 천성이 세심하지 못한 내 옆에 함께 해줘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내가 더 잘할게 (?)
크기에 관계 없이 일정한 수입이 들어오는 창구 마련하기.
이건 정말 반은 맞고 반은 틀리게 됐다. 어쨌든 올해는 일로 인한 수입,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일정한 수입은 들어왔고, 어쨌든 내년 중반까진 일정한 수입이 들어올 예정이니까. 근데 정말이지 고정된 수입은 아니니까 반은 틀린 걸로.
내년에도 비슷한 목표를 세울 것 같다. 대신 크기는 관계 없지만, 일정하진 않아도 되고, 내가 원하는 일로 수입이 들어올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고 ‘실행’할 것. 그 시작이 내년이 되길 바라면서.
암튼 내년 목표는 내년에 좀 더 자세히 써봐야지. 31일에 결산을 쓰기엔 다음주의 내가 이런저런 약속으로 바쁘기도 하고, 또 연말은 가족들과 온전히 함께하고 싶기 때문에 이번 주말은 나에게 집중하는 주말로 정했다. 조금 이르지만 22년의 내가 그래도 기특했다고 말하고 싶다. 쉬지 않고 고민했고, (말그대로) 쉬지 않고 운동도 했고, 잡히지 않을 것 같았던 스스로에 대한 갈피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아주 조금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솔직히 나는 데카르트가 싫고 그의 공리를 무언가의 확고부동한 근거로 신뢰해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가 숲에서 나와 일직선으로 나아가라고 하면 할수록 나는, 예전에 우리가 매사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그것이 존재와 세상에 대한 진정한 인식의 전제 조건이라고 이해하고 살았던 그 숲속에서 헤매는 편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 니콜 크라우스, <어두운 숲>
내년에도 굴하지 않고 데카르트와 맞설 때도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