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 하루 Jun 10. 2020

이상과 현실 사이

6월 10일로 넘어가는 저녁 재미와 함께 지쳐버린 몸과 함께

90년대 후반 대중적으로 PC 즉,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종이에 직접 글을 쓰고, 글만을 칠 수 있던 타자기를 지나, 컴퓨터로 다양한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우리 사회는 혁명적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모든 일의 중심은 컴퓨터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단 컴퓨터만의 보급이 우리 사회를 급변시킨 건 아니었다. 컴퓨터와 함께 보급된 바로 인터넷. 컴퓨터의 기능을 극대화시켜주고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이상과 욕망을 충족시켜준 인터넷은 지금도 나름대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이 처음 보급되고 시작된 것에 대해서는 딱히 알고 있는 바가 없다. 내가 인터넷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PC 통신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천리안이나 나우누리? 직접 사용해본 적은 없다. 그냥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본 것이 전부다. 아는 것이라고는 전화비용이 많이 나온다 정도? 


당시에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면 친구 집에 전화를 해야 했기에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와 같이 머릿속에 박힌 문구를 모두 사용했다. '안녕하세요? 저 영철이 친구 준영인데요, 영철이 있어요?' 자연스럽게 전화예절이라는 것이 습득되었고(요새는 초등학교 국어책에 전화예절에 대한 내용이 한 단원의 내용으로 나온다.), 연락이라는 것은 전화번호나 삐삐 번호를 아는 친한 사람들에게만 할 수 있는 전유물 같은 것이었다.


PC 통신이 나오고 나서 그렇게 전화비가 많이 나오는 집이 증가했다고 한다. 물론 통신사는 좋았으리라. 그런데 이런 전화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사람들이 PC 통신을 많이 찾은 이유는 굳이 전화번호나 삐삐 번호를 몰라도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그 희열. 그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밤새 들리는 FAX 소리와 같은 '뚜르르르'소리와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는 소리가 연신 들렸어도 당시 청소년들은 설레는 밤을 보냈으리라.


내가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게 된 것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하나로 통신의 인터넷을 연결한 이후이다.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이었나? 선생님들이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자료를 조사하고 발표하는 과제를 내주기 시작했고, 당시 중·고교생의 두근두근 설레는 채팅 프로그램 버디버디가 등장한 때이기도 하다. 남중, 남고를 나온 나로서는 학원에서 만난 여학생과 인터넷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설레고 즐겁기만 한 때이다.


버디버디 지금의 20대 후반 30대 중반 연령의 사람들은 모르는 이가 없는 그 프로그램. 'ㅁ', 'ㄱ', 'ㄷ'등의 초성에 한자 키를 누르면 나오던 신기한 문자 표들을 이용한 아이디. 아이디를 만드는 그 순간 자체만으로도 신났었다. 그러다 하나둘씩 친구 추가를 하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고백도 하는 등 잊지 못할 흑역사를 만든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버디버디로 고백을 하다 대차게 까였고, 아이디를 지우는 등 웃픈 해프닝이 참 많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많이 아프고 슬프지만 지금도 당시의 기억은 힘들었다기보다는 설렘과 즐거움이 가득했던 그런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은 버디버디가 유행하고 나서 조금 이후의 이야기이다. 네이트온은 당시 대학생들의 버디버디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싸이월드는 말할 것도 없다. 당시의 그 묘한 감성과 허세, 그것이 흑역사가 되어 지금도 이불 킥을 날리게 되는 전설의 사이트이다. 나 역시도 정말 모니터를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의 충격적인 감성이 담겨있는 소중하면서 버리고 싶은, 버리기는 싫고 침대 밑에 숨겨놓고 싶은 그런 차마 버리지 못하는 그런 추억이다.


이런 추억들과 함께 등장한 것이 바로 불법 공유 사이트들이다. 못 본 드라마를 불법 다운로드하여 정주행을 하기도 했고, 지금도 유명한 '원피스', '블리츠' 등의 만화를 불법 복제하여 보기도 했다. 음란물도 너무나 쉽게 다운로드할 수 있었고, 많은 학생들이 그것을 학교에서 보기도 하는 등 지금 보면 너무나 충격적인 일들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곤 했다. 이런 기억도 우리에겐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언제나 우리에게 감성팔이의 공간이 될 것 같았던 인터넷은 어느새 독이 묻은 날카로운 화살로 바뀌어 있었고, 화살이 한 번 박히면 독이 점점 퍼져 부정적인 영향이 가득하게 되었다. 악플,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인터넷을 통한 불법 행위 등 뉴스를 보면 처음 보는 사건·사고가 넘쳐났고, 이를 모방한 범죄들도 늘어났다.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는 청소년들의 문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러면서 학교에 사이버 관련 교육들도 늘어났다. 더불어 저작권에 대한 개념도 형성되고, 법적인 처벌에 관련된 내용도 확립되었다.


약 20년 정도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린 지금은 인터넷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하다. 처음 알아가면서 새로운 기능들을 찾고 이용하고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나갔다. 물론 불법 다운로드에 익숙하고, 악플을 달며 익명성에 숨어 사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학생들이 모여 게임을 하면서 육성으로 비속어를 사용함과 동시에 그 내용을 채팅으로 옮기고(요새는 음성 채팅 기능도 있다.), 유튜브의 19세 이용 금지 영상도 우회하여 보고 있다(시청 목록을 지울 수 있는 것을 아는 것은 안 비밀.). 이뿐이랴 마음에 들지 않은 친구를 단체 대화방에 초대하여 일방적으로 비속어를 보내고, 채팅방을 나갔음에도 계속적으로 초대하여 정서적인 폭력을 행한다. 


더 나아가서는 입에 담지도 못할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며 뉴스를 뜨겁게 달군다. 충격적인 것은 그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어린 학생도 있고 젊은 청년들이 많다는 점. 과거에도 저런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잘못된 일들에 새로운 일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너무나 빠른 속도로 번지고 퍼져나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지금 나에게도 도움을 주는, 그리고 버디버디, 네이트온, 싸이월드 같은 추억이 가득한 이 공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건 우리만의 낭만적인 이야기이고, 현실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이 현실을 근본적으로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땐 그랬지'라는 낭만적인 단어도 쓸 수 없어질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을 쉽게 알게 되고, 손가락 한 번에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쉬워진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한 공간은 너무나 편리한 지금의 현실도 있겠지만,

작은 모니터와 스마트폰 액정을 벗어나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하늘 너머의 무한한 우주처럼, 

단순한 정보의 바다가 아닌 우리의 추억이 가득 담긴 추억의 우주가 아니었을까?

작가의 이전글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