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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하루 Jun 14. 2020

착함과 만만함, 그 묘한 경계

6월 14일 구름과 비에 무더위도 잠시 쉬어가는

우리 부모님의 아들로 3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고, 교직 생활을 10년 가까이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대답은 명확하고 짧게 하는 것이 좋다는 점. 아들의 입장에서 부모님이 무엇을 시킬 때 '네'라는 짧고 명료한 대답과 함께 일을 바로 시작하면 잔소리를 들을 일이 없었고, 교사의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시킬 때 '네'라고 대답하면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네'라고 말하면서 즉시 행동에 옮기는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이 몇이나 있으랴? 난 지금도 좀 그렇긴 하지만 어렸을 때 성격이 좀 별로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하고(따지는 것에 가깝다), 내 상황을 고려해주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리기 일수다. 또한 표정에 싫은 티가 팍팍 나며, 말투가 급변하기도 해서 주위의 분위기가 살벌해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어릴 때 집에서 사사건건 '왜요?', '잠깐만요'라고 말해서 아버지께 혼난 적이 많다. 지금도 크게 다를 건 없지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교실 속 내가 아이들에게 명확한 대답을 강요하고 있는 모습을 인지하면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된 걸까?', '나도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내 태도를 고치려 노력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누구에게는 'YES 맨'이 되는 것이 참 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바쁘고 정신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늘 꼬리표처럼 스트레스와 피로가 따라다니고, 그 꼬리표를 달고 있으면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수가 없다. 그런데 참 신기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에서는 대부분이 'YES 맨'이 된다. 무조건 '네, 할 수 있습니다.', '네, 수정하겠습니다.', '네, 내일까지 결재 올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입에서도 저런 말이 하루에 몇 번이나 나올 것이다.


다 이해한다. 처음 잡은 직장에서 잘하고 싶을 것이다. 능력을 인정받고, 인맥을 키워서 승진하여 멋진 삶을 꿈꾸는 것이 직장인들의 로망이니까. 그래서 주어진 업무 외에 다른 사람이 떠넘긴 일도 하고, 그러다 야근도 하고...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까이기 일쑤고, 인정도 못 받고... 참 서글픈 감정에 사직서 하나씩을 늘 안주머니나 서랍장에 보관하고 있을 것이다.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잘 웃고, 싫은 소리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좋은 사람이고 싶었으니까.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것을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의 기준에서 내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나는 정말로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선물도 보내주고, 연락도 하고, 때때로 만나 맛있는 식사에 술 한 잔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한 조언도 해주고, 어려운 부탁이 있으면 최대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도움을 준다. 그건 직장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난 낯가림이 심해 먼저 다가가기가 어려운 데, 후배가 먼저 다가와 모르는 것도 물어보고 조언을 구하려 하면 너무 예쁜 마음에 가지고 있는 자료나 정보를 알려준다. 그러면서 사적으로도 친해지고 형, 동생으로 발전한다.


모든 사람이 내 기준은 아니긴 하지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말처럼, 내가 잘하면 남이 잘해주고, 남이 잘해주면 내가 잘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었나? 그래서 속담에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겨있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내가 잘해주면 점점 나에게 당연하다는 듯 그런 행동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서는 아주 내가 만만한 사람에 우스운 사람까지 만들어 놓는 일도 있다. 방송인 박명수 씨가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라는 신종 속담을 만들어 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속담에 공감했고, 인간관계 속 나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얼음이 녹아버리는 녹는점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한계점이 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터지는 그런. 처음에는 한계점에 가까워지면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괜한 심술이나 짜증을 부렸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술을 마시며 잊어보려고 했을 수도 있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며 '아 내일 회사 가기 싫다.'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을 것이다.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장소에서 내 진짜 모습은 없다. 늘 씁쓸한 웃음과 비어있는 대답이라는 가면을 쓴 채로 그 힘든 무게와 중압감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정도는 겪어봄직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마음에 상처가 나고 상처에 상처가 덧나고 터져버렸을 것이다. 마음의 문을 닫고 차갑고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만만해지기 싫어서 더 모질게 굴었을 것이고, 내 잘못이 아니라 이런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는 자기 암시를 걸며 자신의 마음을 애써 위로했을 것이다.


직장 내 스트레스 1순위가 바로 직장 내 동료들 간의 관계라고 한다. 직급이 있고 그에 따른 상사와의 갈등, 나와 다른 동료의 태도 등. 사람들의 퇴사 비율이 높은 곳을 찾아보면 일이 과중한 곳도 있겠지만, 나 스스로를 갉아먹게 하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곳이 많을 것이다. 


'그럼 마음 가는 대로 시원하게 내지르고 살아!'라는 되지도 않는 위로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흔히 말하는 아싸 즉, 아웃사이더를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마음대로 해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을 추천한다. 말이 좋아 고독한 아웃사이더지 그냥 직장 내 따돌림이다. 그렇다고 계속 참고 살아야 되나. 아니면 어떻게 해야 되나. 답답함이 마음을 짓누른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 이런 고민은 끊이질 않을 것이다.


왜 착한 것이 만만함이 되는 세상이 되었을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라는 영화 부당거래 주양 검사의 대사가 떠오른다. 


적당한 선과 거리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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