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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린 Jan 09. 2021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윤희에게 (Moonlit Winter, 2019)

두 개였던 서랍장 중 하나를 중고로 판매하게 되면서, 서랍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어린 시절부터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놓은 박스를 발견했다. 그것을 발견하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여러 편지들을 꺼내 읽으면서 혼자 많이 즐거워했다.


그 날 이후에, 나는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오래된 친구와 처음으로 단 둘이 여행을 떠나기로 되어있었다.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처음 만난 그 친구와도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었는데, 한 번은 약 6개월간 매일같이 나에게 편지를 쓴 것을 책으로 엮어 선물해 준 적이 있었다. 아직까지 나에게 소중히 간직되는 그 책처럼, 졸업 후 다른 지역에 떨어져 살고 있지만 가끔 묻는 안부만으로도 여전히 소중해지는 친구와의 첫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나를 오랫동안 설레게 했다.



윤희에게,


우연히 서랍장에서 오래된 편지들을 발견하고, 오래된 친구와 처음으로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을 앞둔 나에게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나에게 편지이자 선물과도 같은 영화였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퀴어영화라고 말하지만, 누군가와 세월을 공유하고 그것을 추억해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단순한 퀴어영화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어려워진다. 어렸을 때, 서울로 떠나면서도 친구들에게 언제든 부르면 나와야지! 늘 그랬듯이, 동네에서 슬리퍼 신고 만나서 술이나 마셔보자! 호기롭게 이야기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동시에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그리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애써 묻어두며 각자의 일상을 살아간다.


윤희와 준이 서로를 찾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윤희가 준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만 하는지는, 누군가를 그리워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마치 친구와 첫 여행을 떠나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나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 끝에 다시 만난 윤희와 준이 말도 없이 웃고, 나란히 걷는 것을 보면서 나는 조금 울컥하고 벅찼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더라도,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더라도, 언제든 편안하고 제자리에 돌아온 것 같은 그 기분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의 감상평을 친구와 여행을 다녀오고 한참 후에서야 쓰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이 영화에 대해 꼭 친구에게 이야기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윤희가 준을 찾아 삿포로를 헤맬 때처럼, 나도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부지런히 설레어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히 편안했고, 별다를 것이 없이 우리는 서로의 소식들을 전하면서 예전처럼 즐거워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각자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고, 언제고 또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서로를 그리워할 거야.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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