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만드는 업무의 영역을 보편적으로 3개로 나눌 수 있다. 이 구조를 알고 나서부터는 모든 공간을 이 프레임을 기반으로 생각하게 됐다. 전시, 콘서트 같은 비상설 공간뿐 아니라 플래그십 스토어나 일반 매장과 같은 상설 공간에도 모두 적용되는 개념이다.
하드웨어는 전시 공간의 전시물 자체다. 전시품, 전시 공간, 전시 설치물과 같이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는 요소와 그것이 어떻게 연출되는지를 담당한다. 동선 계획, 이에 따른 집기의 배치, 조명 연출부터 라이프스타일 씬을 연출해야 한다면 냉장고 안의 소품까지도 공간팀이 맡는다. 나는 지금 이 업무를 하고 있다.
아래는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의 영상 관람 공간이다. 소파에 앉아서 준비된 여러 영상을 헤드폰을 끼고 보는 공간이다. 공간팀은 사진 속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담당한다. 벽 마감을 어떻게 할지, 소파와 어울리는 카펫은 어떤 걸로 할지, 영상물이 몇 개인지에 따라 어떻게 소파의 모양과 배치를 잡을지 고민한다. 공간 톤에 맞추어 파란색 디스플레이의 커버를 제작하고, 커버 안에 전기 선을 어떻게 숨길지도, 헤드폰 선을 디스플레이와 연결하면서 어떻게 예쁘게 꺼낼 것인지도 계획한다.
운영은 관람객들이 전시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과 관련된 모든 요소를 말한다. 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체험 경험을 설계하는 팀으로, 이벤트 체험 프로그램, 스태프의 접객 방식, 도슨트 등이 이에 해당된다. 브랜드의 직원이 실제 스태프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내용을 교육받은 알바생을 쓰기도 한다. 인원을 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공간을 보게 할지, 관람 인원을 한정하여 집중해서 보게 할지 등 전체적인 전시장의 관함객 운영 계획도 수립한다. 전시에 다녀오면 양손 가득 받아오는 사은품 또한 운영의 영역이다.
아래는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GAGGENAU 전시장이다. 예약제로 운영되어, 제한된 인원으로 공간을 즐길 수 있었다. 전시된 제품과 함께 직원이 그들의 기술을 직접 설명해주었다. 자연스레 심도 있는 질의응답이 가능했다. 사소하지만 이 공간에서 맘에 들었던 운영 포인트는 스태프들의 의상이었다. 보통 통일된 스태프 유니폼을 입는 경우가 흔한데, 미니멀하지만 세련된 공간 컨셉에 맞추어 의상도 톤과 무드만 맞추었다. 브랜드를 달라 보이게 했다.
소프트웨어는 실물을 만질 수 없는 디지털 상의 콘텐츠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미디어 아트에서 나오는 영상물, 전시물 해설 동영상, 디지털 인터렉티브 요소 등이 해당된다. 콘텐츠는 매체를 통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담당자는 LED, 프로젝션, TV의 사양이나 시스템을을 심도 있게 다룬다.
아래는 인천 인스파이어 호텔의 르스페이스 공간 중 하나다. 공간팀이 구형태의 원의 배치, 사이즈 등 하드웨어적인 것을 담당한다면, 콘텐츠 팀은 벽면과 바닥, 구에 나오는 콘텐츠들을 통해 어떤 스토리를 보여줄지를 기획하고 제작한다.
공간에서 세 분야는 떼려야 떨어질 수가 없기 때문에, 아주 긴밀한 협업이 요구된다. 전시 병아리 입장에서 이 구조를 알면, 어떤 팀과 어떤 것을 협의해야 하는지가 조금은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