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지금 몇 살을 살고 있는 걸까?

by 김영연

“문 열고 나가야하는데… 문이 왜 안 열리지?”

한밤중, 현관문이 삑삑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면, 엄마가 문 앞에서 문을 열려고 서성이고 계실 때도 가끔 있었다. 처음에는 왜 그러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걱정도 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엄마는 이미 옷을 겹겹이 입고 나갈 채비를 다 하고 계셨다.

“엄마, 지금 몇 시인지 알아요?”

시간을 알려 드려도, 엄마는 듣지 않으셨다. 시간과는 상관없이, 지금 나가야 하는 것이 중요했을 뿐이었다. 신발장에서는 신발을 모두 꺼내 놓고, 가방도 한 보따리 싸 두셨다.


방에 들어가 보니, 소변 냄새가 진동했다. 아마도 오줌을 싼 모양이었다. 기저기와 팬티를 찾았지만 보이지가 않았다. 한참을 뒤져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오줌을 싼 것이 창피해서 어딘가에 숨기려고 했던 것 같았다.


처음에는, 한밤중에 밖으로 나가려는 엄마를 보면서 ‘치매 환자라도 너무하네’ 싶은 마음이 들었다. 화장실을 오가다 잠이 깨서 그런 걸까, 부끄러워서 그랬을까, 잠이 이미 달아난 것 같기도 했다. ‘아, 엄마가 잠을 자다 오줌을 쌀 수도 있겠구나. 그러다 보니 나가고 싶은 마음도 생겼겠지’ 하고 이해하게 되기까지,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는 개구장이 아이들처럼, 눈을 뜨자마자 “나가자, 빨리 가야지”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사셨다. 빨리 나가서 찬바람을 쏘이고 싶고, 어딘가를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시간이 안되었으니까 식사도 하고 조금 기다리라고 해도 아무것도 안먹어도 된다고 하시면서 나가려고만 했다.


어디를 가든 미리 계획을 말하면 안 되었다. 교회가는 시간도 시간이 다 되었을 때, 이야기해야 했다. 미리 알려주면, 엄마에게는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어쩌면 모든 일을 미루지 않고, 빨리 처리하는 성격으로 살아오셨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대해 얼른, 빨리 하자… 조급함이 늘 함께였다. 그런 엄마의 여유 없는 모습 때문에, 우리 가족은 늘 바쁘게 움직여야 했고, 엄마를 제지하느라 진을 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엄마의 삶의 방식을 조금씩 이해하며 따라가고 있었다.


행복을 찍는 사진사는, 엄마가 드실 것을 자주 챙겨 오시고, 엄마와 우리 세 모녀에게 사진으로 추억을 남겨 주신다. 우리는 그분을 삼촌이라 부르며, 오래된 귀한 인연으로 아주 가깝게 지내고 있다. 삼촌은 가끔 엄마에게 농담도 하셨다. 엄마가 들려주었던 오래전 이야기들을 모두 기억하고 계시면서, 엄마를 그 시절로 데려가 주셨다. 엄마는 삼촌이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진짜로 믿고는 신이 나서 옛날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면 서로 맞장구를 치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짧은 농담 속에는 웃음과 친밀함이 담겨 있어, 우리 가족 모두가 편안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순간이 되기도 했다.


엄마는 젊었을 때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긴머리 소녀”라고 불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삼촌은 말씀하셨다.

“저는 그 긴머리 소녀를 그때부터 지금까지 짝사랑하며 따라다녔어요.” 엄마는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수줍게 웃으셨다.

“그때 왜 빨리 말해 주지 않았어요?”

그 말 속에는 아마 사랑의 고백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잠시 삶의 회한을, 그리고 웃음을, 농담 속에 섞어 내어 놓으셨다. 그 순간, 엄마는 18세 소녀로 돌아간 듯했다. 엄마의 인간적인 모습과 지난 시간의 깊이를 동시에 느꼈다.


이제는 엄마를, 한때 딸을 알뜰살뜰 챙겨주던 원래의 엄마로만 볼 수 없다. 본능과 습관만 남겨진 엄마는 지금 몇 살을 살고 있나? 식사, 정리,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엄마는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어떤 때는 5~6살 철부지 아이가 되어 온갖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힌 사춘기 소녀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치매까지 더해진 할머니이니, 종잡을 수 없는 순간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그 모습 하나하나를 받아들이며 엄마의 변화 속에서도 남아 있는 삶의 흔적과 사랑을 조심스레 찾아가고 있다.


“이것 우리 엄마가 나한테 만들어 준거야!”라면서 어릴 적에 친구들에게 자랑했던 것처럼 요즘도 가끔 그러신다. 엄마도 엄마가 있었구나!!


본능과 습관만 남겨진 엄마는 지금 몇 살을 살고 있나?

식사, 정리,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엄마는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어쩌면 지금의 엄마는 열 살 소녀이자, 구순이 가까운 할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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