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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먹고 지냈냐면요

케냐에서 먹은 아프리카 음식

by 미니고래

아프리카에서는 먹을 음식이 없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다. 그러고 보면 포르투갈 음식 하면 에그타르트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이탈리아 음식 하면 파스타나 피자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프리카 음식이라고 하면 퍼뜩 떠오르는 음식이 딱히 없긴 하다. 그래도 기왕 나이로비까지 왔는데 케냐나 아프리카의 전통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 검색을 해보니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내륙지방에서는 주식으로 '우갈리'라고 부르는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이것은 옥수수 가루나 다른 곡물 가루를 뜨거운 물에 넣어 끓이면서 반죽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 하얀 백설기 같이 생긴 음식을 먹는 모습을 영상 같은 곳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기회가 된다면 그 '우갈리'라는 것을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로비 슈퍼마켓에 가 보니 우갈리와 반찬이 담긴 도시락을 떡하니 판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선 맛이라도 봐야겠다 싶어서 일단 도시락 하나를 집어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구성으로는 하얀 우갈리가 담겨있고, 옆에는 고기조림 같은 음식과 우리나라 나물볶음 같은 음식이 담겨있었다. 아무래도 우갈리는 밥처럼 먹으면 되는 것 같았다. 백설기 맛을 상상하면서 우갈리를 조금 떼서 먹었는데... 어라? 이건 내가 상상했던 맛이 아니다. 찰기는 전혀 없고 정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그래 말 그대로 무미(無味)였던 것이다. 같이 담겨있는 반찬들과 같이 먹는데도 우갈리의 '무미함'이 그 반찬의 맛을 다 잡아먹는다. 결국 나는 챙겨 갔던 한국 컵라면에 물을 부어서 이 도시락을 마저 먹게 되었다.


강렬했던 우갈리와의 첫 만남을 뒤로하고, 이 도시락에 담겨있는 다른 음식에 대해서도 찾아봤다. 우갈리 옆에 있던 고기조림은 '니아마 스튜(Nyama Stew)'라고 했고, 나물무침은 '수쿠마(Sukuma)'라는 이름의 콜라드 그린, 케일 또는 시금치로 만든 동아프리카 요리였다. 소고기 조림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전혀 부드럽지 않고 육질이 제대로 씹히는 탄탄한 식감이 인상적이었고, '수쿠마'는 개성이 강한 '우갈리'와 '소고기 조림'을 잘 어우러지게 만드는 부드럽고 자극 없는 그런 맛이었다. 결국 이 케냐식 밥상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게 되었는데,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생각이 나는 것을 보니 자기만의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간단한 식사 대용으로 먹었던 아프리카 음식으로는 '롤렉스(Rolex)'라는 것도 있었다. 우리는 '롤렉스'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번쩍거리는 손목시계를 떠올리게 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니다. '롤렉스'는 우간다에서 유래한 차파티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Rolles와 Eggs가 합쳐져서 붙은 이름이라는 모양이다. 웨스트랜드 마켓 앞을 지나가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가게 된 현지식당에서, 옆 테이블의 현지인들이 먹고 있길래 주문해서 먹어보게 되었다. 발효시키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구운 빵에 계란을 같이 말아서 나왔는데, 슴슴하고 담백한 맛이 간단한 식사로 먹기에 적합했다. 차파티 안에 계란만 넣기도 하고 소시지나 채소를 넣기도 하는 등 그 형태는 다양한 것 같았다. 가볍게 먹는 한 끼로 제격이었다. 다만 이것도 거의 간이 되어있지 않아서, 테이블 위의 소금을 열심히 뿌려가면서 먹어야만 했다. 그러고 보면 아프리카 음식은 전반적으로 음식 자체에 짠맛이 부족한 편인 것 같다.




'우갈리' 도시락이나 '롤렉스'가 그래도 식사의 범주에 속한다면, 간식으로 즐겨 먹었던 아프리카 음식으로 '만다지(Mandazi)'와 '비아지 카라이 (Viazi Karai)'가 있다. 이것은 스와힐리 해안에서 유래된 튀긴 빵의 한 형태로, 아프리카 전역에서 많이 먹는 빵이기도 하다. 핑거푸드처럼 작은 크기에 자극적이지 않아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차이나 티와 함께 간식으로 먹는다고 한다. '만다지'는 약간 퍽퍽한 식감을 가지고 있으며, 고소하고면서도 달지 않아서 우리나라 튀긴 도넛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프리카 여행 중에 출출해서 간식이 생각날 때면 종종 사 먹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로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감자튀김인, '비아지 카라이'는 보통 길거리 노점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주문을 하면 통으로 튀긴 감자 위에 토마토와 향신료가 올라간 내용물을 잔뜩 얹어주고 거기에 소스도 듬뿍 뿌려준다. 가격은 개당 대략 40실링 정도로,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내 입맛에 잘 맞아서 길거리를 가다 보이면 종종 사 먹게 되었다. 보통 ('비아지 카라이'와 소시지를 함께 파는데, 소시지를 주문해도 소시지 위에 토마토와 소스를 올려준다. 소시지는 개당 30실링 정도.)



이외에도 나이로비에 머무는 동안에는 주변 식당에서 필라우(필라프), 스파게티, 중국음식, 패스트푸드 등을 배달시켜서 먹기도 했다.(배달비가 싸서 배달시키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비록 케냐에서 아주 많은 종류의 음식을 접하진 않았지만, 내가 먹어 본 음식들만 놓고 본다면 대체적으로 소박하고 투박한 느낌이 드는 음식들이 많았다. 뭐랄까, 화려하진 않지만 매일 먹어도 질릴 것 같지 않다는 그런 느낌이 든 것이다. 케냐에 있는 동안은 잘 느끼지 못했는데, 한국에 돌아온 지금에는 또 문득문득 아프리카 음식이 생각나기도 한다.




- 웨스트링크 레스토랑(Westlink Restaurant)

PRP3+M85, Woodvale Grove, Nairobi, 케냐

: 롤렉스 + 커피 325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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