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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상황

케냐에서 탄자니아 나망가 국경 넘기

by 미니고래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탄자니아의 작은 도시 모시(Moshi)로 가는 길은 드넓은 대초원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한줄기 도로를 따라 달리게 된다. 이 길을 이용하는 차량들은 '나망가'라는 이름의 산이 있어서 이름 붙은 나망가에서 국경을 넘게 된다.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나망가 국경 검문소 말고도 다른 곳을 통해서도 국경을 넘어갈 수 있다고 했으나, 정확하게 어디로 넘어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대중 교통이 나망가를 거치는 듯했기 때문이다. 임팔라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오전 내내 달려 도착한 나망가 국경검문소에서는, 승객들이 실었던 짐을 모두 내려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승객들도 모두 검문소 안으로 들어가서 케냐 출국과 탄자니아 입국 절차를 받은 다음에야 다시 버스에 올라탈 수 있고, 모든 승객이 절차를 마쳐야만 비로소 버스가 다시 출발하는 것이다.


케냐도 그렇지만 탄자니아도 한국인이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한 나라이다. 케냐는 사전에 신청하는 e비자만 발급 가능하기 때문에 미리 발급을 받았는데, 탄자니아는 검문소에서 발급 받는 '도착 비자'도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는 탄자니아의 경우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 받기로 했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나이로비에 있는 동안에도, 따로 어딜 더 갈지 뭘 어떡할지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은 탄자니아 비자의 경우 미리 신청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탄자니아 도착 비자는 현금으로 50달러(US)나 신용카드로 결제 가능하다고 했다. 마침 우리가 사파리 투어(게임 드라이브)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남은 달러가 좀 있었기 때문에, 이미 환전해온 현금을 좀 쓰기로 하고는, 두 사람 분인 100달러만 따로 챙겨서 꺼내기 쉬운 곳에 빼 둔 상태로 탄자니아 입국 심사를 받기 시작했다.



국경 검문소에 도착하고, 짐 검사와 케냐 출국 심사까지 무사히 끝냈다. 검문소 건물 내에서 탄자니아 입국 서류를 작성한 다음에 입국 창구에 다른 승객들과 함께 줄을 섰다. 그리고 우리 차례에 도착 비자를 발급하겠다고 말한 다음 여권과 입국 서류, 현금 50달러를 건넸는데... 그때부터 뭔가 의심스러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견장에 한 줄만 그어져 있는 맨 끝의 말단 직원이 돈을 서류 사이에 끼우더니, 반대쪽 끝의 다른 창구로 그것을 전달하고는 우리를 거기서 마저 수속 받으라고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돈을 건네받은 다른 창구의 직원은 100달러 지폐를 끼워 넣은 서류를 본인의 키보드 밑으로 슬쩍 밀어 넣는 것이다.


갑자기 불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예전 남미를 여행할 때 국경 경찰에게 돈을 빼앗길 뻔한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짐 검사를 한다고 외국인들을 어느 방 안으로 불러서는 지갑까지 검사한답시고 들춰보더니, 그 와중에 내 지갑에서 지폐를 몰래 가져갔던 것이다. 국경 경찰이 돈을 슬쩍 가져간 사실을 다행히 현장에서 알아챈 덕분에 나는 겨우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예전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 그 순간부터 나는 돈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말단 직원이 우리를 떠맡긴 직원은 어깨 견장을 보니 수속 직원들 중에서 계급이 가장 높은 모양이다. 그 직원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끌었지만, 난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돈을 숨겨 놓은 키보드에서 결코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내 뒤를 이어서 수속을 하러 같은 창구로 뒤따라 합류한 고래군에게, 저 사람이 우리 돈을 가려가려고 하는 것 같으니 눈을 떼지 말고 지켜보고 있으라고 한국말로 얘기했다. 그리고는 곧장 옆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 달려가서 입국 절차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입국 서류를 내고 나서 은행에 가서 도착 비자 비용을 결제하고 영수증을 입국 창구에 가져다주면 된다고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듣고 창구로 돌아와 보니, 먼저 수속하고 있던 다른 버스를 타고 온 서양인들이 은행에 가서 받아온 종이를 창구에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고래군이 지켜보고 있는 창구 직원은 여전히 시간을 끌면서 우리 서류를 처리해주지 않고 있었다. 계속 기다리다가 도착 비자를 물어보니 우물쭈물한다. 그래서 우리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했더니, "무슨 돈?"이라며 태연하게 모른 척을 한다. 당장 키보드를 가리켰다. "마이 머니!" 그러자 직원은 당황했고, 돈을 끼워둔 종이를 꺼내면서 이건 그냥 내가 사용하는 서류라고 거짓말을 하길래 냅다 그 종이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잠깐 동안 직원은 돈을 감싸둔 종이를 빼앗기지 않으려 버텼고, 나 역시 눈앞에서 100달러를 잃을 순 없어서 버티는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최악의 상황엔 그냥 추방 당하고 말지. 뭐 다시 탄자니아에는 오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야? 하는 마음을 이미 먹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여기로 모인 다른 여행자들의 시선을 버티지 못한 모양인지 직원의 손에서 힘이 조금 빠진 사이에, 나는 종이를 힘껏 잡아당겨 빼낼 수 있었다. 나에게 돈을 빼앗기자(내 돈인데?), 그 직원이 이번에는 갑자기 우리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도착 비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신용카드를 쓰거나 현금을 자기에게 주거나 아니면 은행을 다녀오거나라고. 자기는 여기를 책임지는 '오피서'니까, 결코 자기한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뭐 그런 말을 떠드는 것이다. 하지만 안내데스크에 물어보고 앞서 수속한 외국인도 보고 온 나는 그 직원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난 은행에서 결제를 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고, 창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은행에 가서 결제를 하고 영수증을 받아왔다. 그런데 그 창구 직원은 일부러 우리를 모른 척하며 계속 시간을 끌며 딴짓을 한다. 아마 현금 100달러를 잃어(우리 돈이지만) 단단히 삐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계속 기다렸다. 어차피 버스는 우리가 나갈 때까지 출발하지 않을 테니까. 한참을 기다리자 결국 그 직원이 수속을 마저 진행하고 나서야 겨우 입국 심사가 끝나게 되었다.



그래도 좋게 마무리를 하고 싶어 했는지 고래군은 그 직원에게 표면적으로나마 사과를 했고, 나도 가지고 있던 작은 초콜릿 하나를 건네주고는 국경 검문소를 나왔다. 그 창구 직원이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에게 돈을 감추고는 돌려주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탄자니아에 대한 첫인상이 매우 좋지 않은 채로 모시에 도착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사건이 일단락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났더니 나중에 다시 케냐로 넘어갈 때 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뭐, 걱정이 무색하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케냐로 다시 넘어갈 때에는 절차도 훨씬 더 간소하고, 버스 회사 직원도 옆에서 떠나지 않고 도와줘서 훨씬 든든했던 것이다. 만약 다시 케냐에서 탄자니아 나망가 국경을 넘어가게 된다면, 절대로 절대로 현금으로 결제하지 않을 것이다. (미리 사전에 비자를 발급 받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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