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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Sep 07. 2023

숲해설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 part.2

숲해설가가 되고 나서 달라진 점 part.1 다음 이어지는 글입니다.

함께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숲해설가가 되고서 달라진 점이 또 있다. 첫 번째 내용, '온갖 곤충과 동물들을 손으로 잡을 수 있게 되었다'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2. 함부로 살생하지 않게 되었다.


식물과 동물들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 작은 생명들이 각자 나름의 삶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느낀다. 우리 인간들도 삶을 제법 진지하게 살아가지만, 척박한 환경과 모진 시련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식물과 곤충의 강한 의지에 숭고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손안에 들어온 작은 삶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다.


식물의 수정 전략이 얼마나 치밀한지, 열매를 멀리 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알게 되면 아무렇지 않게 나뭇가지를 꺾거나 잡초라면서 풀을 뽑아낼 수가 없다.


수백 송이 꽃으로 봄 하늘을 하얗게 밝히는 벚나무의 수명은 100년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은 편이다. 500년, 1000년을 넘게 살며 보호수로 지정되기도 하는 느티나무, 은행나무에 비하면 무척이나 짧은 생이다.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에는 무척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벚나무는 많은 꽃을 피워 번식 확률을 높이는 대신 화려하고 짧게 살다 가는 것이다. 꽃송이마다 벚나무의 목숨 값이 들어있는 듯해서 벚꽃 축제 때 온갖 인증샷의 배경으로 사용되다 꺾인 가지들을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벌레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독 성분을 내뿜거나 초식동물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딱 동물이 닿는 높이까지만 가시를 만드는 식물들도 있다. 잎 아래쪽에 꽃을 피우는 다래는,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꽃 대신 잎 색을 하얗게 바꾸어 광합성을 포기하면서까지 매개 곤충들에게 '꽃이 피었음'을 온몸으로 알린다. 생존과 번식에 '진심으로' 진심인 식물들. 그 노력이 가상하고 처절하여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곤충과 동물도 더 하면 더 했지 식물보다 덜 하지는 않다. 배자바구미는 몸 색깔이 새똥과 비슷하여 천적인 새의 눈을 교묘하게 피한다. 보호색을 이용한 일종의 위장술인 셈. 그런데 '똥이 움직인다?' 똑똑한 새들은 배자바구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공격한다. 새똥 위장이 통하지 않으면 배자바구미는 다른 방법을 시도한다. 바로 죽은 척 작전. 바구미들은 죽은 척의 대가인데, 단순히 '척'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모든 신경이 마비되면서 가사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몸을 바쳐 펼치는 메소드 연기가 연말 연기대상 감이다. 죽지 않으려 이렇게까지 애쓰는데 이 애들의 목숨을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멀리서 보면 새똥같은 배자바구미(왼쪽), 칡을 먹는 배자바구미는 평생을 칡 위에서 산다.(오른쪽)
배자바구미 한 쌍이 2세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명이 소중하여도 결코 관용을 베풀 수 없는 녀석이 있다. 바로 모기. 특히 우리 집까지 굳이 침입해 온 모기에게까지 관용을 베풀기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다. 그 녀석이 활개 치도록 놔두었다가는 최소 이틀은 물린 데를 긁느라 삶의 질이 몹시 떨어질 것이므로. 그래도 집안 구석에 거미줄을 치거나 마룻바닥을 기는 작은 거미는 잡지 않는다. 우리가 취침 중에 먹게 되는 거미나 작은 곤충들이 꽤 많다는 걸 안 후로는 쟤네가 내 입 안으로 기어들어오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거미는 그냥 살려주기로 한다. 어차피 우리 집에는 먹을 게 별로 없어서 며칠 후에 보면 집을 떠났거나 빈 거미줄에서 아사한 채 발견되기 십상이니까.




올여름과 가을 폭염으로 미국흰불나방이 급증했다. 보송보송 하얀 털이 난 애벌레들이 내 일터도 장악해 버렸다. 쓰고 독해서 다른 곤충들은 엄두도 내지 않는 수수꽃다리 잎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있다. 벚나무와 뽕나무처럼 맛있는 잎사귀는 진작에 갉아먹혀 생선가시처럼 잎맥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지천에 깔린 애벌레 녀석들 때문에 나무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땅속에서 번데기를 만드는 이 애벌레들은 때가 되면 땅 위로 몸을 날리는데, 이때 머리나 몸 위로 툭툭 떨어져 붙기 일쑤다. 만지거나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어 나도 조심하고 참여자들도 주의하도록 신경 써야 한다. 수업 중에도 아이들 몸에 벌레가 앉지는 않았나 나무나 풀밭에 애벌레가 있지는 않나 호기심에 만지는 이는 없나 수시로 살펴야 해 품이 배로 든다.


지천에 깔린 미국흰불나방 애벌레가 못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밟아 죽이지는 못하겠다. 수업을 마치고 한참 후에야 옆구리깨에서 옷을 타고 기는 애벌레를 발견하고서도 종이에 싸서 땅 위에 놓아줄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지금 있는 개체 수의 반 정도는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생각 들면서도 '저 녀석들도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일 텐데' 하는 마음에 그저 지켜볼 뿐이다. 지구가 너무 더워져서 그 수가 많아진 거라니 어쩌겠는가. 이러나저러나 지구를 함부로 쓰고 있는 우리 때문인가 싶다. 그러니 애꿎은 애벌레들을 나무라기 전에 나부터 잘하자!



미국흰불나방 애벌레(왼쪽), 애벌레의 공격에 잎을 다 먹혀 앙상해진 벚나무 두 그루(오른쪽) - 안타깝다. 내년에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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