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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실패가 두려운 마음에 대하여

by 안초연

줌이 꺼지자마자 생각했다.


조졌다.


바탕화면을 보면서 엉엉 울었다. 아직도 심장은 뛰고 있었다. 울음이 난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서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이 정도 경력이 쌓이면 말이 눈치껏 알아서 나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나는 아직도 그럴싸하지 못하지? 10분이 지나도 달아오른 얼굴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은 가고 싶던 회사의 1차 면접 날이었다. 인사팀에서는 시국이 시국인 만큼 화상면접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오후 5시 면접이었지만 아침 7시부터 깔끔한 옷을 차려입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화장을 한 것도 몇 달만이었다. 포트폴리오를 여러 번 읽으면서, 나올법한 질문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오후 1시쯤에는 목이 쉰 것만 같았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인지, 면접을 앞두고 있어서 두근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면접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에 친구들은 나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다. 아마 10년 전이 떠올랐겠지. 무서웠다.

거진 1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무렵, 영화가 정말 하고 싶었던 나는 참고서에 내 이름보다 가고 싶은 학교의 이름을 먼저 적는 정신병자였는데, 요란하게 꿈을 꾸고 있던 까닭에 전교생이 내 이름은 몰라도 내가 지망하는 학교를 알 정도였다. 어째 저째 그 대단한 학교의 서류를 뚫었고, 지옥 같던 실기도 뚫었고, 대망의 면접을 앞두고 있던 날. 친구들은 그 학교 정문에 플래카드 비슷한 걸 걸어주었다. 면접 잘 보고 오라고.


영화나 소설, 드라마라면 그런 응원까지 받으면 눈치 있게 붙어줘야 할 텐데... 나는 그런 응원까지 받았음에도 시원하게 떨어졌다. 면접을 보는 중간에도 아, 조졌다는 생각을 했는데, 신이문역 근처 굴다리 밑을 지나가면서 엉엉 울던 장면이 여전히 잊히질 않는다. 간절히 마음을 먹고 누군가의 응원을 받아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겨우 이런 나라서.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아서. 차라리 꿈같은걸 안 꿨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니까 간절하게 뭘 바라지도 않았으면 이렇게 아프지도 않았을 텐데.


그렇게 대입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던 그 계절, 삼삼오오 모여 친구의 합격을 기원하며 손수 플래카드를 만들었던 그 마음마저 짓이겨 버린 거 같아 나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대입 실패 후 친구들은 내 눈치를 봤고, 나는 면목이 없어서 더 죽고만 싶었다.


그 후로 영화에 대한 짝사랑을 접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미련이 많은 만큼 시원하게 접... 지는 못했다. 결국 스무 살, 남몰래 그 학교 시험을 한 번 더 봤다. 물론 그때도 면접에서 시원하게 떨어졌다.


그덕에 나는 면접이라고 하면 치를 떠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평소에도 다른 사람보다 말이 빠르고, 혀가 짧아 발음이 뭉개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긴장하면 횡설수설하는 것 또한 면접에서는 치명적이었다. 글로 쓰면 그럴싸해 보이는데 입만 열면 어딘가 모자란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 그건 언제나 내 앞길을 막고 있는 커다란 벽이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긴 개뿔. 그건 모두 개소리인 게 분명했다. 나는 대국민 계 모임 로또 당첨도 간절하고, 이직도 간절한데 어떤 것도 된 게 없단 말이지. 그러니까 여기서 내가 대체 여기서 뭘. 뭘 더 해야 할까.나만큼 간절했던 인간이 또 어디 있다고. 그런 말을 처음 한 사람을 만난다면 당장에라도 드잡이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1차 면접 후 엉엉 울었지만 그럼에도 면까몰은 사이언스라고 의문의 합격을 했고, 최종면접을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물론 너무 떨어서 최종면접 역시 나오자마자 조졌다고 생각했지만. 서류부터 인적성, 1차 면접, 2차 면접까지, 무려 두 달을 걸쳐 치러진 기나긴 전형이었다. 높고 커다란 건물 사이를 지나면서 떨어질 거면 서류에서 떨어지지. 왜 괜한 사람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담.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괜히 억울한 마음이 들어 또 울었다.


12년 전 그 학교 앞에 응원 플래카드를 걸어줬던 친구는 내가 최종면접을 치른 저녁, 카톡 한 통을 보내왔다. 제주도에 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 후 친구는 면접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엽서 한 통이 도착했다.


얼마 전엔 서핑을 했어. 선생님이 계속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더라. 파도도 못 잡고 계속 넘어지기만 했는데도 말이야.


(중략)


내가 보는 넌 하려고 하는게 있으면 어떻게든 무섭게 해내는 사람이더라. 네가 그 회사에 가서 행복할 수 있다면 꼭 갔으면 좋겠지만, 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너무 너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해.


침대에 누워 물먹은 엽서를 여러 번 읽었다. 그러니까 그 회사의 직원이 된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더는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 실패들을 완전히 잊을 수 있을까. 아무 일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처럼 그저 둥둥 떠다니며 살 수 있을까. 떠다니면서 내일의 내게 계속 다정할 수 있을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정말 과연.

문득 제주에 있는 친구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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