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 앱 글램의 3년 간 고군분투기
'심심한데 소개팅 앱이나 만들래?'
웬만한 컴퓨터 공학과나 디자인과 출신이라면 해볼 만한 대화이다. 연애만큼 전체 지향적인 시장이 또 어딨겠는가. 기획은 달달할 것이고 데이터 분석은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사업화는 다른 문제다. 소개팅 앱만큼 경쟁 심한 곳도 없을 것이다. 이 시장은 대 난투극이 펼쳐지는 곳이다.
그 시장에서 현재 1위를 기록 중이다.
글램을 기획한 지 만 3년이 지났고 이제 우리가 이 시장에서 No.1을 기록 중이다. 국내 유저 수 1위. 요즘엔 '국내 1위'라는 말이 흔해빠져 너덜너덜해졌지만 우린 이 말 한마디 써보려 3년을 고군분투했다. 인력 수 역시 경쟁사 대비 50% 수준이다. 군대, 사업, 결혼은 몰라서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초 경쟁 시장은 웬만한 인사이트 갖고는 돌파하기 힘들다. 은행 대출금과 이자를 극복하면서 힘든 순간들이 참 많았고 할 말도 참 많지만 우선 그래프 하나로 전달하고자 한다.
작은 시장, 고된 출발
우리의 시작은 여느 창업가들과 같았다. 우린 돈이 없었다. 월급은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물리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식비가 필요했고 서버 및 인터넷 이용비 등 잡비도 필요했다. 월세 보증금을 모두 소진하고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투자, 대출, 국가 지원 사업 3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소개팅 앱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아이템이 아니었다. 내 생각에 그건 '단기 캐시카우'로 철저히 잘못 정의되어 있었다. 우린 투자를 받지 못했고 대출은 정말 무서워서 '절대 빚은 지지 말자'라고 다짐했기에 투자와 국가사업에 계속해서 지원했다. 합격하면 2000~3000만 원 정도는 지원받을 수 있었다.
2014 창업선도대학 지원 사업 탈락
2014 창업 맞춤형 사업 지원 사업 탈락
2014 서울시 청년창업센터 지원 사업 탈락
2014 Global-K 스타트업 지원 사업 탈락
2015 창업선도대학 지원 사업 탈락
2015 창업 맞춤형 사업 지원 사업 탈락
2015 서울시 청년창업센터 지원 사업 탈락
2015 스마트벤처창업학교 지원 사업 탈락
2015 Global-K 스타트업 지원 사업 탈락
2016 창업선도대학 지원 사업 탈락
2016 글로벌 창업기업 육성사업 지원 사업 탈락
2016 창업사관학교 지원 사업 탈락
2016 창업 맞춤형 사업 지원 사업 탈락
계속해서 국가사업을 지원하다 보니 글쓰기 실력이 많이 늘었다. 국가 지원 사업을 신청할 때면 터무니없는 항목들이 있는데(IPO 계획이라든지, 해외 진출 전략 등) 이 역시 그럴싸하게 작성했다. 2015년 쯤 되니 서류는 거의 합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면접은 달랐다. 심사위원들은 나와 내 아이템을 믿지 않았다.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그걸 사람들이 실제로 합니까?'였다. 사람들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모두 자기만의 확증 편향적인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니까. 초기 2년간 투자자를 찾고 국가 창업 지원을 받아보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가끔 해외 시장에서 데이팅 서비스 투자 소식이 들리면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지속해서 지원 사업에 탈락하며 몇 번씩 되뇌었다. 시장성이 없는 걸까? 우린 언제나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만남에 목마르지 않나? 대학교 졸업 이후 새로운 인맥 유입이 끊어지는 현상을 경험하며 몇 번을 되뇌어도 매력적인 아이템이라 생각했다. 당시 여러 소개팅 서비스들로 여러 사람을 만나보면서 그 믿음을 키웠다. 솔직히 시장에 대해 안다기보다 그 서비스로 인한 경험이 압도적이었다. '절대 빚은 지지 말자' 했던 다짐을 어기고 대출을 결심했다.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스타트업은 기술력을 통해 신용이 아닌 기술로 '기술 보증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린 심지어 그마저도 받지 못했다. 적합한 아이템이 아니라고 한다. 결국 대표자 연대보증과 함께 신용보증 대출을 받았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잠재력을 알고 싶다면 꼭 빚을 져보길 바란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빚은 그 존재 자체로 모든 걸 발휘하게 해준다. 자금은 확보했지만 어쨌든 빚은 빚이었기에 그 빚을 조금이나마 극복해보려 계속 창업 지원 사업에 지원했다. 그리고 결국 2016년 40여 팀 중 꼴지로 지원받을 수 있었다.
감사와 원망이 넘쳤다. 우린 거의 웃지 않고 일했는데 이 순간엔 정말 어깨를 얼싸안고 좋아했다. 우린 독하게 일했고 꼴찌로 들어가 1등으로 마무리했다.
그럼 글램은 어떻게 소수의 인원으로 1위를 했을까?
비즈니스는 프레임 싸움이다.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무엇을 지향점으로 정의하는지에 따라 모든 결과값이 달라진다. 우리는 그간 3가지 큰 프레임을 전환했고 이 3가지 전환으로 인해 우리의 현재가 존재할 수 있었다.
1. 매출에서 유저 프레임으로
사업 초기에 결제가 되고 매출이 만들어지는 건 인생에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짜릿한 경험이다. 나 역시 출시 후 첫 3,900원 결제의 순간은 아직 남아있다. 우린 매일 매출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으로 하루의 업무를 시작했다. 매출을 목표로 했고 매출에 매달렸다. 망하긴 싫었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여야 했다. 우린 점점 집착하고 있었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매출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어느 날 관리자 페이지의 일일 데이터 페이지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 페이지는 매일 00:00 시에 리셋되며 그날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페이지였다. 그런데 그 페이지가 버그로 인해 멈춰버린 것이다.
당시에 정말 깊은 불안에 빠졌다. 대출금과 그 이자가 만든 불안에 빠진 창업자가 하는 일은 중독자처럼 일일 매출 데이터를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줄곧 아침에 일어나, 점심 먹으며, 저녁 먹으며, 퇴근 전에, 자기 전에 일일 매출을 확인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일일 매출에 따라 하루 기분이 조울증 환자처럼 오락가락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고치기엔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한다. 내 상황은 마치 흡연자가 흡연을 못 하는 것, 주식에 빠진 사람이 주가 그래프를 볼 수 없게 된 것과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을 혁신의 날이라 칭하고 싶다. 데이터를 볼 수 없게 된 난 불안감을 이기려 업무에 더 집중했다. 시간이 며칠 흐르자 어느샌가 나의 불안감은 사라지고 디자인에 더 신경 썼고 알고리즘에 더 몰두했다. 난 그 관리자 페이지를 고치지 말라 했고 그 페이지는 아직도 2년 전 어느 순간에 멈춰있다.
돌이켜보면 '매출을 올려라'는 말만큼 무식하고 의미 없는 말도 없다. 매출은 결과값이기 때문이다. 결과가 아닌 본질에 집중해야 결과값이 상승한다. 우린 소개팅 앱을 캐시카우로 정의하지 않았고 매출에 대한 모든 언급을 삼가기로 했다. 매일 공유되던 모든 매출 값을 숨기고 팀 전체가 매출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 대신 본질인 고객과 연결에 집중했다. 우린 이를 위해 당시 팀원들이 가지고 있던 무제한에 가까운 서비스 재화를 모두 회수했다. 그건 고객들의 경험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우린 고객과 다른 앱을 쓰고 있었다. 우린 고객들과 같은 입장에서 앱을 쓰기로 했다.
2. 안정에서 리스크 프레임으로
성장하는 데이터는 필히 수렴하기 마련이다. 성공의 그래프를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곡선일 테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건 필시 미친 사람처럼 수렴과 변화 사이에서 날뛰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어느 날 그래프를 보니 3개월까지는 지속 성장이 보였지만 그 후는 수렴과 하강이 예정되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로벌 No.1 서비스의 국내 진출 소식이 들렸다. 현재 능력과 방식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는 곧 드러났다. 개선이 아닌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저 그런 한국의 소개팅 앱'으로 위키백과에 한 줄 남기긴 싫었다. 어떻게 하지? 단순히 '혁신해야 한다'는 메시지로는 팀을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의 성공을 가로막는 건 실은 실패가 아니라 어중간한 성공이다. 안정과 향수를 좋아하는 우린 역설적으로 이를 극복해야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이 향수를 역이용하기로 했다. 지금으로부터 2년 후인 2020년, 우리 조직의 패배를 가정했다. 향수에 패배를 대입시킨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그 시점에서 실패에 대한 회고록을 써보기로 했다. 나는 이를 '타임머신형 회고'라고 이름 지었다.
"2018년을 기점으로 어느 새부턴가 점점 떨어지는 유입과 ARPU를 겪었다. 팀 분위기는 점점 악화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DAU 및 매출은 정체 이후 감소했다. 성장곡선은 정말 순식간에 멈췄다.
이제 와서 우리의 실패 원인을 살펴보면 14명의 인원조차 하나의 프로덕트에 집중하지 못한 점, 2017~2018년 간 시장이 성장해서 유저와 매출이 상승하는 걸 마치 우리가 잘해서 그런 것인 줄 착각한 점이었다. 2017년부터 이미 우린 유저 피드백을 보지 않고 있었다. 모두 무제한의 서비스 재화를 가지고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고 그래서 당연히 유저의 경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글로벌은 이미 강력한 퍼스트 무버들과의 경쟁으로 이길 수 없었다. 국내조차도 해외 경쟁사와 수많은 내수 경쟁 앱의 등장으로 시장에서 점차 점유율을 잃어갔다. 따지고 보면 그때 국내 서비스들을 경쟁사로 생각했던 게 우리 스스로 수준을 낮추는 결정적인 착오였다.
매출 감소를 염려해 프로덕트를 혁신하지 못하고 망설이며, 제품 개선 속도를 잃어 가는 사이 우린 이미 전쟁에서 패배했다."
회고록은 진실하게 미래의 패배를 느끼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마치 어제 일어난 일 같았다. 이미 한번 팀을 해체해 본 뼈 아픈 트라우마가 다시 날 괴롭혔다.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패배하기 전 마지막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는 회고록을 팀원 전체에게 발표했으며 동시에 전쟁을 선언했다.
전쟁 선언 후 매출 언급을 하지 않기로 한 것처럼 국내 서비스들을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린 글로벌 빅 플레이어들을 경쟁사로 설정했다. 또한 진행 중이었던 사이드 프로젝트를 즉시 폐기했으며 프로덕트를 관장하는 모든 팀원이 오전 10시부터 최소 오후 10시까지 일했다. 전쟁 선언의 결과 우린 고객에 대한 시야, 더 빠른 속도, 하드코어한 정신, 집중과 포기 그리고 높은 꿈을 얻었다.
3. 내부에서 외부 프레임으로
사실 나는 오프라인에서 이성을 대하기가 너무 어려워 소개팅 앱을 사용하게 된 케이스다. 사업을 시작한 30살 때까지 한 번도 낯선 여성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온라인은 결국 오프라인의 확장이지 않은가. 서비스 데이터를 보며 그로스 해킹하는 건 개선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이를 통해 제품을 혁신으로 이끌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데이터 분석가님에게 이런 얘기를 던졌다.
'서비스 내부 데이터만으로는 혁신이 힘들 거 같아요. 저는 앞으로 내부 데이터를 덜 보고 외부 오프라인 경험을 늘릴 테니 데이터 분석가님께서 내부 데이터를 최대한 책임져 주세요.'
데이터 분석가님 역시 내 말에 동의했다. 난 외부 실제 세상이야말로 인사이트의 바다라고 정의하고 집중하기로 했다. 이후 소위 말하는 헌팅 즉, 오프라인 만남을 매주 경험하기로 했다. 오프라인 헌팅의 유통기한이 35살이라고 가정한다면 당시 나에겐 약 3.6년의 시간만이 남아있었고 주로 따지면 54 ✕ 3.6 = 194번. 거기에 예기치 못한 연애, 명절, 체력적 한계 등을 감안해 3분의 1을 제할 시 129번의 오프라인 경험이 내 인생에서 남은 횟수였다.
하지만 오프라인에 취약한 타고난 천성은 어찌하지 못했기에 나를 혁신시켜 줄 전문가가 필요했다. 나는 오프라인 모임 앱에서 '헌팅 모임'을 운영한 경력이 있는 사람과 친밀 관계를 유지하며 든든한 TF팀을 꾸렸다. 사실 오프라인 만남이라는 게 생각보다 비용과 체력, 자존감 리소스가 크고 상위 플레이어들이 주도하는 시장이라 그리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소위 ROI(투자 대비 이익)가 현저히 낮은 곳이다. 3~4시쯤 되면 남자들은 거의 길거리 전단을 돌리듯 영업사원형 헌팅을 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인간 존재에 대해 회의감과 함께 욕망의 위대함에 대한 찬양이 공존했다. 어쨌든 난 사명감으로 이태원에서부터 부산, 강남 그리고 헌팅 술집부터 클럽, 감성 주점 등을 매주 경험하며 인사이트를 캐내었다.
그중 하나의 인사이트를 예시로 공유하자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이다. 남성들은 이성에게 말을 걸 때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워딩'에 신경 썼지만 사실 이미 여성들은 답을 내려놓은 상태가 많았다. 바꿔 생각해보면 워딩 등 언어적 요소에 신경 쓸 리소스를 비언어적인 패션이나 표정, 스타일링의 리소스에 투자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이를 소개팅 서비스에 적용해보면 결국 '프로필'이 핵심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만남으로 이어지게 하는 건 채팅으로 어떤 흥미로운 인사를 하는 것보다 프로필 사진 속 인상, 표정, 패션, 스타일링이었다.
전부 나열할 순 없지만 이런 식의 인사이트를 계속해서 획득하면서 사람과 사람, 만남, 애정 관계에 대해 깊은 인사이트를 가질 수 있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위 공식대로면 약 1년 반 동안 54번의 오프라인 만남을 가졌고 1회당 대략 7~8명의 이성과 대화를 나눴으니 약 400여 명의 이성과 길고 짧은 대화를 나눈 것이다. 나중엔 구면인 상대들도 자주 보게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드라마나 SNS의 미디어에서 보이는 정보들을 통해서 연애나 이성에 대한 많은 편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러한 막대한 경험을 통해 내가 그간 갖고 있던 사랑과 이성에 대한 많은 편견이 깨지고 재정의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는 단순히 서비스의 개선을 넘어서서 업의 본질과 우리 조직이 나아갈 방향까지 고민하고 재정의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이 글은 1위가 되어 축하하기보다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글이다. 아직 국내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는 바꿔야 할 문화들이 많고 갈 길이 멀다. 무분별한 결제 유도, 희망고문식 매칭 등 아직 이 시장을 개선하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여전히 광고에는 가짜 뉴스라던지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가 판을 친다.
앞으로 사랑은 형식에서 탈피해 내향적인 본질에 집중될 것이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어버렸고, 연애조차 자유연애의 시대가 도래하며 선택이 되어버릴 것이다. 연애 or Not, 결혼 or Not의 양자택일 구도는 점점 옅어지며 서로를 소유하고 싶으면서도 독립적이고 싶은 인간의 욕망처럼 종속과 자유를 오가는 사랑의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생태계의 도래에 있어 가장 사명감을 가져야 할 서비스 중 하나가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다.
곧 다가올 우리의 프레임은 사랑에 관한 게 아닐까 한다. 수많은 앱 서비스 중 가장 사랑에 가까운 서비스가 데이팅 서비스니까. 모든 카테고리 중 가장 섹시한 데이팅이 캐시 카우가 아닌 사랑을 위한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사랑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라는 우리 조직의 사명으로 글램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