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인근 지역 중학교에 강의를 나가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입소문이 나서 꽤 많은 학교를 다녔다. 올해는 더 많은 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왔다. 2028 대입 제도 개편안 등 입시 변화가 예상되면서, 입시 정보를 원하는 중학교 학부모들이 늘어난 것도 강의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여러 학교에서 중3 학부모와 학생들을 만나며 드는 생각은 안타까움이었다. 마음이 짠했다. 수능 제도의 변화로 인해 현 중3 학생들은 고3이 되었을 때 재도전이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중학교 내신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는 정시 입결이 좋은 학교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여전했다. 현 중3과 중2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걸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도 있었고, 여전히 학습 분위기가 좋은 학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글을 통해 현 중3이 고3이 되어 재수를 하기 힘들어진를 [수능 제도 변화 중심]으로 간략히 알아보고자 한다. (이번 이야기는 지난 번 교육부가 발표한 [2028 대입 제도 개편 시안]을 기준으로 본 변화를 담고 있다. 최종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존 수능은 국어 / 수학 / 사회탐구 / 과학탐구 모두 선택형 수능이었다.
[기존 수능(~현 중3까지)]
국어 : 공통[문학 + 독서] + 선택[화법과 작문 / 언어와 매체]
수학 : 공통[수학1 + 수학2] + 선택[미적분 / 기하 / 확률과통계]
사회탐구 : 생윤/윤사/경제/정법/사문/세지/한지/세계사/동아시아사 총 9개 과목
과학탐구 : 물1/화1/생1/지1/물2/화2/생2/지2 총 8개 과목
선택형 수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상위권 대학들은 수능 과목별 평균에서 해당 학생이 얼마나 먼 곳에 위치하는 지를 알려주는 [표준점수]를 활용하여 정시 모집을 한다. [표준점수]는 해당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의 평균이 낮고(시험이 어려워서) 내 점수는 높을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 구조다.
그래서 수능 만점자보다 한두 개 틀린 수험생이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하기도 한다. 어떤 과목을 선택하고, 그 해 수능 시험에서 그 과목 응시자들의 수준에 따라 매년 [표준점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가 몇 년간 공부한 과목 응시자들이 올해 시험을 못 보고 나는 잘 보면 [표준점수]가 매우 높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현재는 '변환표준점수'라는 방식을 사용하는 대학도 있고, 국어와 수학의 경우에는 표준점수를 산출할 때 가산점 등 복잡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근데 이번 2028 대입 제도 개편 시안은 이런 문제가 있다고? 단칼에 없애자! 라고 밝히고 있다. 모든 과목의 선택 과목을 일거에 없애다니. 대단하다.
[2028 수능(현 중2~)]
국어 : 문학 + 독서와 문법 + 화법과 작문
수학 : 대수 + 미적분1 + 확률과 통계
사회 : 통합사회 1과목
과학 : 통합과학 1과목
가장 중요한 변화는 현재 자연계열 희망 학생들이 선택하고 있는 [미적분]과 [기하] 과목이 빠졌다는 점이다. 그 자리를 현재 인문계열 희망 학생들이 주로 시험보는 [확률과 통계]가 차지했다. 지금은 자연계열 갈 친구들은 [미적분/기하] 중에 시험을 보고, 인문계열 갈 친구들은 [확률과 통계]를 선택해서 시험을 보는데 중2 부터는 현재 인문계열 친구들이 보는 시험과 동일한 시험을 보게 되는 셈이다.
자, 현재 중3인 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생각해보자. 이 학생은 자연계열 학과에 갈 예정이다. 그렇다면 수능 시험에서 수학을 [미적분]을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도 대부분의 자연계열 희망자들이 미적분을 선택한다. (가산점 얘긴 복잡하니까 그냥 매우 유리하다, 정도만 기억하자) 근데 이 학생이 고3 때 수능시험을 봤는데 망했다고 치자. 그럼 재수를 해야 하는데, 재수할 때는 수능 시험 과목이 [확률과 통계]로 바뀐다. 재수하는 한 해 동안 수능용 [확률과 통계] 공부를 새로 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두 번째 문제는 사회탐구 9과목과 과학탐구 8과목이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1 때 전국 학생들이 모두 배우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시험이 생긴다는 점이다. 앞서 예를 든 자연계열 희망 중3 학생이 고3이 되어 치르는 수능 시험을 다시 상상해보자. 이 학생은 자연계열을 가고자 했기에 과학탐구 과목 중에 두 개를 골라 수능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화학1'과 '생명과학1'을 선택하고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안타깝지만 수능을 망했다. 그럼 재수를 해야한다. 그런데 분명 과학 선택과목 2개를 열심히 공부했건만 재수를 할 때 뜬금없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공부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현 중3과 중2의 수능 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중2는 내년도에 교육부에서 공개할 수능 예상 문제 등을 통해 3년간 새로운 수능 준비를 할 수 있다. 또한 수능 시험을 못 봐서 재수를 하더라도 같은 수능이기에 성적이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중3은 다르다. 중3은 앞서 말한대로 고3이 되어 보는 첫 수능에서 망하면 그 다음 1년간 새롭게 공부해야 할 과목이 생겨난다. 인문계열 재수생은 난데없이 [통합과학]을 공부해야 하고, 자연계열 재수생은 뜬금없이 [확률과통계]와 [통합사회]를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는 거다.
그리하여, 나는 올해 인근 지역 중학교를 돌며 재수를 당연하게 활용하는 수능 중심의 고등학교, 내신 따기 어려운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 정말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인근 지역 공부 잘한다는 고등학교에는 미안하지만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학급에 절반 이상 재수를 하는 그런 학교는 학습 분위기가 너무나 좋다 하더라도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안타깝고 짠하다. 변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재도전 기회의 일부를 상실한 중3 학생들과 학부모들. 여러모로 불명확한 상황 속에 고등학교를 선택하고 준비하고 다녀야 하는 그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다음 글에서는 남은 겨울 방학 기간에 중3 학생들이 꼭 하고 가야 할 고등학교 준비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겠다. 재수가 힘들다면? 한 방에 가면 된다.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