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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Jun 26. 2024

우연한 연결,『아무튼,비건』,김한민

타자와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

  우연과 우연이 겹쳐져 전혀 생각지도 않은 책과 연결되었다. 나는 평소 고기를 너무나 좋아한다. 고기 먹는 것을 넘어 고기에 대해 공부하고, 고기 굽는 방법을 연구한다. 어느 순간 고기를 굽고 요리하는 게 먹는 것만큼 좋아졌다. 가족들은 이런 나를 '고기아빠'라고 부른다. 


  이런 내가 비건주의자의 책을 읽고 있다. 물론 책 한 권 읽는다고 비건주의자가 되거나 내가 먹는 고기의 양이 줄어들진 않겠지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접하고 잠시나마 그 시선으로 세상을 달리 보게 되었다.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 비건이 되는 것은 현대사회가 단절시킨 풍부한 관계성을, 직관적 연결 고리를 회복하는 하나의 사회운동이다."


  작가는 시종일관 '연결'을 강조한다. 그것이 타인이 되었든, 타자가 되었든 간에 모든 것과 단절된 세상 속에서 연결을 꿈꾼다. 


  나는 즐겨 먹진 않았지만 몇 년 전까지 개고기를 먹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근처 산 중턱에 위치한 보신탕집을 종종 가곤 했다. 더 옛날엔 함께 일하는 분들과 부러 보신탕집을 찾아가기도 했었다. 매번 찾아서 먹진 않았지만 또 먹을 기회가 오면 외면하지 않았고, 먹을 땐 맛나게 먹었다. 


  그러나 몇 년 전 부모님이 개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개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 김한민 작가의 키워드 '연결'을 통해 이 상황을 돌이켜 보았다. 부모님이 개를 키우기 전엔 개와 나는 연결되지 않았던 것. 나에게 모든 개는 단절된 존재들. 그래서 개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 집에 개가 들어온 후엔 상황이 달라졌다. 부모님이 키우는 개와 어딘가에서 식용으로 길러진 개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떤 개와는 연결되고, 어떤 개와는 단절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부모님 집에 들어온 작은 개 한 마리를 통해 개라는 종 전체와 연결되었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 사이 우리 집엔 고양이 한 마리가 생겼다. 2년 전 아장아장 걷던 영국 태생 고양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고양이 한 마리와 가족이 된 후, 길에서 만나는 그 어떤 고양이도 남이 아니었다. 우리 집 고양이와의 연결은, 고양이라는 종 전체와의 연결이었다. 캠핑장에서, 산책길에서, 산모퉁이에서 고양이를 만나면 이제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이 고양이도, 저 고양이도 이제는 남이 아니다. 우리는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근무했던 고등학교에는 '길고양이 돌봄 동아리'가 있었다. 학교 안에 자리를 잡은 몇 마리 고양이를 물심양면 키우는 아이들이 모여 동아리를 만들었다. 녀석들은 등교 시간 한참 전부터 운동장 한 켠의 씨름장 모래를 들쑤셨다. 밤새 고양이들이 싸 놓은 용변을 치우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모금 행사 금액과 용돈을 모아 고양이마다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고양이들이 추위와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부터 동물들과 연결되어 있던 셈이다. 


  그 때 그 아이들을 통해 '동물권'에 관심을 가졌고, 동물권이 신장되어야 그 위에 있던 인권도 함께 신장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나는 동물과 연결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몸으로 행동으로 그 연결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이제 나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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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 닭, 소, 오리, 돼지와 연결되지 못했다. 앞으로도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한 삶을, 편안한 환경에서의 삶을 살다가 가길 바라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거기에 힘을 보태기 위해 동물 복지 인증된 고기와 달걀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느 순간 그들 중 일부와 연결되어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 때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동물까지 연결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내가 연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들, 외국인 노동자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과 연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뜬금없지만 화성의 작은 공장에서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들, 대부분이 외국인이자 일용직 노동자였던 그들의 명복을 빌며 중언부언 글을 마무리한다. 책을 다 읽고 또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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