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정아 Feb 11. 2020

기침을 참고 슈퍼마켓에 다녀왔다

산전수전 겪은 뉴욕 생활, 이번엔 우한 폐렴이다.

감기 걸린 지 일주일 됐다.


밤마다 틀고 자던 래디에이터가 피부를 너무 건조하게 하길래 며칠 끄고 잤다가 걸린 가벼운 감기였다. 아직 뉴욕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오지도 않았고, 어차피 감기 걸리기 전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다가 걸린 거라 혹시나 하고 불안/염려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다른 해 같았으면 감기에 걸렸어도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 가는 게 눈치 보일 일은 없었을 텐데, 요즘은 일시적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민감한 시기라 동네 슈퍼에 가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미국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상적으로 쓰지도 않고, 유명인이 얼굴을 가리려고 마스크를 쓰는 일도 없다. 병원에서 마스크를 권유해서 쓰는 환자가 아니면 마스크 쓸 일이 없으니 마스크를 썼다 하면 중병에 걸린 환자처럼, 마치 환자복을 입고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듯 보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뉴스를 뒤덮은 다음 날, 두 달의 긴 겨울 휴가를 끝내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한국에서 샀던 낱개 포장 마스크가 세장 들어있는 팩을 건넸다. 혹시나 사람들이 다 쓰고 있으면 혼자 소외되지 말고 쓰라는 말과 함께. 남편도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받아 들고 갔지만, 퇴근 후에 하는 말은 아무도 쓴 사람이 없었단 사실이다.


생각해보니 요즘 분위기에 동양인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오히려 더 눈에 띄고 환자로 볼 것 같다. 나만 해도 가장 최근 지하철에 탔을 때 마스크를 쓴 동양인 여자를 두 명 봤는데 왠지 피하게 됐다. 뉴욕에서 저렇게 마스크를 쓴다는 건 이곳의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듯한, 다시 말해 최근 본국에서 온 듯한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같은 동양인인 나조차도 조심스러웠다.


감기 걸린  사나흘 되었을 , 얼른 나으려면 건강하게 챙겨 먹어야겠단 생각에 동네 슈퍼에 다녀왔다. 샐러드용 채소와 닭가슴살  건강한 식재료를 사기 위해  건데, 고기와 채소 모두 차가운 냉기가 나오는 곳에 있어서 자꾸 기침이 나오려고 했다. 공공장소에 있는 동안엔   번의 기침도 하지 않기 위해 꾹꾹 참았다. 필요한 것들만 사서 급하게 집에 와서야 깜빡하고   것들이 생각났다. , 살다 보니 감기 때문에 이렇게 눈치를 보는 일이 있구나 싶었다.


요즘 우버를 부를 때도 동양인 이름이나 성을 가진 사람한테는 차도 오려고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우버를 타고 퇴근하는 남편의 성이 독일계여서 다행이다 생각하는 현실이 씁쓸했다. 무지한 미국인들이 동양인이면 무조건 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라고 생각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어디에나 무식한 인간들은 있는 법.

얼마 전 기사에 올라온 이 사진도 분명 내가 타고 다니는 7 트레인일 것이다 [출처: New York Post]

일주일 중 주말 이틀만 집밥을 먹을 수 있는 남편에게 맛있는 걸 해주고 싶은 생각에 금요일엔 큰 용기를 냈다. 이제 감기도 거의 나았고, 지난주 넷플릭스로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며 "두루치기가 뭐야?" 하며 맛있겠다고 하는 남편에게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해 먹이고 싶었다고 쓰고 사실은 내가 먹고 싶었다고 읽는다.


그럴듯하게 만들 재료를 사기 위해선 집에서 지하철로 서너 정거장 거리의 한국 슈퍼에 다녀와야 했다. 나가기 전 옷을 단단하게 입고 목도리도 둘렀다. 한국이었다면 마스크까지 했을 텐데 아쉽다. 며칠 만에 집 밖에 나가 최대한 빠르게 걷는 중에 혹시라도 기침이 날까 봐 목에 힘을 줬다. 별로 춥지 않은 날씨였는데 너무 껴입어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슈퍼에 도착하고 보니 그곳에 거의 일 년 만에 왔단 사실을 깨달았다. 일 년 만에 왔지만 크게 변한 건 없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비슷비슷한 물건들이 나를 반겼다. 내 앞에서 이것저것 고르는 동양인 여자가 끊임없이 기침을 해댔다. 한국인 교포 같았는데 기침 소리부터가 이미 목이 쉴 데로 쉰 쇳소리였다. 그녀는 마음껏 기침을 하며 과자를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했다. 아니 이런 사람도 이렇게 잘만 돌아다니고 있는데 난 뭐 때문에 그렇게 눈치를 봤던가.


빠르게 장을 보고 지하철 역으로 갔다. 밖에 있는 지하철 플랫폼에 서서 맞는 바깥공기는 시원했다. 추우면 더 기침이 나올까 봐 더 두텁게 옷을 입었던지라, 찬 바람을 맞으니 상쾌했다. 지하철에 타니 건너편에 유모차를 갖고 탄 남자가 나를 대놓고 경계한다.


내가 탔던 순간부터 날 쳐다보더니 유모차를 계속 자기 쪽으로 당기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아기가 저렇게 어리니 특히 걱정이 될 수도 있겠지 싶다가도, 그래도 나한테 너무 티 내는 거 아닌가? 뉴욕에서 동양인이 가장 많이 타는 7 트레인에 타고 있는 사람이?

일주일에 쐬는 바깥바람이 유난히 상쾌했다

뉴욕은 9/11 테러가 났었기도 하고, 미국의 상징적인 도시다 보니 테러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종종 맨해튼 여기저기에서 작은 테러나 테러를 시도하는 사건이 나곤 하는데, 그럴 때 무슬림들이 이런 시선을 겪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한 건 유모차를 갖고 탄 젊은 아빠도 무슬림 출신으로 보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위험 가능성을 경계하게 되나 보다. 문득 나는 그들을 저렇게 봤던 적은 없나(없었던 것 같은데) 돌아보게 되었다.


뉴욕에 사는 동안 사스와 에볼라가 지나갔다. 에볼라 때는 특히 뉴욕에 확진자가 생기며 뉴스에서 실시간으로 질병관리 지정병원 안팎에서 하루 종일 특별 보도를 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 허리케인 샌디가 왔을 땐 맨해튼 남쪽의 많은 지역이 침수되어 페이스북에도 며칠 째 샤워를 못 하고 있다는 글들로 넘쳐났다. 2005년 겨울 지하철/버스 노조가 파업해서 모든 뉴요커들의 발이 묶인 적도 있다. 버스가 다니지 않던 도로엔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뉴욕 밖에서 오던 사람들은 출퇴근도 못하고 가게들은 문을 닫고 아수라장 전쟁터 같았다. 몇 년 전엔 맨해튼 지하철 안에서 얼굴을 칼로 긁고(slashing) 도망가는 사건이 유행하던 때도 있었지만 결국 지나갔다. 이번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루빨리 그날이 오길 기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29년 전 교통사고의 수수께끼가 풀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