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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Mar 12. 2020

미국에 사는 동양인이라서

코로나보다 무서운 인종차별

3년 전 봄, 난 일본에서 혼자 벚꽃 여행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옷을 사고 외국인 택스 프리 계산대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카운터 뒤에 남자 직원이 나타나 "여기는 외국인 면세 전용입니다. 저 쪽으로 가세요." 하는 것이다. 내가 서 있던 줄은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길게 늘어서 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가 세 번째 큰 소리로 말하며 나를 콕 집어 눈을 마주치고 양 손으로 저 옆으로 가시라고 했을 때서야 나한테 말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제야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내 여권을 보여주니 그가 깜짝 놀라 죄송하다고 하고는 황급히 내국인 카운터로 돌아갔다.


다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기 시작하는데 순간 머릿속에 많은 감정이 스쳤다.


미국에서 15년을 살았어도 외국인, 이방인처럼 보이는데, 온 지 며칠밖에 안 된 타국에서는 현지인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일본에서 20년을 산 백인 혹은 흑인 옆에 동양인인 내가 서 있다면 아마 한눈에는 내가 현지인처럼 보일 것이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아이러니했다.


백화점에서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동안 미국에 오래 살며 감내하고 있는 피로감에 대해 생각했다.

 

일본에서 10년, 20년을 산 한국인들도 완벽하게 현지인처럼 융화되지 못하게 한다는 폐쇄적인 문화에 대해서도 들어봤지만, 문화적인 건 또 다른 이야기고 지금은 한눈에 겉으로 보이는 융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다. 내가 일본이나 중국 혹은 대만 같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 가서 산다면 적어도 겉모습은 현지인같이 잘 섞였을 것이다. 그런 삶이 미치도록 그리운 때가 있다. 바로 요즘 같은 때다.


뉴욕에서 난 관광객처럼은 보이지 않을지언정, 미국에 여행 온 외국계 백인이나 흑인보다는 더 외국인처럼 보일 것이다. 그건 20년, 30년을 살아도 아마 변하지 않을 일이다.

15년 후, 이제 한국보다 더 편안한 뉴욕이라고 생각했는데 (Eloi_Omella/Getty Images)

여의도만 한 크기라는 맨해튼은 내 손바닥처럼 훤하다. 큰 꿈을 갖고 온 뉴욕에서 20대 대부분의 시간과 30대 중반까지의 시간을 보내니, 이제 몇 년에 한 번 가는 한국보다 뉴욕에서 더 안전함을 느끼고 편안하다.


익숙해서 오는 안정감일 것이다.


20대 때는 일상처럼 새벽 세 네시에 지하철을 타고 다녀도 두렵지 않던 뉴욕인데, 요즘은 낮에도 밖에 나가는 게 처음으로 겁이 난다. 뉴욕에 사는 동안 수많은 사건들이 지나갔지만, 요즘만큼 동양인이 혐오의 중심에 섰던 적은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3월이 되어서야 뉴욕에 상륙했다.


나는 1월 말부터 이미 조심하느라 외출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3월이 되어 뉴욕에 온 코로나바이러스는 거의 매일 확진자가 두배로 늘며 빠르게 번지고 있다. 확진자가 느는 것만큼 자주 들리는 건 동양인이 여기저기에서 공격을 받았다는 뉴스다.


엊그제는 브루클린에서 중국인 남성이 마스크를 쓴 두 명의 괴한에게 찌른 칼에 수 십 번이나 맞은 후 간신히 살아났고, 어제는 무려 한인타운 인근 34가에서 동양인 여성이 마스크를 안 썼다는 이유로 다른 여자에게 공격을 당했는데 턱뼈가 나갈 정도로 얼굴을 맞았다고 한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동양인들에게 소독약을 뿌리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 지르고 공격하는 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 무서울 정도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동네에 나가는 것도 두려워졌다. 맨해튼에 마지막으로 나갔던 게 1월 말이었으니 한 달 반 동안 안 나간 셈이다. 뉴욕에 십 년 넘게 살면서 이 정도로 외출을 안 해본 적은 처음이다.


어제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나가보니 그 사이 봄이 온 것처럼 날씨가 따뜻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고 있는 듯했다. 마스크를 쓴 사람도 안 보였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알레르기 약을 사기 위해 약국에 갔다. 동네에서 묻지 마 폭행이나 인종차별 혐오 공격을 당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슈퍼에 들렀다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무서운데 (출처: NY Post)

뉴욕에는 세계 셀 수 없이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살고 있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만 해도 800개 국어가 넘는다는데, 세상에 언어가 800개 넘게 있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수많은 문화권에서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그중엔 말보다 손이 앞서는 이도 있을 것이고 그보다 더 위험한 것도 할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와 인종차별자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런 이곳의 생태에 맞게 뉴스나 언론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독감 같은 것이니 손만 깨끗이 씻으면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최대한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팩트만 다루고 있다. 그렇게 한다고 불만이 많은 한인들도 많이 있다. 한국처럼 투명하게 모든 걸 밝히고 확진자의 동선을 낱낱이 오픈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한국인들처럼 차분하고 질서 있게 대응할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고 있는 지금도 이렇게 동양인 혐오 범죄가 계속 늘어나는데, 만일 무시무시한 병이라고 언론에서 호들갑을 떤다면 그야말로 사회는 패닉에 빠져 동양인을 상대로 당장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고, 동양인이 사는 동네나 빌딩에 불을 지르거나 총격전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미국이고 뉴욕이다. 그렇게 되면 되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는 게 이곳의 현실이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인종차별. 동양인 혐오. 상상하지 못했던 후폭풍이다. 내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벌어지고 있어 두렵다.


뉴스에서 애꿎은 동양인들이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소식을 볼 때마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동양인인 게 문제가 되진 않았을 텐데 싶어 씁쓸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나라에 와서 살고 있는가 하는 원론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미국에 사는 게 평생 수시로 찾아올 인종차별에 대한 정신적 피로감을 떠안고 갈만한 가치가 있는가 곱씹게 된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전염성이 강한 병을 피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망가졌다. 여행이 취소되고 가족 방문 계획이 취소되고, 당장 생계에 지장이 있을 사람들도 점점 늘어날 것이다.


나도 1월부터 거의 모든 활동이 다 스탑 된 상태로 지내고 있는 중이었는데, 3월이 되어서야 온 바이러스가 잠잠해지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걱정이다. 전염병 없던 우리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걸 보니 곧 봄은 오고 꽃은 필텐데, 일상은 언제쯤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 하루빨리 모든 게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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