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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호 노무사 May 29. 2019

22. 임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할 수 있나요?

-통화지급의 원칙-

은서야. 이제 임금이라는 이슈에 대해서 힘든 고비는 거의 다 지나갔다. 이제는 임금을 어떻게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줄게. 

근로기준법에서는 임금을 지급하기 위한 4가지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데, 한 가지씩 따로따로 편지를 보내려고 해. 

지금부터 보내는 4회 차의 편지는 분량이 많지 않으니까, 힘냈으면 좋겠다. 알겠지?     

먼저 근로기준법 제43조를 적고서 이 편지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근로기준법 제43조(임금지급)]
① 임금은 통화(通貨)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
② 임금은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를 정하여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임시로 지급하는 임금, 수당,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금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43조를 읽어보면 임금을 지급할 때 지켜야 하는 4가지 원칙을 끄집어낼 수 있어. 통화지급의 원칙, 직접지급의 원칙, 전액지급의 원칙, 매월 정기일 지급의 원칙이 바로 그 4가지 원칙이야.      

오늘은 통화지급의 원칙에 대해 글을 써서 보낸다.      


원칙 


최첨단의 기술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지금 시대에도 이 원칙을 설명해야 한다는 게 한 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다. 예전에 너도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거야. 어떤 우유회사에서 임금을 우유로 지급한 적이 있어. 그리고 우유 쿠폰을 지급한 회사도 있었지. 어떤 은행에서는 식사권을 임금 대신에 지급한 적도 있었단다. 나는, 예전에 그 뉴스를 보면서 화폐의 시대가 아닌 물물교환의 시대가 떠올랐단다.       


얼마 전에 어떤 단편 소설을 봤는데, 카드 포인트로 임금을 지급하는 장면을 묘사했더라고. 웃픈 장면이랄까. 재밌게 읽으면서도 가슴 한 편에서는 씁쓸함이 밀려 오더라.      


“사람들이 이 카드를 써야만 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가 뭔가? 딱 하나만 꼽는다면 뭐라고 생각하나?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자신 있게 얘기했죠. 네, 이 카드를 쓰면 포인트를 두배로 적립해 줍니다. 그랬더니 회장이 이러더라고.”
“뭐라고요?”
“그래? 그게 그렇게 강력한 유인이 되나? 사람들이 포인트를 그렇게 좋아하나?”
“다들 좋아하지 않나요”
“그렇죠. 그래서 또 자신있게 대답했지. 네 좋아합니다!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알아요?”
“글쎄요”
“그렇게 좋은 거면 앞으로 일 년 동안 이 차장은 월급 포인트로 받게.”

-제21회 창비 신인소설당선작,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당연히 임금은 통화로 지급되어야 해. 


지금과 같은 화폐경제의 시대에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더라도 그건 상식, 아니겠니? 법에서는 임금을 물건으로 주지 말라고 아예 못을 박은 거야. 임금을 물건으로 주면, 그 물건이나 상품권을 통화로 바꾸기 위해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할 거야. 그 과정에서 수수료 때문에 당연히 가치가 떨어지겠지. 물론 물건의 가격도 시간에 따라 들쭉날쭉 일 테고 말이야.

통화지급의 원칙은 이러한 사용자의 갑질을 막고,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단다.      


밑에 지방법원에서 판결한 내용을 하나 올려놓을게. 이런 건 대법원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단다.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니까, 말이야.      


임금의 일부를 통화가 아닌 쿠폰과 식사권으로 지급한 것은 통화불 원칙 위반에 따른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춘천지법 2018.1.17. 선고 2017고단979 판결)     


물건이 아니라, 어떤 채권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도 금지되고 있어.      


사용자가 근로자의 임금 지급에 갈음하여 사용자가 제3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을 근로자에게 양도하기로 하는 약정은 그 전부가 무효임이 원칙이다.(대법원 2012.3.29. 선고 2011다101308 판결)     


그런데, 통화라는 게 뭘까? 강제 통용력이 있는 화폐를 말하는 거야. 

상품교환권, 식권, 승차권, 주식, 어음, 수표 등은 화폐가 아니니까, 임금으로 지급할 수 없다는 거지. 단지 은행 발행 자기앞 수표는 우리가 거래할 때 거의 현금과 똑같이 취급되니까 근로자가 동의하면 지급할 수 있다고 봐야 할 거야.     

최근에 퇴직금이나 임금을 동전으로 지급해서 문제가 된 사건도 알고 있지?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체결할 때, 지급방법도 명시하도록 하고 있어. 의무사항이지.       


근로기준법 제17조(근로조건의 명시) ② 사용자는 제1항제1호와 관련한 임금의 구성항목ㆍ계산방법ㆍ지급방법 및 제2호부터 제4호까지의 사항이 명시된 서면을 근로자에게 교부하여야 한다...      


그러니까, 근로계약서에서 임금을 근로자 명의의 통장에 지급하는 것으로 돼 있거나, 지금까지 계속 통장으로 임금을 지급했으면 임금을 통장에 입금하기로 합의한 거라고 봐야 해. 그 경우에도 현금을 직접 지급하겠다고 하면, 통장으로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어.      


예외     


그런데,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의 규정을 보면, 단서가 하나 붙어 있단다. 보이니?      


[근로기준법 제43조(임금지급)]
① ...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별도의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하는 것도 가능하단다. 

그런데 이미 근로계약서에서 통화 얼마를 통장에 입금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는 조금 특별한 경우에 해당할 거야. 

예를 들어 특별 상여금 같은 걸 지급할 때 이 조항을 활용해서 단체협약에 규정을 둘 수 있지. 단체협약으로 정한 경우에는 특별상여금 같은 임금을 현물이나, 주식, 상품교환권 등으로 지급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어쨌든, 임금을 통화가 아닌 현물이나, 주식, 상품권 등으로 지급하는 건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이해하면 돼. 



오늘은 통화지급의 원칙에 대해 살펴봤어. 

임금을 물건으로 주는 건 말도 안 돼. 그런데 그마저도 지급하지 않는 열정페이는 또 얼마나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인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힘들더라도 상식에 어긋나는 삶을 살아가지는 말자.

노동을 했으면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임금은 통화로 지급해야 한다. 

오늘의 편지. 끝. 안녕.     


브런치 매거진에 올린 글을 엮어서 "누더기가 된 임금(부크크)"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발간의 기회를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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