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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베 Nov 02. 2018

와인동경 1

샤토 무통 로칠드 2013

서버가 정중하게 샤토 무통 로칠드 2013을 따랐다. 알만한 사람은 아는 그 와인이다. 감격과 희열. 동경의 대상에 이르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대단한 성공 후에나 맛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이 와인에 동경을 심어준 건 안 사장님이었다.


안 사장님은 학구파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책과 잡지를 먼저 판다. 거기에 실험과 경험을 더해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관심사가 맞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살을 붙여 나간다.


나는 경험파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일단 해본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람들을에게서 지식을 전달받는다. 마지막으로 책을 보며 정리하고 깨닫는다. 커피와 와인에 대한 관심이 생겼을 때도 일단 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하루 종일 떠들어도 이야깃거리가 마르지 않는 사람이었다. 카페에서 일하는 틈틈이 커피와 와인 이야기를 해줬다. 관련 책을 여러 권 빌려줬고 급기야 와인 아카데미까지 다니게 해줬다. 기초가 쌓였다.


와인도감을 함께 보는 일도 잦았다. ‘와인도감’이란 책이 실제 있는 건 아니다. 왼쪽 페이지에는 와인 사진이 크게 들어가고 오른쪽 페이지에 상세한 설명이 적힌 책이다. 구성이 곤충도감이나 식물도감과 다를 바 없어서 우리끼린 와인도감이라 불렀다. 이 책을 볼 때마다 안 사장님은 유독 한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갈망하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크… 이걸 언제 맛볼 수 있으려나. 그랑 크뤼 1등급을 말이지. 크…”


술꾼 특유의 감칠맛 나는 ‘크' 추임새가 안 사장님의 말버릇이었다.


다른 와인에 대한 설명은 어렴풋하지만 샤토 무통 로칠드에 대한 내용만은 구구절절 다 기억이 난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라투르, 샤토 오브리옹, 샤토 마고와 함께 단 다섯 개뿐인 보르도 그랑 크뤼 1등급 와인 중 하나라는 것, 매년 바뀌는 라벨이 모두 유명 화가의 작품이라는 것, 1855년 보르도 와인 등급이 정해지고 지금까지 등급이 격상된 유일한 와인이라는 것 등등.


그중 가장 여러 번 설명해준 내용이 바로 등급 격상에 대한 내용이다. 1855년 프랑스에서 세계만국박람회가 열렸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의 명으로 보르도 와인에 등급을 매겨 출품한다. 당시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킨 61개 샤토가 1~5등급으로 나뉘었다. 1등급은 단 네 곳. 현재까지 그 등급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73년 딱 한 번만 변동이 있었다. 샤토 무통 로칠드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라선 것이다. 120년 가까이 걸려 이룬 쾌거였다.


필립 로칠드 남작이 시도한 혁신의 결과다. 그는 스무 살이란 어린 나이부터 경영을 맡았다. 혁신은 직접 병입과 고유 라벨 부착이었다. 지금이야 의아하겠지만 당시엔 파격에 가까웠다. 중간 상인이 권력을 잡고 있던 시절이다. 와인 생산자는 와인을 양조해 오크통째 이들에게 넘겼다. 병입도, 라벨링도 이들의 몫이었다. 품질 관리가 잘 되었을 리 없다.


1924년 필립 로칠드 남작은 다른 와인 생산자들과 연합해 이 관례를 깬다. 생산자가 직접 병입하겠다고 선언하고 라벨도 직접 만들어 붙였다. 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그들의 횡포에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샤토 무통 로칠드 최초의 라벨.


라벨 디자인은 유명 포스터 디자이너 장 카를뤼가 맡았다. 와인 생산자 동맹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화살과 양머리가 늠름하게 붙어있다. 무통은 프랑스어로 양이란 뜻이다. 이 라벨은 1924년 빈티지부터 1944년 빈티지까지 사용되었다.


1945년 변화가 찾아왔다. 프랑스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 라벨을 제작한 것이다. 포도 작황마저 기념할만한 했다. 디자인은 젊은 화가 필립 줄리앙이 맡았다. 이후 샤토 무통 로칠드에는 매년 새로운 라벨이 붙는다. 마르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앤디 워홀 등 당대 최 미술가들이 참여했다. 2013년 빈티지는 단색화로 유명한 이우환이 작업했다.


이우환 화백이 작업한 샤토 무통 로칠드 2013년 빈티지 라벨.


한국 화가 최초로 이우환의 라벨이 붙었다고 해서 2013년 빈티지를 마신 것은 아니다. 인연의 끈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 편에 계속...






모든 라벨을 확인하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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