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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베 Mar 29. 2021

교토 와인 여행 1

내추럴 와인과 교토

(2019년 초에 다녀온 여행에 대한 기록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팬더믹이 종식되어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합니다.)



교토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변치 않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마음이 놓였다. 이번 여행은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굳이 맛집을 찾아가지 않았다. 기요미즈데라 같은 명소도 찾지 않았다. 일정 중에 딱 두 군데만 들르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내추럴 와인 바 코모레비노와 내추럴 와인 전문 매장 에델바인. 애초에 여행의 목적이 정해져 있었다. 목적은 내추럴 와인이었다.


내추럴 와인을 좋아하게 된 후 다녀온 도쿄는 완전 다른 도시야.


도쿄에 다녀온 친구의 이 말 한마디에 일본 여행을 결심했다. 도쿄는 내추럴 와인 바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내추럴 와인 전문 매장도 꽤 많다. 조금 힙한 업장은 내추럴 와인을 취급한다고 했다. 요요기에서 사흘 머물면서 근처만 돌아다녔는데 점심, 저녁으로 내추럴 와인만 마셨단다. “그런 행복이 없었다”고 말했다. 요요기의 한 내추럴 와인 전문 매장에서 구입한 일본 내추럴 와인 한 병을 꺼내면서 자랑스럽게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그 매장에는 “내추럴 와인이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고르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추럴 와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9년 기준) 2년 남짓이다. 원래 와인도 위스키도 좋아하는 애주가다. 주변에 애주가가 넘쳐서 새로운 술 트렌드를 접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크래프트 맥주 열풍이 불기 시작할 즈음에는 닥치는 대로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마셔봤다. 싱글몰트 위스키 바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할 즈음부터 싱글몰트 위스키에 빠져 살았다. 버번, 일본 위스키, 니혼슈, 한국 전통주도 비슷한 시기에 애주가들의 관심이 쏠렸다. 관심사가 같으니 할 이야기가 많았고 한 번의 쏠림을 겪은 후에 각각의 취향을 찾아갔다.


그런데 내추럴 와인만은 조금 다른 양상이다. 애주가들이니 내추럴 와인에 대해 안 들어봤을 리 없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셔는 봐도 딱히 이전 패턴대로 쏠림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호불호가 너무 갈려서인지 생각만큼 회자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추럴 와인을 단순 유행으로만 치부했다. 트렌드의 최전선이라고 믿는 이들이 특히 더 그랬다. 자신의 입에 맞지 않는데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있으니 유행 좇기로 비하해버렸다. 반대로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부류도 있다. 말 그대로 맹목적이다. 나는 후자다. 내추럴 와인을 첫 모금 머금은 그 순간부터 각성이 왔다. 신세계였다.


내추럴 와인이란

내추럴 와인은 과거 방식대로 만드는 와인을 말한다. 여기서 ‘과거’란 산업화 이전쯤으로 보면 된다. 산업화 이후 양조 방식은 크게 바뀐다. 기술과 기계와 화학 물질로 여러 가지를 제어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양조법의 핵심은 배양된 효모다. 덕분에 와인은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얼마든지 원하는 맛을 인위적으로 내는 것이 가능하다.


내추럴 와인을 여러 가지로 정의하지만 ‘배양된 효모를 쓰지 않고 포도에 묻어 있는 효모 그대로 발효시켜 만든 와인’이 가장 맞는 말이다. 와인은 인류가 기록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시던 술이다. 포도에 묻은 효모가 발효를 일으켰고, 누군가 우연히 그걸 맛본 후부터 전파되고 발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효모는 말 그대로 어디에나 존재한다. 미생물이니 공기 중에도 생물과 무생물의 표면에도 묻어 있다. 효모는 당을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포도 역시 천연 효모가 묻어 있고 포도의 당분은 효모의 좋은 먹이가 된다. 속설에 따르면 효모는 그 지역의 기운을 모두 흡수한다고 한다. 내추럴 와인의 매력은 여기서 시작된다.



‘아마도’ 효모가 지역의 기운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내추럴 와인은 개성이 뚜렷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똥 냄새가 난다거나, 외양간 냄새 때문에 못 마시겠다는 사람도 있는데, ‘아마도’ 효모가 그 지역 농장과 농토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어서가 아닐까. 계속 ‘아마도'를 붙이는 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니어서다. 술과 관련된 속설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경우가 참 많다. 이 속설을 믿게 된 것은 몇 해 전 ‘토끼소주’에 얽힌 어떤 일화를 겪은 후부터다. 토끼소주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던 친구가 마시자마자 뉴욕 지하철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토끼소주는 뉴욕에서 만들어지는 한국식 증류 소주다. (2021년 기준, 현재는 본거지를 옮겨 충주에서 생산 중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전까지는 이렇게 믿을 예정이다.


맛을 따로 컨트롤하지 않으니 컨벤셔널 와인(내추럴 와인과 구분하기 위해 보통의 ‘와인’을 굳이 이렇게 부른다)보다 산미가 강한 편이다. 상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한 것도 있다. 여러 가지로 호불호가 갈리는 게 당연하다.


자연 효모 그대로 발효시키는 건 '첨단' 시대에 맞지 않는 발상이다. 포도 농사 성패에 따라 해마다 와인 품질이 달라지고 대량 생산은 아예 불가능하다. 농약을 뿌리면 포도 표면에 묻은 효모가 죽을 것이니 농약을 쓰지 못하고, 농약을 쓰지 않으니 밭에 잡초가 무성해진다. 심한 곳은 매연 때문에 트랙터 같은 농기계마저 굴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일일이 손으로 포도를 수확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다. 농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려는 입장에서는 단점인데, 이상하게도 이것이 너무도 명백한 장점이 된다. 유기농 인증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야만 하는 구조다. 대량 생산만 포기하면 와이너리마다 전혀 다른, 개성 넘치는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넘치는 개성과 적은 생산량. 마니악한 문화가 형성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그 어느 문화권에서도 대중화되지 못했다. ‘힙스터’ 문화라기보다 마니아 문화에 가깝다.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게 (2019년 기준) 2~3년쯤 되었고 내추럴 와인만 취급하는 전문 매장은 거의 없다. (2021년 기준, 현재는 내추럴 와인 전문 매장 여러 곳이 성업 중이고 수입사도 꽤 늘었다. 일반 와인 숍에서도 내추럴 와인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문화 전파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문 와인 바는 꽤 생겼다. 청담동, 한남동, 성수동 등을 중심으로  내추럴 와인을 취급하는 업장도 상당히 늘었다. 며칠 전에 우연히 들른 연남동 어느 후미진 곳에 위치한 선술집에서도 내추럴 와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추럴 와인과 사랑에 빠졌지만 한국에서 즐기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날로 유통되는 내추럴 와인 종류는 늘고 있지만 10년 이상 자리 잡은 시장에 비해 그 종류는 턱없이 적다. 각 와인마다 개성이 명확하게 달라서 더 다양한 종류를 맛보고 싶지만 물량이 받쳐주지 않는다. 내추럴 와인에 관심을 가진 지 2년여 만에 한국에서 유통되는 거의 모든 종류를 다 마셔봤을 정도다. 이제 막 태동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한국 시장이니 어쩔 수 없다. (2021년 기준, 현재는 '한국에서 유통되는 거의 모든 종류를 다 마셔봤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가 수입되고 있다.)


굳이 와인 마시러 일본 여행을 간다고?

구글맵에서 일본 대도시 중심으로 내추럴 와인 바와 내추럴 와인 전문 매장을 검색했다. 매력적인 매장이 여러 군데였지만 확 끌리는 곳은 교토의 내추럴 와인 바 코모레비노였다. 내추럴 와인에 빠진 사장님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다. 바에만 앉을 수 있고, 그나마 열 석이 채 안 된다. 혼자서 운영할 수 있는 크기였다. 다른 한 곳은 내추럴 와인 전문 매장 에델바인이다. 관광객들이 굳이 갈 일 없는 한적한 동네에 있다. 사진으로만 봐도 내추럴 와인 종류가 수백 가지는 돼 보였다. 여기다 싶었다.


2편에 계속



*2019년 <더 네이버>에 기고한 본인의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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