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 나는 금사빠인 데다가, 갈대 같은 사람이다. 나의 장래희망 결정 굴곡만 봐도 그렇다.
어린 시절 나는 많은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를 꿈꿨다. 하지만 조금 더 본격적이었다. 피아노 선생님은 나를 예중에 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내 실력은 예중에 가기엔 부족했고, 선생님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피아노만으로는 모자랄 수도 있어서, 초등학생이면서 화성학을 배웠다. 나는 피아노 연습이 끝나면 탁자에 앉아서, 배운 것에 맞춰 음계를 쌓아 나갔다. 때때로 선생님이 피아노에서 화음이 잔뜩인 무언가를 치면, 정신없이 오선지에 친 것을 옮겨 그렸다. 이러다간 정말 예중에도 가고, 피아니스트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엄마를 불러, 내게 수학에 재능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수학경시대회를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선생님 말씀에 나는 곧장 수학경시대회를 보게 되었다. 내 인생 첫 수학 경시대회는 성적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100점 만점 (더 높을 수도 있다)에 18점 정도였다. 아마 낮은 점수부터 상을 줬다면 난 수상권 안에 드는 성적이었을 거다. 절망적인 결과에도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끝이 없는 피아노와는 달리, 수학 문제는 답이 있었고, 풀고 나면 끝이 났다. 내 힘으로 풀어내고 나면 짜릿했다. 이거구나. 나는 단박에 수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피아노 학원에 더는 나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취미로라도 칠 수 있게 멈추지 말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리고 중3이 된 어느 날, ‘엘러건트 유니버스’라는 책을 보고 나는 끈이론에 흠뻑 빠져버렸다. 솔직히 뒷부분은 이해가 가지도 않았다. 완독도 하지 않았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포기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냥 그 책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순식간에 장래희망을 또 바꾸었다. 물리학자가 되기로, 그중에서도 특히 더 소수에 해당하는 이론 물리학자가 되기를 꿈꿨다. 그리고 몇 달 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내가 간 고등학교에는 간단한 프로그래밍 수업이 있었다. 물론 그 수업에서 나는 그때 프로그래밍이라 말할 수 없는... 정말 기초적인 것만 배우고 있었는데, 금사빠인 나는 프로그래밍과도 금방 사랑에 빠졌다. 나는 혼자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물리냐, 프로그래밍이냐. 그러나 이 고민은 다 쓸데없는 고민이 되었다. 대학에 가자 나는 공부가 지겨웠다. 그리고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고민과 전혀 상관없는 산업디자인학과로 과를 정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은 나 스스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부모님은 걱정은 하셨어도, 반대는 하지 않는 분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나의 결정과 번복에 속이 꽤나 끓었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바꾸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언제고 생각이 바뀌면, 거기에 맞춰 살면 그만이었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가고, 별로다 싶으면 다른 것을 찾았다. 나는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을 고민했고, 내가 생각한 대로 살았다. 주변에서는 내가 선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그리고 자존감도 자신감도 높았다. 결정적으로, 이렇게 내 멋대로 살았어도 큰 일탈이나 사고가 날 일이 없었다. 왜? 나는 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고만장함은 일생일대의 문제 앞에서 무너졌다. 나는 아이를 낳고 싶은가?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순간 찾아왔다. 남편과 나는 전세를 연장하느냐, 집을 사느냐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지금 집은 둘이 살기엔 적당하지만, 식구가 늘어나면 살 수 없는 크기의 집이었다. 우리 둘이 살 때엔 문제가 없었다. 예를 들어, 구조상 부엌이 너무 좁아 식탁 놓을 자리가 없는 집이었지만, 우리 둘이라면 상관없었다. 거실 소파 테이블에서 먹으면 되니까. 아쉬운 점이 있어도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식구가 늘어나면 살기 어려웠다. 때문에 전세냐 자가냐 기로에서, 우린 가족계획을 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아이를 낳을 건가?
의사결정에 거침이 없던 나는, 이 문제에선 멈춰 섰다. 도무지 내 마음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문제였다. 앞으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문제. 게다가 이 문제는 여태까지 내가 살아왔던 방식을 적용할 수 없었다.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아이를 낳았다가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다. 번복이 불가능한 만큼, 나는 내 마음을 잘 파악해서 신중히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인데, 내 마음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내 마음을 모른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그럼 대체 누가 안단 말이야.
나는 주변의 인생 선배들에게 자문을 구하기 시작했다. 왜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셨나요? 듣다 보면 내 마음에 탁 들어오는 무언가가 있을 거야. 다행히 회사에서 나는 막내에 가까운 포지션이었고, 주변엔 엄청 많은 아이 부모가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물었고, 많은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대답을 들으면 들을수록 막다른 길에 온 기분이었다.이때쯤에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왜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사람들은 엄청 고민을 한다. 정말 필요한 게 맞나, 필요하다면 언제 필요한가, 어떻게 살 것인가, 모든 것이 고민 포인트다. 그런데 아이를 왜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내 주변만 그런 걸까? 내 주변엔 어쩌다 아이가 생긴 사람들, 또는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지 왜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유를 설명해준 사람들 중 그나마 ‘왜’에 적합한 대답으로는,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어떨지 궁금해서’가 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렇다. 갖고 싶은데 이유가 어디 있나. 갖고 싶으니까. 그냥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보았지만, 답은 알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을 몰라서 미칠 지경이었다. 남편과 상의를 할 수도 없었다. 내 마음을 모른다는데, 남편이 무슨 재간으로 알아낸단 말인가? 나는 결국 내 마음을 모른다는 문제로 고민하다가, 심리상담센터를 찾게 되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제 마음을 모르겠어요. 제가 무슨 마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