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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Dec 03. 2020

3-0. 상담 선생님도 내 마음을 알아내는 해답은 없다

내 마음을 알기 위해 시작하는 개인 심리상담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매일같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정말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만나면 해답을 봤다. 해답은 말 그대로 해답이었다. 앓던 이가 빠지듯, 고구마로 답답한 목이 사이다로 내려가듯 말이다. 보겠다 결심하는 게 어려웠지, 보고 난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해답지엔 내가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가 있었다. 나는 해답을 읽고, 이해하려고 애쓰고, 다음번엔 비슷한 문제가 나와도 풀 수 있도록 기억해두었다.


아이를 낳고 싶은가? 인생의 난제가 찾아오자, 나는 해답지가 간절했다. 고민은 충분히 했다. 혼자서도 매일 고민하고,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지겹도로 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민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면 시험시간이 끝나가는 것처럼, 전세 재계약 시점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어서 결정을 해야 해!! 시간에 쫓기던 나는 해답지를 찾듯,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상담 선생님은 내 마음이 어떤지 알고 계실 거야. 아니, 내 마음은 몰라도 적어도 내 마음을 알아내는 방법은 아시겠지. 내 인생 첫 심리상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구글 검색결과. 하물며 세상에서 제일 간단한 지뢰찾기 같은 게임에도 공략집이 있다. 인생을 바꿀 문제인데, 여기에도 공략집이 있겠지!




상담 첫날, 선생님은 차분하게 나에게 물었다. “왜 아이를 낳고 싶은지 아는 게 중요해요?”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잠깐 쳐다본 후 대답했다. “... 내 마음을 아는 것은 중요하니까요...?” 선생님은 곧 웃으며 말했다. “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에요. 하하. 그보다는 궁금해서 그런 거예요. 저도 부부상담을 많이 하지만, 이런 고민을 갖고 오신 분은 처음이시거든요.” 아아. 그렇구나. 그동안 나의 고생이 조금 이해가 갔다. 검색엔진에 백날 쳐도 사례를 찾을 수 없는 게 이런 이유였어. 이 주제는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선생님께도 흔한 주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회사 바로 뒷골목에 있는 상담센터로 뛰어갔다. 상담은 12주, 약 3달간 이어졌다. 선생님은 질문을 많이 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많이 했다. 나는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성실하게 상담을 받으러 가는 내담자였다. 성실하게 상담하다 보면 선생님이 나를 더 잘 알 수 있겠지? 그럼 언젠가 내 질문에 답이 짠 하고 나타날 거야. 선생님께 “저 제 마음을 드디어 알았습니다!!”라고 하는 마법 같은 순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출처 : 트위터 @rangwadis_949님. https://twitter.com/rangwadis_949/status/1086157903243833344?s=20


상담 선생님은 깔끔한 해답을 제시해주시지 않았다. (물론 이건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해답으로 가는 깔끔한 길도 알려주시지는 않았다. 상담은 아이 문제로 시작했다가도 걸핏하면 엉뚱한 곳으로 새고 말았다. 시작은 분명 아이로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 정신 차리면 대화 주제는 직업으로, 친구 얘기로, 남편 얘기로, 부모님 얘기로, 성격 얘기로, 과거 얘기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길을 잃은 사람처럼 주제 사이를 헤맸다. 그리고 여러 주제에서 내가 알고 있던 자아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자아가 싸웠다. 상담을 받는 동안 나는 개운하면서도 찜찜했다. 문제는 결국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가, 열개로 늘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상담이 끝나면 나에겐 항상 ‘생각해 볼 과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제가 아이와 직결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상담이 실망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내 의사결정에 필요한 여러 부분들을 짚어내어 물어보셨다.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나는 하나하나 아이와 무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결정해주지 않았고, 평가하지도 않았다.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한다고, 아이를 가질지 말지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는 어렴풋이 나 자신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아니, 알았다기 보단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 새로운 사실이라기 보단, 내가 생각보다 이런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독자라면, 이쯤 읽었을 때 화가 났을 것이다. 나는 어지간히 급한 성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하고 나니 마음은 알 수 있던가요? 아이를 낳고 싶은지 아닌지 알게 되셨나요? 상담은 도움이 되었나요? 대체 결론이 뭐예요?!??!?!?


성미가 급한 나와 같은 분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면, 상담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상담 당시에 결정은 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자세한 이야기는 이어지는 글에서 쓰겠지만,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이를 때, 상담은 많이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상담 직후의 내 결론은 여전히 모르겠다. 지금은 모른다는 것만 확실하다. 그리고 모를 때엔 아이를 낳아서는  되겠다.’였다. 와. 읽으시는 분들, 속이 터지시죠? 저도 그렇습니다. 이미 지난 일인데,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화면을 부수고 싶다. 더러워서 죄송스럽지만, 똥을 싸던 중 마무리를 짓지 않고 닦지도 않고 다시 옷을 입은 것만 같다. 어쩌다 보니 우리는 아이 문제와 무관하게 전세를 재계약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자연히 데드라인이 사라졌다. 데드라인이 사라지니 나는 더 내 마음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일정이 사라지니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나는 다시 미루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마지막 날, 선생님은 나에게 명함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결국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결정하게 되면 상담하지 않아도 되니 알려주세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께도 전 정말 몹쓸 짓을 했군요.


출처 : 무한도전. 선생님, 저를 용서하세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상담을 진행하며 이미 내 마음속 추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 아, 나는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 다만 그 때엔 단언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내 마음을 알기 위한 과정은 길고, 복잡했고, 어려웠다. 그리고, 다시금 이 문제를 또 마주한 이 순간, 나는 남편과의 협의를 위해 이 길고 복잡한 과정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나를 위해, 그리고 나와 남편을 위한 선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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