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낳는다면 생각해볼게.
상담 중 선생님은 가끔,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에 대해 물어보셨다. 나는 당시 주변에 상담받는 것에 대해 숨기지 않았을뿐더러, 상담내용을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답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때문에 친구들과 직장동료들의 생각에 대해 들을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끼리끼리 is 사이언스.
친한 친구의 청첩장을 받던 날, 우린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낮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여자 여섯 명이 모이니 대화가 끝이 나질 않았다. 모임이 청첩장 모임이니 만큼, 대화 중 아이 얘기가 나왔다. 너는 아이 갖고 싶어? 만약 남편이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러자 대학시절 내내 나와 한 방을 쓴 룸메이트이자 친구인 L이 말했다. 본인이 임신하고 출산하고 수유하고 육아하면 반대하지는 않을게. 과학기술은 발전하니까. 언젠간 남자도 아이를 낳겠지.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헐. 야,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 생각을 하냐?! 나도!!! 옛날에 나도 남편한테 그렇게 말했었어!!!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니!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기숙사 생활을 했다. 심지어 같은 고등학교에서 같은 대학으로 진학한 친구들도 많았다. 때문에 대학교에 가서도 모여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학생 시절이라 공부한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공부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모조리 친구들과 놀 수 있는 환경이었다. 우린 사감 선생님이 순찰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쯤 일어나 밤새 수다를 떨었다. 우리의 사춘기 시절은 모조리 친구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린 비슷한 걸 경험하고, 비슷한 얘기들을 했다. 가치관이 형성될 나이, 우리는 뒤엉켜지내며 쌍둥이처럼 그렇게 비슷한 가치관을 갖게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싱크로율이 높은 거 아니니!!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는 “왜 나만?!”이라는 질문이 가득했다. 아이는 혼자 갖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갖는 것인데,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부분은 왜 다 여자 쪽이냐는 것이다. 육아를 공평하게 나눈다고 가정해도, 이건 도무지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 불공평한 이벤트였다. 왜 나만 술 못 마셔? 왜 나만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신체적으로 바뀌어야 해? 왜 나만 임신으로 위한 각종 질환의 위험을 떠안아야 해? 왜 나만 고통스러운 출산과정을 거쳐야 해? 왜 나만 젖이 나와서 수유해야 해? 왜 나만??!?!?!!!
이런 성향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9시가 되면 간식을 나눠줬다. 학교에선 식당을 제공하고, 간식을 준비하고 나눠주는 것은 보통 부모님들이 몫이었다. 부모님들은 당번을 정하고, 간식 식단표를 짰다. 부모님들은 돌아가며 아이들이 있는 학교로 오셔서, 내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에게 간식을 나눠주셨다. 문제는 9시에 나눠주는 간식이 고칼로리인 부분이 아니었다. 가끔 몇몇 부모님들은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서로 다른 양의 간식을 줬다. 간식비는 똑같은데 왜 여자애들한테는 다른 양을 주시죠? 우리는 분명 친구 누군가의 부모님인 분들께 항상 따져 물었다. 그럼 보통 부모님들은 당황하시면서 미안하다고 하시곤, 같은 양의 간식을 주시곤 했다. 물론, 그렇게 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양껏 받아온 간식을 다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남자 사람 친구들이 있었고, 우린 받아온 간식을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임신과 출산은 성별에 따라 불공평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아이를 낳은 후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공평을 부르짖는 나 같은 아이에게, 아이를 낳는 것은 시작부터 너무 허들이 높았다. 게다가, 이게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친구들은 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 친구라서 비슷해진 걸까? 아니면 비슷해서 친구인 걸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했다. 내 친구들은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때문에 아이를 낳으려면, 이 불공평한 과정을 이겨낼 정도로 아이를 갖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