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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Dec 07. 2020

3-2. 아이 낳고 와도 승진할 수 있나요?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나의 커리어

이 글을 나의 회사분들이 읽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겠다. 회사 가기 싫다. 일요일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기 전 한숨이 나왔다. 하... 또 한 주가 시작되는구나. 지하철에 통조림처럼 실려 회사에 가면, 모니터 앞에 망부석처럼 앉아 일을 하고 온다. 출근하고, 일하다가, 퇴근하고, 저녁 먹고 나면 하루가 다 지나버렸다. 직장 생활하면서, 1.5에 가까웠던 내 시력은 0.6까지 떨어졌는데, 나는 이걸 잘 느끼지 못했다. 왜? 난 업무시간의 대부분을 자리에 앉아 모니터만 봤기 때문이다. 11년간 IT업계 직장인으로 일하고 나니, 내 시력은 정확히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기 좋은 시력으로 떨어졌다.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집에서는 회사 가기 싫다, 회사에서는 집에 가고 싶다. 이 두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정작 나는 일이 좋았다. 더 정확히는, 일하는 내가 좋았다. 어느 날 내가 백만장자가 된다고 해도 나는 회사에 갈 것 같았다. (다만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말이다.) 일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이것저것을 배우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더 발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나는 더 발전한 사람이 되었다. 회사에 기여하는 부분도 점점 많아졌다. 여러 프로젝트에 내 손길이 닿았고, 내 손길이 닿은 프로덕트가 쌓여갔다. 나의 시간, 나의 생각을 쏟아 만들어진 프로덕트들. 나는 그 프로덕트에 나를 조금씩 나누어 넣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출처 : 유퀴즈, bts여고생으로 유명한 김정현씨도, 미래의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꾼다. 다만 할 일이 너무 많아!

상담 선생님과 아이 문제를 얘기하다 보면, 나는 자꾸 ‘일하는 나’를 생각했다. 나는 ‘일하는 나’를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이보다 내가 더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던가? 일하는 나는 나에게 성취감을 줄 뿐만 아니라, 나의 분신 같은 프로덕트들도 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돈도 준다. 일거양득이 아니라 일거삼득이다. 때문에 ‘일하는 나’는 내가 나답게 사는 중요한 자아 중 하나였다. 나조차도 내가 이렇게 일에 집착을 하는 줄은 몰랐다. 상담 선생님은 자녀문제를 논하기 전에, 나의 번아웃을 걱정하셨다. 하지만 나는 번아웃이 걱정되지 않았다. 열심히 내 일을 하는 것, 이건 오히려 나의 기본 성향 아니던가? 오히려 일을 누군가가 못하게 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물론, 아이를 가진다고 해서,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워킹맘들을 보라. 심지어 내가 다니는 회사는 ‘가족친화 인증’을 받은 기업이었다. 한 때는 ‘여성이 다니기 좋은 직장’ 등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지난 직장생활을 돌아보건대, 아이를 가진 여성은 티가 났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더욱 티가 났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이를 가진 남성들은 구분이 어려웠다. 어느 날, 커피타임에 얘기하다 보면 어린아이가 있는 아빠라는 것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나는 이 부분이 묘하게 불편했다. 불쾌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이유는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에 불쾌한지 명확히 알 수 없었기에 불편했던 것이다.


아이를 가지는 문제를 논하기 전에, 나는 일하는 여성으로 나 자신을 지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거대한 사회 상황 속에서 일하는 나를 지킬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가 법적 근거를 통해 제공하는 ‘가족친화 인증’의 기준이 있다. 여기에서 사회가 여성과 남성에게 요구하는 수준 차이가 극명히 달라지는 부분을 알 수 있다. 아래는 가족친화 인증을 위한 대기업 및 공공기관의 자가진단 문항 중 일부이다 (https://www.ffsb.kr/ffm/ffmCertScoreSelfDiag1.do​ )


우리 회사는 채용, 승진 등을 담당하는 인사위원회에 여성이 포함된다 (남성은 당연히 포함되어있으므로)

우리 회사의 만 8세 이하 자녀가 있는 여성근로자의 50% 이상이 육아휴직 또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사용하였다

우리 회사는 최근 3년간 육아휴직을 사용한 근로자 중 남성 근로자 비율이 10% 이상이었다

우리 회사는 최근 2년간 출산 전후 휴가를 사용한 여성근로자 중 70% 이상이 1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하였다

우리 회사는 최근 1년간 배우자가 출산한 남성 근로자 중 90% 이상이 배우자 출산휴가를 3일 이상 사용하였다


이상하지 않은가? 읽기만 해도 여성 직원이 더 많은 휴직과 휴가, 근로시간 단축제를 사용한다. 물론 우리 부부는 이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남편이 더 적극적으로 육아를 하고, 육아휴직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나와 남편에게 기대하는 바는 다르겠지. 나는 아이를 낳고 난 후, 내가 원하는 대로 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이직할 수 있을까? 정말, 모든 것이 똑같을까?




다행히,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몇몇 훌륭한 여성리더가 있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착실히 쌓아가신 분들. 그런 분들을 볼 때면 종종 여성 직장인에 대한 사회 편견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그렇게 훌륭한 자질이 없기 때문에 사회 상황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닐까, 자괴감도 들었다. 하지만, 남편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남편은 이런 문제에서는 자유로워 보였다. 나도 그저, 자유롭게 내 상황만 신경 쓰고 싶었다. 아이 낳고 와도, 승진할 수 있나요? 아이 낳고 와도, 아이를 낳기 전의 나와 동일한 상황인가요? 정말로, 그렇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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