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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니 Dec 07. 2020

3-3. 엄마, 난 엄마가 너무 좋아.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어.

부모님은 나를 애정을 담뿍 담아 기르셨다. 엄마 아빠는 표현에 적극적인 편은 아니었지만, 표현은 필요치 않았다. 나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엄마 아빠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은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누구보다 나를 믿어주는 지지자였다. 엄마 아빠는 가끔 집안 형편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셨지만, 정작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산다고 생각했다. 특히 어린 시절엔 더 그렇게 느꼈다. 자고로 어린 시절엔 경제적인 제약보다, 부모의 제약이 더 클 때니까. 나는 부모님의 흔들림 없는 사랑과 믿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살 수 있었다.




엄마의 사랑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내가 집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이었는데, 나는 어딜 가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급히 뛰쳐나가는 딸이었다. 엄마는 내가 나가면 항상 현관까지 쫓아오셨다. 그리고는 내가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한참을 내려가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면, 문을 닫으셨다. 나중에 우연히 엄마가 문을 늦게 닫는 이유를 들었는데, 내가 나가면서 문이 쾅 닫히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셨다고 한다. 나는 그때, 엄마가 문이 닫힐 때 느끼는 감정이 어떨지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엄마는 내가 문을 나서는 순간의 내 기분마저 생각하며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엄마가 나가시면 나도 무조건 뒤따라가서, 현관문을 잡고 엄마가 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엄마는 계단에서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엄마의 발걸음이 들리지 않을 때쯤 문을 닫았다.


나는 문조차 함부로 닫지 않는 엄마의 사랑 속에서 컸다. 나와 동생을 키우는데 여념이 없었던 엄마는, 내가 직장을 다닐 때쯤 되자, 이제는 나를 키울 걱정이 없다고 하셨다. 예전엔 좋은 것보다는, 부족한 것이 없는지를 더 고민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자 더 이상의 고민이 없어졌다. 엄마는 전에 없이, 내가 좋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다 키웠다고. 딸이 너무 잘 커줘서 좋다며, 잘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좋다는 말만 내내 하셨다. 나는 한순간도 느끼지 못한 때가 없었다. 나는 엄마의 기쁨이자 자랑이다.




부모님은 내가 결혼을 하자, 아이를 언제 가질 것인지를 자주 물어보셨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이는 안 낳을 것이라며 버텼다. 낳겠다고 했다가 낳지 않으면 얼마나 실망이 크실지를 생각하며. 자꾸 아이를 낳으라고 부담을 준다면, 집에 오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자, 나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아시는 부모님은 더 이상 아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부모님은 누구보다 나의 아이를 바라셨다. 이유는 단순했다. 너를 키울 때 우린 너무 행복했으니까. 내가 제일 사랑하는 딸도 나와 같은 행복을 느끼기를. 부모님의 바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진지하게 아이에 대해 물어보셨다. 나는 그때에도, 대답을 회피하고는 엄마한테 물어보았다. 엄마는 왜 아이를 낳으라는 거야? 엄마는 대답했다. 인생이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가서 지겨울 때가 있잖아. 그런데 아이는 한순간도 같은 적이 없어. 매일매일 자라고, 매일매일이 달라. 걔가 자라는 것만 봐도 신기하고 재미있어. 너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매일매일이 재미없을 때가 있을 수 있잖아. 그런데 아이가 있으면, 단언컨대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을 거야.




부모님은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셨는데, 나의 마음은 유한한 것 같았다. 나는 엄마 아빠의 무한한 마음을 받고만 싶었다. 나의 유한한 마음을 아이에게 나누어주면, 나는 뻥 뚫려버리는 게 아닐까? 엄마 아빠가 나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주어서, 나는 도리어 아이가 무서운 것 같았다. 나는 욕심쟁이라, 엄마 아빠처럼 무한한 사랑을 아이에게 줄 수 없다. 아이로 인해 잃는 많은 것들이, 나는 너무나도 속상했다.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속상하면서 어떻게 아이에게 무한히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거지?



덧. 내가 딸이라서, 아이를 낳으면 엄마의 입장이 될 것이기에, 엄마 에피소드를 위주로 썼다. 부모님께는 내 스스로 공개하지도 않을 글이지만, 이 글을 어디선가 전해받을지도 모르는 아빠를 위해. 아빠, 사랑해요. 아빠의 사랑으로도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무한히 꽃을 피울 수 있는 아빠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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