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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Oct 23. 2022

단골손님

에세이_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일상

잔정이 많지 않아 한 곳에 몽땅 퍼주었다.

친구도 놀이도 학원도 ‘이거다!’ 싶으면

그것을 파, 나를 내주었다.     


도통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어떤 학원은 끝내 다니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자식 때문에 엄마는 자주 부아가 났다.

강북에 있으면서 이름에 '강남'이 들어가는

유명한 영어 학원에 적응하지 못해

조용히 땡땡이를 치다가,

하루는 소리 내어 안 가겠다고 반항을 했다.

그럼 공부 다 때려치우고 집안일이나 하라는 말에

시키는 대로 묵묵히 손빨래를 하며 이상한 시위를 이어가던 딸을 보고는,

엄마와 아빠는 속을 끓이다 결국 받아들였다.

    

‘우리 애는 선택하는데 오래 걸리지만 마음만 정하면 잘 해낼 것이다!’


가끔은 이런 기대조차 쉬이 무너뜨렸지만...

이번에는 부모님의 통찰력이 빛났다.

정말 마음을 내어줄 수 있을 곳에는 몇 년이고 나를 집어넣는 맹목적인 구석이 있었다.

학원을 선택하는 데에는 분위기, 선생님,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중요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의 빡빡한 관리와

하얀 형광등에 눈이 부신 하얀 대리석 데스크,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아이들을 때리느라 오른쪽만 두꺼워진 원장의 팔,

오랫동안 같은 반에 있어도 결국 떡볶이 한 번 같이 사 먹지 못한 학우들...

아무래도 정을 주기 어려웠다.   


‘융통성이 없고 아빠를 닮아 이상한 고집이 있는 나’


엄마와 동생은 아빠와 내가 받아 온 사주 결과를 듣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인의 의견을 듣는 척하며 결국엔 하나도 따르지 않는 우리에게 질려 버렸나 보다.

아빠랑 나도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 애써 긍정적으로 바꿔 보기로 한다.

이 이상한 고집은 세상 그리고 타인과 보내기에

다른 이들보다 턱없이 부족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쓰고픈, 나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인지 모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떠하든...!

누군가는 그것을 철새의 짧은 덕질로,

세계를 좁게 보는 자의 과한 충성심으로,

또 다르게는 드디어 인연을 만났다고 본다.     


그렇게 30대 초입에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있다.

언제고 글을 쓰고 책을 읽게 하는,

나아가 같이 맛있는 메밀묵에 막걸리를, 감자튀김에 맥주를 이어가게 하는,

다정함을 알려줘 고마운 부비프 책방 사장님들이 그러하고,

올해 들어서 자주 참석하고 있는 

동네 모임 호스트 소담님이 그러하다.

소담님의 숲 속 작은 집에서는 귀가 편한 음악(아무래도 그냥 이곳이 편해진 것 같다.)을 들으며 책과 영화를 나눈다.

낮에는 귀여운 코스터 위에 올려진 따뜻한 차와 저녁에는 아무 와인 한 잔을 곁들어!

처음 나를 이끈 건 숲 속 작은 집의 공동 호스트인 고양이 까망이와 모임이 끝난 후 한 냄비에 끓여진다는 다섯 봉투의 라면이었지만,

지금은 몇 없는 동네 이웃이 된 호스트님의 미소와 인사, 취향 그리고 그 공간 자체가 되었다.  

이제는 몇 동 몇 호라고 외우지 않아도

절로 발이 가는 데로 걸음을 옮기면

어느새 '띵동!'초인종을 누르고 있는 손가락이 재밌다.

이곳에서의 만남만큼 늘어난 와인 병을 바라보는 것이 재밌다.


단골이 되는 건 어려우면서도 한편으로 참 쉽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큰 이유가 생기면 된다.     

내키는 대로 부지런히 발길을 이어가면서도,

너무 자주 향하는 것이 아닐까 쑥스럽고,

손님의 입장에서 어느새 고인 물이 되어

그의 새로운 경험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되지만

그 웃음과 밀려오는 반가움을 믿고

짧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

어느 한 곳에 대한 사랑이 부질없이 끝날까 봐,

또 촌스럽게 나만 끝내지 못할까 봐 걱정을 하면서도.

고민하지 않아도 늘 정해져 있는 무언가를 찾아 옮기는 걸음은 즐겁다.     

새로운 발걸음에서 시작된 '단골'이라는 이름은

갈 곳 잃은 나를 꽉 붙잡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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