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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Oct 22. 2022

싶싶하다: 하고 싶고 또 하고 싶다

<싶싶한 하루 보내세요> 출간을 준비하는 마음

<싶싶한 하루 보내세요>라는 공저 에세이 출간을 준비 중이지만 사실 난 그리 싶싶하지 않다. 큰일이다. 쌓아둔 여러 가지를 해소하고자 키보드를 도구 삼아 마구 두드리던 마음이, 글이,

글방구(글방 친구)들이 아닌 나의 부분, 부분과 실제 얼굴을 너무도 잘 아는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니... 아무래도 지인 홍보를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았나 살짝 후회 중이다. 하지만 정작 읽어주었으면 하는, 나를 모르지만 비슷할 사람들에게 닿기 위해 민망한 마음을 누르고 홍보 겸 속풀이를 해본다.  

   

그러니까 이렇게 싶싶함에 대해 풀고 싶었던 것은

힙한 제목과는 달리, 책을 준비하면서 커진 것은 ‘싶싶함’이 아니라 '부채감'이기 때문이다. 밀려오는 부채감에 난 운 좋게 찾아온 기회를 뻔뻔하게 즐기지도, 모른 척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열심히도, 적당히도 하지 못했다.

열정은 언제고 싫었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달아날 준비를 며, 그들의 자기 계발서나 짧은 브이로그조차 버거워  보지 못했다. 나에게 없는 것을 보고 배울, 바람직한 태도를 갖추지 못해 괜히 지치고 그저 멀어지고 싶어 조용히 발악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책의 ‘콤플렉스_털어놓고 싶다’라는 장에서 이 회피적 성향이 미친 악영향을 털어놓았어야 했다.


멀리서 보면 평안하고 알록달록 물들어있는

내 생활은 엉망이다. 지인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종종 요가도, 달리기도 하고

대개는 사랑스러운 어린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이른 퇴근 후 글쓰기, 독서를 하며 관련 모임에 참여하고 살사를 배우고 독립출판을 준비한다는 나를 보고는 재밌고 알차게 산다며 부러운 소리를 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그것은 더는 알록달록하지도, 완전히 까맣지도 하얗지도 않은, 마치 귀찮아 미루어 온, 세탁이 필요한, 원래는 흰색이었던 운동화일 뿐이다.

이 꾸질꾸질한 운동화의 미래는 알 수 없다.

손빨래를 해도 될지, 크린토피아에 보내질지, 산소 표백제를 쓰면 다시 하얘질지, 다시는 하얘질 수 없을지.     


현실은 현실을 불렀다.

존재하지만 만질 수 없는 글들이 종이에 옮겨져 묶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오랜 로망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에 설렌 것은 잠시

‘독립출판, 기획, 마케팅, 인쇄’라는 말을 듣자마자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내 분량의 글을 쓰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잘못됐다는 생각의 꼬리의 꼬리를 물고 꼭꼭 숨겨 놓았던 얼룩덜룩한 짐 덩이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지난달 학교 수학 평가 시간에 평가지를 세로로 반을 접어야 한다는 것(커닝 방지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시작부터 너무 어렵다며, 스스로 하지 못하겠다며, 냅다 책상에 고개를 묻고는 평가를 보지 않겠다며 울고 떼쓰던 우리 반 어린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거 나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어서.”


그날 난 그 애를 밖으로 불러, 스스로 하기 어려우면 선생님께 도와 달라고 말을 하면 되고,

문제가 어려워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풀어야지,

틀려도 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안 된다고.

어린이가 눈물을 다 훔치고 내 눈을 보며 내 말에 수긍할 때까지 호되게 지도했다.

그저 미안하고 민망하다. 너도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답답했구나. 그 마음과 그 밖의 마음이 너무 커서 책상에 고개를 묻고 얼굴을 꽁꽁 숨기며,

말로 외치기 전에 온몸으로 어렵다는 티를 내었구나. 책을 준비하면서, 아니 지금까지도 난 우리 반 금쪽이 와 같다.  사실 더하다.

말로도 어렵다고, 모르겠다고,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뱉는다.

그렇게 무기력하다, 이 무기력함이 지겨워 다른 곳에서 열심히 놀다, 다른 것에 한눈을 팔다 아주 잠깐 정신을 차린다. 정신을 차리면 은혜로운 글방구들은 내가 엎어져 있든 주저앉아 있든 성실히 자신의 일을 하며 책을 향해 눈을 반짝이고 있다. 그럼 난 이내 자리에 앉아 같이 평가지를 세로로 접고 1번부터 문제를 읽으며 자신의 열 손가락으로 차근차근 숫자를 세는 금쪽이 와 같이,

자리에 앉아 다시 우리의 글을 읽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헤아려 본다. 로망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온전히 느껴본다. 무겁고도 달콤하다.

저마다 빛나는 이 글들에, 사람들에 사르르 묻혀가볼까? 이렇게 된 거 부채감보다는 뻔뻔함을 가지고 싶다.            


글방구들의 싶싶함에 비하면 다소 은은하지만 나에게도 싶싶함은 있다.

원치 않는 감정으로 쉽게 누군가에게 서운해지고 한숨을 자주 쉬고 집중을 하지 못하는 요즘.

사소한 것에 쉽게 살기 싫어지는 내게 그래서 소중한 순간들이 있다.

조그마한 세상감탄하게 되는 순간.

햇살이 나뭇잎을 비추어 조금 다르게 빛날 때,

하늘이 너무 파랗거나 분홍이거나 보라일 때,

달이나 구름을 인지할 수 있을 때,

그럴 때 모든 것이 아름답고 소중해져 살고 싶어 진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가 좋아 잘 살고 싶어 진다.

그렇게 살고 싶게 하는 것들과 나를 온전히 담아 찍고 싶어 진다.

참 잘살고 있지 뭐야, 죽지 않아서 다행이지 뭐야 되새긴다.

그 마음만 모으고 담아 언제든 꺼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 사실 무슨 색으로든 빛날 하늘과 나무만 있으면 싶싶함을 잃지 않고 살 수 있겠다.

이렇게 쉽게 살고 싶어지는 사람인 게 오히려 좋아!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준다.     

이 글에 ‘싶’이 몇 번 쓰였나 세다 까무룩 잠들고 싶다. 불이 켜져 있든 꺼져 있든 새벽 두 시쯤 깨지 말고, 아주 길게 충분히 잠들다 알람 없이 눈을 떴으면 좋겠다. 그렇게 눈을 뜨고 창문을 열면 다시 싶싶할 것 같다. 우리 책이 당신에게 그런 밤의 시간이, 새벽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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