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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섬 Jun 27. 2019

감사합니다!

이책이글 86회_이글_이런 곳에 왜 야자나무가 있을까?_190101

오랜만에 도시를, 육지를 떠나서 섬에 왔다. 한 시간이면 올 수 있지만, 평소에는 미국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섬. 몇 년에 한 번씩은 왔었던 것 같은데, 올 때마다 그대로이기도 하고, 몰라보게 새롭기도 한, 여행객들에게는 그저 좋은, 눌러앉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도 요즘은 개발이 안 된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건물들이 들어섰다. 여기도 나름대로 추억이 있는 언덕이었는데, 안쪽이 보이지도 않게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펜스 위쪽으로 나무 한 그루가 뻗어있었다.


“이런 곳에 왜 야자나무가 있을까?”


“신기해요? 야자나무는 흔히 생각하는 나무의 한 종류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과’ 라고요. 심지어 좁은 의미에서는 나무에 포함되지도 않아요. 과, 속, 종이 뭔지는 아시죠?”


아, 깜짝이야.

혼잣말이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혼잣말이고, 너무 명백해서 누가 듣기도 어려운 혼잣말인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이걸 설명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반응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종은 현대 생물학 분류체계에서 세분화된 마지막 단계인데, 그것보다 큰 단위가 속, 그 위가 과에요. 그러니까 야자나무는 그 과인 거고, 전 세계에 대략 220속 2500종이 있는 거죠. 주로 열대와 아열대에서 분포하는데, 몇몇 종은 온대 지방에서도 자라기도 해요. 그리고 여기에는 원래 야자나무가 많답니다.”


뭐가 그러니까 원래 라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아니, 대답이 아니라 멀리 떨어질 타이밍을 놓쳤다.


“가끔 해안가에서 길을 걷는 관광객 중에 몇 명이 10m가 넘게 자란 야자나무 밑을 지나가다가, 떨어지는 코코넛 때문에 다치거나, 죽는 경우도 있대요. 그러니까 야자나무 밑에 해먹 같은 걸 만들어서 자고 있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거죠.”


한참을 얘기하던 그가 씨익, 웃었다. 도대체 왜 저 타이밍에서 웃는 것일까.

이런 곳에 왜 저런 사람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면 우리는 단어를 참 대충 쓰는 것 같아요. 정확하게 알아볼 생각은 안 하고, 대충 그런가보다 싶으면 그런가보다 싶은 말로 퉁치고 넘어가는 거죠. 야자나무만 그런 게 아니에요. 지금 바로 생각해봐도 비슷한 사례가 열 개는 있겠는데요?”


“아, 네.”

말은 짧게 나왔지만, 마음이 급해졌다. 왠지 그 열 개의 사례가 바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 자리를 모면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아, 뭘까.

그가 입을 다시 열기 전, 급하게 내가 먼저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했을까. 그냥 감사했다는 말을 던지고 나는 옆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달리면 왠지 붙잡힐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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