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밥은 살 안쪄
올해도 어김없이 우메보시를 담갔다. 5월 말, 6월 초가 되면 보통 전라남도에 있는 농장에 황매실을 예약 구매한다. 해마다 이번에는 5Kg을 주문할지, 20Kg을 주문할지 고민한다. 5Kg은 너무 적고, 20Kg은 아찔하다. 타협점은 그래서 늘 10Kg이지만, 막상 10Kg을 담고 나면 ‘진작에 더 살걸…’ 하고 후회가 밀려온다. 올해는 때를 조금 놓치는 바람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5Kg 밖에 사지 못했다. 예약 구매이기 때문에 내가 황매실을 주문했다는 사실을 잊고 잠시 일상으로 돌아가 바쁘게 살아 가다보면 6월 중반 즈음, 집 앞에 거대한 스티로폼 한 박스가 도착해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부터 스티로폼속의 주인공을 알 수 있다. 황매실의 향기가 아파트 복도를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녀석을 발견하는 건 꼭 야근을 하고 온 몸이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을 때다.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고 매실의 꼭지를 하나하나 정성스레 떼어주고 일명 ‘스댕 다라이’에서 뽀독뽀독 씻어 먼지를 털어준다. 황매실은 복숭아처럼 솜털이 감싸고 있어 방수 역할을 해준다. 물에 씻은 황매실을 말릴 때 보면 솜털 사이사이 물방울이 맺혀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폭우에도 과실들이 버텨주는 자연의 섭리를 훔쳐보는 기분이다. 이렇게 다시 2~3일, 꼭지를 떼고 물에 깨끗이 씻은 황매실을 체에 받쳐 말려준다. 그동안 집에 황매실 향이 디퓨저처럼 은은하게 퍼져 감미로운 기분이 드는 건 잠시, 이제부터 초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하기 때문에 매서운 눈으로 황매실을 지켜내야 한다.
우메보시는 일본식 매실장아찌로 설탕에 숙성시킨 우리나라 매실장아찌와 달리 소금으로 발효한 음식이다. 식사 중이나 식사 후에 한 알 집어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도시락에 한 알 집어넣으면 여름에도 밥이 쉬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나고 자라신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우리집 식탁은 일본 반찬이 제법 올라오곤 했다. 우메보시도 그 중 하나였는데, 정작 우메보시 담그는 법은 할머니를 통해서가 아니라 온갖 SNS와 방송을 찾아보며 터득하게 되었다. 우메보시도 김치처럼 가정마다 만드는 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집안의 전통방식을 전수 받았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우메보시 비법 따윈 없다. 다만 우메보시를 좋아하는 가족들이 일본에 여행을 갈 때마다 무거운 유리병에 든 우메보시를 사서 힘들게 이고 지고 오지 않도록 집에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게 된 것이다. 내가 우리 집안의 첫 우메보시 장인(?)이 되는 셈이라 내가 만드는 우메보시는 내 이름을 따 ‘우메보린’으로 명명하기로 했다.
아직도 처음 우메보시를 맛보던 날이 선하다. 구슬만한 크기의 작고 동그란 매실은 단단했고 빨갛게 물들어 있었는데, 아삭 하고 한 입 베어먹는 순간 태어나서 먹은 것 중에 가장 신 맛이 입안을 한 바퀴 돌았던 기억. 눈을 질끈 감는 날 쳐다보면서 깔깔 거리던 어른들, 이제 제법 어른의 입이 되어간다고 신나하시던 모습과 왁자지껄했던 식탁의 풍경. 지금 돌이켜보면 기름진 비계가 잔뜩 들어간 고기류나 데리야끼 소스에 버무려져 있는 달달한 반찬을 좋아하던 어린이가 새로운 음식을 하나씩 도전해보고 새로운 맛을 익혀 가는 것만큼 세계가 확장되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마치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주인공 라일리가 유아기에는 기쁨, 슬픔, 분노 같은 단순한 감정만 느끼다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웃픈 기분이라든가 고통과 성취감을 같이 느끼게 되는 것처럼 온 감각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열리는 순간들. 우메보시는 나의 미각 세계를 전혀 다른 길로 이끌어준 소중한 반찬이자 추억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맛보았던 작고 단단한 우메보시는 여러 우메보시 중 한 종류에 불과했다. 김치도 배추 김치, 오이소박이, 부추 김치, 갓김치 등등 그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우메보시도 매실의 종류와 조리법에 따라 크기와 무르기가 각기 각색이다. 어떤 우메보시는 주먹의 반 정도 크기로 아주 크고 단단하며, 어떤 우메보시는 같은 크기인데도 속이 몰랑몰랑 하고 섬유질이 살아있다. 하지만, 대부분 맛은 매우 시고 짜다. 소금과 태양 에너지를 잔뜩 받은 까닭이다.
앞서 초파리로부터 지켜낸 황매실로 돌아가보면, 이렇게 잘 말린 매실은 도수가 높은 알코올에 한 번 굴려서 겉면을 소독해준다.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전처리를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매실 무게의 10~20% 되는 소금에 절여준다. 일반적으로 소금과 매실을 유리병에 넣어 그 과정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데, 처음엔 소금의 굵은 결정이 고체로 쌓여 있다가 시간이 지나며 매실과 발효 작용을 하며 점점 액체로 변해간다. 소금에서 소금물로, 소금물에서 매실 식초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이때 소금 결정이나 소금물이 미처 닿지 못한 부분이 행여 곰팡이균에 침식당하지 않도록 흔들어 주거나 누름돌로 공기와의 접촉이 최소화 되도록 해준다. 보글보글. 톡, 톡. 발효되는 모습과 소리는 마치 테라리움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내가 만들어낸 발효 세계. 이때 보글보글 거품만 쳐다보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되는데 바로 차조기잎을 주문하는 것이다. 6월 말~7월 초에 잊지 않고 붉은 차조기를 준비하여 소금물에 빡빡 빨아줘야 한다. 처음엔 검정물이 끝도 없이 쏟아지지만, 대여섯번 소금을 가득 담은 물에 짓이기듯 빨아주면 짙은 검정색은 차츰 푸른빛으로, 푸른빛은 다시 보라색으로, 보라색은 다시 붉은색으로 옅어진다. 이렇게 붉은빛을 띄게 된 차조기잎의 물기를 있는 힘껏 꾸욱 짜서 소금에 절여져 있는 매실 위에 덮어준다. 차조기잎은 공기를 차단하며 산패를 막아주고, 노오란 황매실을 붉은 색으로 변신시켜준다. 물론 여기서도 끝이 아니다. 이렇게 7월 초에서 8월까지 장마와 폭염을 견뎌낸 뒤, 건조하고 산뜻한 바람이 부는 때, 아직 여름의 태양빛이 가시지 않은 늦여름에서 초가을이 되면 이렇게 빨갛게 물든 매실을 한 알 한 알 꺼내 말려줘야 한다. 어느 한 면만 물러지지 않게 요리조리 굴려가며 모든 면에 골고루 태양 에너지를 잔뜩 머금게 해주고, 밤이면 다시 식초가 된 예의 붉게 물든 소금물에 적셨다가 병입해준다. 아마 일본 요리 영화나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이 주문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이렇게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주문을 읊으며 태양과 달의 기운을 담아낸 다음, 다시 최소 3개월을 묻어두면 그 겨울부터 시고 짠 그 해의 우메보시를 맛볼 수 있다.
우메보시 역시 발효 식품이자 저장 식품이라 당해 만든 것보다 오래 묵힐수록 맛의 깊이가 다르다. 일본의 어느 전통 도가인지, 장아찌 장인의 집인지 모르겠으나 백년 묵은 우메보시와 매실 식초가 있다고 하는데 살면서 한 번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느 새 우리집에도 3년 묵은 우메보시가 생겼다.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에 몰랑한 우메보시를 하나 톡 얹어서 잘 저어주면 소화가 잘 되는 밥이 되는데, 김에 한 입 싸먹어주면 매실 향기와 바다의 풍미가 도드라져 밥 한 공기 정도는 게눈 감추듯 사라지고 만다.
매년 담그고 있지만, 매실을 받아 병입 하는 데까지 족히 3개월, 다시 저장해서 먹을 수 있게까지 3개월, 최소 6개월이 걸리는 작업이다. 따라서 매년 우메보시를 담그지 않는다면, 어느 해에는 꼬박 6개월 동안 먹을 우메보시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작업을 SNS에 열심히 기록하면, 친구들이 댓글로 “변태요리사, 또 시작이구나.”라며 응원(?)해준다. 이때 변태라는 뜻은 뭔가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한다는 뜻인데, 나는 그 표현이 퍽 마음에 들었다. 집착 없이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매실을 받는 순간부터 점이 생겼거나 벌레를 먹어 상한 피부는 없는지 살펴보는 일, 소금에 절일 때 이번엔 꿀을 함께 넣어 단맛을 보강해볼까 수십 수백 번 시뮬레이션 해보며 혼자만의 실험실을 운영해보는 일, 색소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빨갛게 물들이는 일, 계절의 흐름을 살펴보며 순간순간마다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는 일, 그 모든 일에 온 마음과 힘을 쏟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사랑을 먹이고 싶은 이들이 없다면 차마 시작하지 못했을 일, 사랑은 사람을 일으켜 부엌으로 보낸다. 며칠이, 몇 달이 걸려서라도 좋은 음식을 만들게 한다. 내겐 그런 변태요리사의 피가 붉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