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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율밤 Dec 23. 2022

혼자의 시간이 길기만 한 당신에게 소소한 추천(3)

피아노, 아니 무엇이든 도전 편

'취미로 한다'는 것의 특장점은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잘하면 좋다. 따뜻한 햇살에 흔적도 없이 녹아버릴 눈사람조차도 예술적으로 잘 만들면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우리는 주먹만 한 눈덩이 두 개를 위아래로 쌓아놓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낙엽으로 모자만 씌워놔도 즐겁다. 스노볼 메이커를 이용해 똑같은 오리를 100마리씩 만들어내도 즐겁기만 하다.


취미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잘해야 즐거운 게 아니라 즐길 수 있어서 즐거운 것이 '취미'라고.


나에게는 그런 취미가 피아노다. 피아노를 배우기까지 나름의 깊은 사연이 있다.


부모님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의 나를 피아노 학원에 보내려다 실패했었다.

그 시절에 친구를 따라가봤던 피아노 학원 분위기가 좀 무서웠던 탓에 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린 것이다. 예민한 아이였던 나를 억지로 보낼 수는 없으셨던 부모님은 피아노 학원 등록은 금방 철회하셨다.


그 후 관심도 없이 자라다가 중학생 때 어떤 피아노 곡을 듣게 되었고 그 곡을 직접 치고 싶어서 아빠한테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이번엔 내가 승인을 거절당했다. 가뜩이나 하라는 공부 대신 소설책만 파고드는 딸이 피아노를 배웠다간 무슨 딴소리를 할지 모르겠다 싶으셨는지 지금은 학업에 충실해야 할 때라고 하셨다.


피아노를 못 배웠던 게 서러웠던 학생은 고3이 되어 일기장에 이런 글을 적어놨었다.

스무 살이 되면 꼭 피아노를 배워야지.


그래서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피아노를 바로 배웠느냐 하면 답은 '아니'다. 스무 살이 되어보니 피아노 말고도 할 수 있는 게 많았고, 용돈도 직접 해결해야 했으니 아르바이트와 노는 것, 공부, 맘대로 안 되는 연애가 놀이공원의 다람쥐통 안에 섞여 뱅글뱅글 돌아가듯 하는 상황이어서 피아노는 떠올리지도 못했던 것 같다.


여차저차 직장인이 되어 대리라는 직급을 달고 직급 수당으로 얼마 간의 월급이 더 붙게 되었을 때야, 

그러니까 삼십 대 초반이 되어서야 1:1 피아노 레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피아노를 배우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꾹꾹 눌러왔던 열망만큼 피아노를 금방 잘 칠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상상 속에서는 내 손가락들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사뿐히 춤을 췄는데, 다른 곡은 몰라도 중학생 때 들었던 그 곡을 칠 때만큼은 연주자였는데, 마음은 정말 그랬는데... 현실은 안 그랬다.


키가 작은 만큼 손도 작아 힘껏 펼쳐도 바로 닿지 않는 음이 있어서 더 빠르게 손목을 움직여야 했고, 계이름도 잘 못 읽었다. 피아노 앞에서 덜덜 떨었다. 과장이 아니라 피아노 선생님이 "왜 이렇게 손을 떠세요?" 할 정도였다. 그때 적은 일기장을 보면 바라왔던 것만큼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해서 스트레스라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열망과 재능은 정비례가 아닐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 


재능이 있길 바란 것까지도 아니었지만, 이제 와서 무슨 피아노냐는 소리도 들어가며 배우기 시작한 건데 원하는 만큼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건 좀 슬펐다얼마나 오랫동안 치고 싶어 했었는데 이 곡 하나를 완벽하게 치지 못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도레미파솔부터 시작해서 능숙하지 못한 건 당연하게 느껴지는데 그때는 스트레스가 됐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걸 열심히 쫓다 보니 그 곡을 끝까지 칠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내 귀에는 엉성하기만 한, 처음 듣고 큰 감동을 받았던 것과는 달리 어설픈 연주였지만 그래도 끝까지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곡을 다 칠 수 있게 되자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도 조금씩 는다'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 나에게는 인생에 있어 두고두고 다행인 점이다. 


그때 이런 글을 썼었다. 


'시작은 미약하고, 반짝이는 재능 같은 건 깊은 곳까지 헤집어도 없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느끼면서, 그러니 때려치워도 괜찮지 않을까 포기를 권유하는 스스로의 속삭임을 경험하면서 힘들어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무엇이든 하다 보면 아주 조금씩이나마 늘긴 는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편은 소소한 추천으로 피아노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피아노는 좋다. 악기 연주는 무엇이든 좋다. 그때 몰두하여 1년여쯤 배우다가 회사일이 버거워지며 연습도 버거워져서 레슨을 멈추고 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거나 그 곡이 생각나면 피아노를 친다. 다른 곡들도 조금씩 칠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피아노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피아노를 배우며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잘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해왔던 그 무언가를 도전해보기를 권해보고 싶었던 편이었다. 어차피 취미니까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잘하지 않아도 된다. 계속 마음속에 고민만 하던 그것을 시도해 보기를, 내가 느낀 바를 글을 읽는 당신도 똑같이 느낄 수도 있다. 시작은 미약하고 재능은 없을지언정 하다 보면 늘긴 는다는, 인생에 제일 중요한 교훈일지도 모르는 그 기분을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현재의 나에겐 피아노를 배우며 느꼈던 저 깨달음이 매우 도움이 되고 있다. 

왜냐면 '쓰는 것'을 잘해서 퇴사 후 미래가 밝기를 바랐는데 쓰면 쓸수록 이 역시 특출난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구나 확인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어서 다.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서 슬프고 외로운 당신에게 여태껏 해볼까 망설였던 취미를 시도해 보라고,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멈추지 않는다면 다른 무언가 올 수도 있다고, 힘내자고 말하며 나도 힘을 내보는 참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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