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주환 Jan 13. 2022

[뷰티 인사이드] 13. 동화, 뒤집어 읽어보기

<슈렉 2> - 켈리 애스버리 外 영화


우리 자신을 나타내는 표현 수단들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외모입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허용해   있는 시각적인 이미지죠. 겉모습은 나와 관련한 정보,  성격, 사회적 관계, 히스토리, 그리고 알고 있는 지식 등을 모두 대신해 먼저 노출되는 데이터입니다. 물론 나를 온전히 판단할 근거로서는 충분하지 않지만, 이를 고사하고 우리는 ‘외모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국내에만 2만여 곳이 넘는 화장품 업체, 그리고 셀카의 품격을 높여줄 수많은 필터 애플리케이션  도처에는 ‘()’, ‘()’ 위한, ‘()’ 의한 수단들이 이미 즐비하게 놓여있습니다. 익숙한 현상입니다. 우리들은 외모 꾸미기에 오랜 역사와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외모는 중요한 표현 수단입니다. 일례로, 사람의 첫인상이 무척 중요하다는 말은 우리가 쉽게 접할  있습니다. 면접  이미 정돈된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시 고쳐  경험은 낯설지 않습니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하루에도 수백 번씩  모습을 돌이켜 보고 점검하는 지금, 우리는 사실 ‘정도 짚어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큼 외모를 우선시해야 할지를, 외모를 기준으로 무엇을 허용해야 하고, 무엇을 허용하지 말아야 할까를, 깊이 재볼 필요가 있습니다. 외모는 중요하지만, 외모 때문에 우리는 쉽게 상처를 받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외모지상주의 어떤 기준보다도 잘난 외모를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두고 사람을 평가하는 현상으로 우리 곁에 무섭도록 가까이하고 있습니다. ‘외모 하나의 목적이 되어 되려 사람을 수단으로서 옥죄기도 합니다. 통상적인 미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며 상대방을 쉽게 손가락질하고, 비웃게 됩니다. 외모라는 높다란 벽을 세워  너머의 것을 알려고 하지 않거나 오히려 벽의 두께를 단단히 고정시킵니다. 외모는 또한 인종, 성별 간의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나의 가치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줘야  외모가, 서로  오해와 다툼을 일으키는 무서운 질병으로 키워지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겉모습 하나로 쉽게 상처받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  테고, 또한 상처를 입었다면 빠르게 회복하는 것도 중요할 겁니다. 이른바 ‘외모 콤플렉스 다룬 이야기들 속에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역경이 적지 않게 소개되곤 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야기들은 절대로 외모를 ‘개선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인물이 타고난 외모 그대로를 이해할  있도록 주변과 환경을 오히려 다듬어 주는 것이지요. 작품에서는 외모를 꾸밈으로써 보다 나은 우월감을 갖는 세태에 던지는 목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물론 꾸미지 말라는 말은 없습니다만, 꾸미는 것만큼이나 황홀하게 바라볼  있는 곳이 우리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하나의 소중함이 우리를 설명해줄  있음을 얘기합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뷰티 인사이드라는 말에 압축되어 있겠지요. 인물들이 서로를 대하는 감정, 생각, 외침 그리고  진심은 너무 짙게 물든 외모에 대한 강박관념이 조금은 해소될  있도록, 작품 감상을 곱절로 되새김질하게  줍니다. 이들은 무척 아름다운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뷰티 인사이드] 감상문 리스트
# <슈렉 2 Shrek 2> - 켈리 애스버리  영화
# <뷰티 인사이드> - 백종열 영화



감독 | 켈리 애스버리, 콘래드 버논, 앤드류 애덤슨

출연 | 마이크 마이어스, 카메론 디아즈, 에디 머피, 안토니오 반데라스

제작 연도 | 2004 년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두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지냈답니다.’

최고의 해피엔딩, 시원하고 걱정 없는 갈무리입니다. 왕자와 공주님들은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드디어 꿈같은 나날들을 맞이합니다. 동화를 끝까지 읽은 아이들에겐 저마다 소중한 꿈이 생길 텝니다. ‘나도 멋진 왕자 만나서 결혼할 거야’, ‘나도 예쁜 공주와 행복하게 살아야지.’ 행복하게 살아갈 두 주인공의 모습에 아이들은 자기의 얼굴을 비춰 보곤 합니다. 행복의 조건은 왕족 집안에서 태어날 것, 그렇지 못한다면 잘생김이나 예쁨 정도는 필수. 우스갯소리로, 각색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니 요즘은 노래도 잘 불러야 하죠. 어떤 영화 제작자들은 여기서 아차 싶었던 걸까요. 누군가가 질문합니다. 왜 항상 그래야만?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드림웍스가 내놓은 최대 히트작 <슈렉> 시리즈는 여기, 이 의문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정해진 동심의 틀을 잠시 뒤틀려보자는 생각을 합니다. 못생기고, 또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주인공들을 당당히 내세워서 말입니다.


동화에서는 못난 괴물, 오우거(ogre)가 여러 차례 악당으로 등장하곤 합니다. 항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준비가 되어있는 못돼먹은 표정, 큰 몸집에 배불뚝이 형상, 날렵한 눈매와 뾰족한 이빨, 그리고 녹색. 오우거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드림웍스 제작자들이 직접 만든 동화의 주인공은 녹색 덧칠을 과감하게 입힌 오우거 그 자체였습니다. 포근한 인상을 주는 동네 삼촌의 이미지로 매서움의 느낌은 한층 날려버렸다 한들, 여전히 그의 모습은 여느 백마 탄 왕자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 녹색 괴물, 슈렉이란 캐릭터는 더더욱 ‘멋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듯합니다. 그가 사는 곳마저 그 어떤 찬란한 왕궁 속이 아닌, 아무도 찾지 않을 늪지대의 바로 옆이었죠. 거느리는 하인이나 우아한 털을 가진 명마 대신 말썽만 잔뜩 일으키는 동물 친구들이 그의 곁을 차지하는 전부입니다. 슈렉의 환경은 우리가 알고 있던 형형색색의 동화 이야기와는 정반대인 설정들을 모두 모다 놓은, 꽤나 볼품없는 모습의 정형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와 못난 설정들은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못생긴 괴물이란 타고난 운명을 그대로 안고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시리즈의 감상문을 남겨 보려는 건 슈렉이 처한 운명의 공간이 더더욱 씁쓸하고, 그래서 한 걸음 더 도전적인 이야기로 와닿기 때문입니다.

<슈렉 2>의 이야기 줄기는 처가에서의 갈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슈렉과 피오나 공주는 동화 속 주인공들이 모여있는 ‘머나먼 왕국’으로 향합니다. 피오나 공주의 부모인 해롤드 왕과 릴리안 왕비가 다스리는 왕국이지요. 먼길 했지만, 슈렉은 피오나 공주의 부모님으로부터 사위로서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단순히 왕자와는 거리가 먼 그의 차림새 때문이었죠. 슈렉을 사위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해롤드 왕, 꽃미남 왕자의 전형을 띠고 있는 프린스 차밍과 그의 엄마 대모 요정은 슈렉을 피오나 공주로부터 떨어지게 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다 부립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악한 존재로만 취급받아온 슈렉은 그저 주인공의 행복을 물리치는 역할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동화 나라의 필연적인 이론이었죠. 이들은 오우거를 동화 속 악당으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쩌면 현실 속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영화는 잘난 사람들만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는 편견을 노골적으로 깨부수려고 합니다. 동화 속 세상이라는 큰 틀을 그대로 차용한 것도 너무 동화 같은 이야기에만 푹 빠진 고정관념들을 오히려 효과적으로 깨려는 장치로 둔 이유일 텝니다. 동화의 책을 읽어 주는 이 오프닝 신에서부터 <슈렉 2>는 영화의 제작 의도를 과감히 들춰냅니다. 동화 속 멋진 왕자를 대표하는 프린스 차밍은 피오나 공주가 갇혀있어야 할 용의 탑에서 엉뚱한 늑대 녀석만 찾아내고 말죠. 아리따운 공주는 첫 편에 이어 여전히 녹색 괴물입니다. 조신하다는 공주 이미지는 피오나의 것이 아닙니다. 독한 방귀를 뀌고 인어공주의 지느러미를 부여잡고 냅다 바다로 던져 버립니다. 근대 동화 작가들이 쌓아온 클리셰를 어김없이 무너뜨리는 연출을 돋보여 관객에게 영화의 콘셉트를 먼저 이해시키려 하는 것이죠.


오프닝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적으로 걸쳐져 있는 이 ‘망가뜨림’의 내러티브는 궁극적으로 ‘Happily Ever After’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모든 이의 것이라는 주제로 귀결됩니다. 슈렉과 피오나는 그들을 둘러싼 편견의 시선에 대항해 ‘우리도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표어를 우렁차게 내겁니다. 피오나는 슈렉보다 더욱 당당한 모습입니다. 초록색 괴물의 모습은 고국의 백성들과 부모님을 맞이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피오나는 늪에서 빠져나오기 싫어하는 슈렉의 팔을 잡아끌기도 하죠.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슈렉의 생각도 초록 괴물의 모습으로 남아 사랑을 이어가는 것이 더욱 성숙한 동화임을 직시하게 됩니다.


공주에 대한 이미지를 과감히 무너뜨리는 피오나





사실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소재는 ‘Happily Ever After’라는 다소 유치하게 들리는 마법 물약입니다.

물약을 마신 사람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정까지 아주 예쁘고 멋진 모습으로 업그레이드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정까지 사랑하는 두 사람이 키스를 한다면 그 예쁜 모습 그대로 영원히 남는다는 특별한 마법이 담겨있습니다. 슈렉과 당나귀 친구 동키는 지체 없이 이 물약을 나눠 마시고, 각각 아주 늠름한 인간 남자와 백마로 변신합니다. 같은 시간, 슈렉을 기다리는 피오나의 모습도 예전처럼 예쁜 공주님으로 돌아오고요.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봤을 때, 가만히 저 선남선녀 모습 그대로 남게 되면 어떨까 하고 속으로 바랐던 때가 기억납니다. 지금에서야 이 영화를 보니, 그 시절의 생각과 한참 다른 아주 강렬한 대사를 피오나 공주가 남기더랬죠.


I want what any princess wants to live happily ever after.
With the ogre I married.
나도 다른 공주들처럼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어.
내가 결혼한 그 괴물과 말이야.


마법의 시효가 끝나는 자정이 되기 직전, 피오나 공주는 키스를 하려는 인간 슈렉을 잠시 멈춰 세웁니다. 그리고 다시 어엿한 초록색 괴물로 변하자 그제야 기다렸던 아름다운 키스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물론, 동키도 다시 작은 키의 당나귀로 돌아왔지만요.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려는 마음을 읽어줍니다. 주인공들이 원래부터 정답을 걷고 있던 것처럼 말이죠. 다만 러닝타임 동안 그들이 받았던 손가락질과 모욕감은 축하의 박수와 부러움의 감정으로 변합니다. 괴물의 모습 그대로 맞이하는 해피엔딩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주인공 슈렉과 피오나뿐만이 아닙니다. 피오나의 아버지 해롤드 왕은 우리에게 친숙한 개구리 왕자라는 사실 또한 밝혀집니다. 딸 내외를 대신해 마법 공격을 받아쳤던 왕은 지난 개구리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오고야 맙니다. 슈렉의 조력자 피노키오마저 잠시 인간이 되는 행복감을 맛보지만 이내 다시 또각거리는 목각 인형으로 돌아옵니다. 동화의 유명한 캐릭터들이 우리가 알던 엔딩의 모습이 아닌, 처음의 이야기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는 것이죠. 놀라운 관점입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 영화의 가치를 이토록 아름다운 본디의 것들에서 다시금 찾게 됩니다.


자정을 앞둔 슈렉과 피오나 공주




애니메이션 장르의 전형성이 뚜렷한 점은 사실입니다.

과장된 동선, 움직임들을 표현하고 동시에 이야기에 대한 진지한 시선들이 함께 담깁니다. <슈렉 2>는 특히 그 과장된 리듬을 한 층 더 그려낼 줄 압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매력은 블록버스터 실사 영화의 명장면들 몇 가지를 그대로 차용한 데서도 드러납니다. <스파이더맨>의 거꾸로 하는 키스 신과 <미션 임파서블>에서 땀 한 방울도 허용되지 않던 밧줄 잠입 신을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살려 영화적 허용을 효과적으로 살려냅니다. 전반적으로 서사에는 위트가 살아있고 역동적인 캐릭터들이 풍성한 점이 <슈렉>의 특장점이죠. 디즈니에서 해고당한 후 드림웍스 제작사를 세운 제프리 카젠버그는 디즈니에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그림을 거뜬히 그려내고 싶었다고 합니다. 올바르고 가지런하며 날씬하고 부드러운 디즈니 캐릭터들에 반해 <슈렉>의 주인공들이 씩씩하고 모질며, 못나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건 왠지 ‘망가뜨림’의 주제와 반항심을 몸소 표현하려 했던 카젠버그의 철학이 담겨있는 것만 같습니다. 동화를 뒤집어놓은 것 같은 <슈렉>이란 영화를 어느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더 각별히 사랑하는 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우스트] 12. 길들여짐 없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